돌이켜보면 나는 남들보다 유난히 예민한 아이였고, 우리 엄마 아빠는 남들보다 유난히 권위적이었다.
그래서인지 똑같은 엄마 아빠 밑에서 자란 언니는
지금도 밝고 낙천적인 데에 반해, 나는 남들 앞에 나서기 무서워하고 어릴 적 상처들이 이따금씩 튀어나와 별 것도 아닌 일에 엉엉 울기도 한다.
내 안의 상처들은 아물기도 전에 어릴 적부터 차곡차곡 쌓이고 쌓여서 몸뚱이만 어른이 된 지금은 얇은 막에 가려져 있다.
그 막은 너무 얇아서 아주 약한 자극에도 금방 터져버린다.
나는 몸만 커버린 '어른 아이'이다.
예민했던 나는 무척 어렸을 때부터 엄마에게 혼난 기억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엄마에겐 미안하지만 좋았던 추억보다 혼났던 기억이 나에겐 더 선명하다.
5살쯤의 어릴 적엔 손이 서툴러서 물을 잘 쏟곤 했는데 그때마다 엄마는 소리를 지르며 금방이라도 때릴 것처럼 손을 들고 화를 냈다.
그 위압감에 나는 잔뜩 움츠려 들었는데, 이상하게 그렇게 혼이 날수록 물을 더 잘 쏟곤 했다.
'모르고 그랬어'
'일부로'라는 단어를 쓰면 혼나고, '모르고'라는 단어를 쓰면 덜 혼난다는 규칙을 어렸을 때 깨닫고 늘 이 말을 달고 살았다.
이보다 더 생생한 기억은 6살이다.
당시 옆 집엔 나보다 한 살 어린 지원이라는 동생이 있었다. 지원이와 나는 둘도 없는 단짝이었다.
엄마끼리도 친했던 것 같았는데 어느 날은 엄마들끼리 커피를 마시고 나와 지원이는 작은 방에서 장난감을 갖고 놀고 있었다.
그때 나는 요술봉 하나를 들고 지원이에게 변신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며 요술봉을 휘둘렀는데, 실수로 그만 지원이의 코를 치고 말았다. 5살 지원이는 바로 울음을 터트렸고 놀라서 달려온 옆집 아줌마에게 안겼고, 엄마는 내가 요술봉으로 지원이를 때렸다고 생각한 건지 실수로 지원이를 울린 것치곤 꽤나 가혹하게 혼을 냈다.
거실에 나를 세워두고 썰매채로 쓰던 나무 막대기를 휘둘려 내 종아리를 때렸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때 나는 저만치에서 맞는 나를 구경하는 옆집 아줌마와 지원이를 보며 수치스러움과 분노를 느꼈다.
그냥 주저앉아 울면 좀 나을 것을, 나는 내 얘기를 듣지도 않고 그들이 보는 앞에서 보란 듯이 나를 때리는 엄마가 너무 미워서 종아리를 맞는데도 한 번도 주저앉지 않고 그대로 서서 엄마를 노려보았었다.
이 기억은 엄마가 나를 때린 거의 첫 번째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 뒤로도 숱한 체벌이 있었지만, 모든 순간에 나는
내가 잘못한 건 기억이 안 나고 그때의 분노와 화만 고스란히 상처로 남았다.
사춘기를 지나 내 덩치가 점점 커질수록 나는 이 힘의 불균형에서 아빠는 이길 수 없어도 엄마는 이길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아빠만 없으면, 엄마와의 싸움에서 엄마가 나를 때리면 나도 똑같이 엄마를 때렸다.
똑같이 물건을 던지고 소리를 지르다 보면
나도 이제 엄마를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이 보였다. 엄마가 나한테 한 것처럼 나도, 엄마를 억울한 상황에 몰아넣어 때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그렇게 나는 참 어두운 사춘기를 보낸 것 같다.
단지 그 바람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던 건 아빠 때문이 컸다.
아빠와의 힘겨루기는 내가 아무리 커도 이길 수 없었기 때문에 아빠가 있는 자리에서 엄마와의 싸움은 늘 더 화내고 더 때리는 아빠와 얄밉게 말리는 엄마를 둘 다 미워하며 끝이 났다.
결국 나는 삐뚤어진 채 어른이 되어 버렸다.
나란 어른 아이가 지금의 남편을 만나 덕순이를 갖게 되었을 때 내 마음속엔 막연한 불안감이 있었다. 나처럼 어두운 사람이 덕순이를 잘 기를 수 있을지 도무지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사랑하는 덕순이를 나처럼 삐뚤고 어둡게 자라게 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은 없었지만 내가 노력하면 무언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무작정 육아 교육에 대한 영상을 틈날 때마다 보곤 했다.
주로 보았던 영상은 오은영 박사님의 영상들이었다. 수많은 강의 중 인상 깊은 말이 있었다.
어릴 적 보육자의 언행과 행동은 아이의 내면의 목소리가 된다.
그 내면의 목소리는 어른이 되어서도, 부모가 되어서도, 언행과 행동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쉽게 말해서 어릴 적 받은 상처를 나중에 자식에게도 대물림 하기가 무척 쉽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대물림 하지 않으려면, 말 그대로 '뼈를 깎는 수준의 고통을 인내하는 노력' 이 필요하다고 했다.
돌이켜보면 내 내면의 목소리는 우리 엄마 아빠와 똑 닮았다.
실수로 빙수를 엎은 남편에게 이런 말을 했다 싸웠다.
'오빠는 항상 그런 식이야.'
오빠는 나만의 체념한다는 식의 말투가 무척 싫다고 했다.
'오빠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
'됐어하지 마.'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내가 그토록 미워했던 엄마 아빠가 내 내면의 목소리가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습관적으로 뱉게 되는 가시 돋친 말들.
그 말들을 가장 가까운 남편에게도 쉽게 하는데,
내가 노력하지 않고 이대로 안주한다면 덕순이에게도 똑같이 나는 우리 엄마 아빠처럼 할 테고, 만일 덕순이가 나처럼 조금은 예민한 아이라면 분명 어렸던 내 모습과 똑같이 어둡게 성장할 것이다.
이 상처의 되물림은 내 선에서 끝내야만 했다.
우리 엄마 아빠, 그리고 나의 갈등에서 입은 내 상처는 이미 과거가 되어버렸다.
과거는 어떻게 해도 바꿀 수 없고, 고칠 수 없다.
심지어 엄마 아빠는 기억도 못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지금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나만큼은 절대 똑같은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는 것이다.
어린 시절 상처받았던 나를 마주 하는 건 무척 슬프고 어려운 일이다. 서른 살이나 된 나를 아직도 펑펑 울게 만들 만큼 아프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 왜 엄마 아빠가 화가 났는지,
어떤 행동이 나를 슬프고 화나게 했는지,
그래서 내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똑바로 마주 보아야 나도 덕순이에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오은영 박사님은 뼈를 깎는 노력으로 자식에게 상처의 되물림을 끊어내는 과정에서 본인 또한 치유받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덕순이를 밝고 씩씩한 아이로 기르고 싶은 내 바람과 뼈를 깎는 내 노력으로 나도 덕순이도, 함께 있는 시간들을 행복하게 지내길..
아직은 막막하고 어렵겠지만 남은 인생 동안 풀어나가야 할 숙제라고 생각하고 한 걸음씩 내딛으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