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속에서 별 걸 다해

29주 차의 기록

by 덕순

28주 차 병원 검진을 받았을 때 의사 선생님이 이제 나는 임신 중기를 넘어 임신 후기라고 말씀해 주셨다.

아기는 주요 기관들이 모두 완성되고 뱃속에서 무럭무럭 자라 몸집이 점점 커지는 막바지 단계라 그런지, 이전보다 더 몸짓이 활발해지고 엄마가 생각지도 못했던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딸꾹질 같은 것이었다.


뱃속의 아기가 딸꾹질을 한다는 건 참 신기했다.

어느 날 새벽, 화장실을 다녀오고 잠을 뒤척이는데

뱃속에서 규칙적인 태동이 느껴졌다.


통-통-통-통...


처음에는 워낙 규칙적이라 내 뱃속의 맥박인 줄만 알았는데 이상하게 내 몸이 아닌 덕순이의 몸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마 임신을 하고 태동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어렴풋이 맥박과 딸꾹질의 차이를 느낌으로 알 것이다.

덕순이의 태동은 그동안 깜짝쇼처럼 한 번의 발짓이 갑자기 느껴지는 불규칙한 느낌이었는데 마치 심장박동처럼 조금 빠르지만 규칙적인 느낌은 처음이어서 사실 무슨 일이 생긴 건지 걱정이 들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 나와 비슷한 느낌의 태동을 느껴본 사람들의 게시물을 검색하다 보니 이것이 아기의 딸꾹질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우리가 흔히 느끼는 딸꾹질보다는 빠르지만 규칙적인 통통 거림.

아기가 나중에 나와서 호흡을 하기 위해

미리 연습하는 과정에서 딸꾹질을 한다고 한다.


아직 두 달 넘게 남았지만 어엿한 사람의 모습을 다 갖춘 덕순이가 이제 알아서 호흡 연습을 하고 딸꾹질을 한다니...

그 모습을 상상하자니 너무 신기하고 귀엽고 대견스러웠다.


뿐만 아니었다. 갑자기 느껴지는 핸드폰 진동 같은 태동도 있었다.


부르르르르르르...


주로 느끼는 태동이 마치 킥복싱 같다면 이 느낌은 기관총이나 핸드폰 진동 같았다.

이것도 알아보니 아기가 뱃속에서 엄마의 양수를 먹고 오줌을 싸는 것이라고 했다.

뱃속에서 벌써 오줌을 싼다니.

그 오줌을 양수에 싸고 또 그 양수를 먹는다는 게

지금 우리의 관점에선 엽기적일 수 있지만 뱃속의 아기에겐 엄청난 성장의 결과 아닐까 싶었다.


처음 덕순이의 심장 소리를 들었을 때 1.43cm의 아주 작은 몸으로 뛰는 그 심장소리가

무척 대견했는데 이제 그 손톱만 하던 아이가 뱃속에서 어엿하게 사람 흉내를 낸다.

때문에 덕순이가 자라나는 것을 지켜본 나에게 덕순이의 손짓, 발짓, 딸꾹질은 모두 신기하고 대견스러울 수밖에 없다.




딸꾹질마저도 감탄하게 만드는 기적 같은 아기 덕순이.

생각해보면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단지 처음 고개를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주변의 관심과 칭찬을 듬뿍 받았던 때가 있었겠지.


시간은 점점 흘러 나는 자라고, 늙어가고, 이젠 웬만한 걸로는 주변의 관심을 받을 수 없는 어른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이 왠지 씁쓸했다.

지금의 나는 딸꾹질만으로는 사랑받을 수다.


나처럼 덕순이도 자라는 동안만큼은 세상의 모든 관심과 사랑을 듬뿍 받을 것이다.

그러다 점점 세상의 관심을 받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이 더 어려워지고 더 힘들어지겠지.

그것이 어른이 되는 과정이고 누구나 겪는 자연스러운 과정이지만 왠지 내 딸이 고스란히 겪을 생각을 하니 안쓰럽기도 했다.


세상이 덕순이에게 점점 관심을 잃어가도 엄마인 나는 덕순이의 모든 행동에 하나하나 관심을 갖고

애정을 듬뿍 줄 것이다.

래서 덕순이가 스스로 자기가 얼마나 사랑받는 사람인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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