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임신 후기에 진입하니 아무리 헐렁한 옷을 입어도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눈에 알아볼 만큼 배는 만삭이 되어버렸다.
이 맘 때면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산모들의 최대 고민이 시작된다.
제왕절개냐, 자연분만이냐.
옛날처럼 엄마의 희생이 당연시되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에 무작정 자연분만을 강요하지도 않을뿐더러 각자 장점과 단점이 분명하게 있기 때문에 더 고민스러울 수밖에 없다.
8월부터 지금 내가 다니는 병원에서는 비대면 온라인 강의로 출산에 대한 궁금증을 풀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었는데, 담당 선생님이 강의하시는 거라 더 편하게 들어보았다.
강의를 모두 듣고 나니, 제왕절개와 자연분만의 장단점이 또렷하게 구분되었다.
제왕절개는 일단 날짜를 정해놓고 하는 선택제 왕이라면 출산의 고통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가장 큰 장점이 있다. 겪어보진 않았지만 진통이 시작되면 정말 정말 아프다는데, 제왕절개는 마취를 하고 배를 갈라 아이를 꺼내는 순간까지 아무 감각이 없다고 한다. 봉합할 때 대부분 수면마취를 해주기 때문에 푹 자고 일어나면 모든 출산의 과정이 끝이 나 있다.
내가 원하는 날짜와 시간에 아이를 만날 수 있고
자연분만에 비해 출산 도중 발생하는 위급 상황이라던지, 이벤트가 적기 때문에 확실한 결말을 좋아한다면 제왕절개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또한 엄마의 선택과는 별개로 아이가 거꾸로 누워있는 역아라던지, 여건상 자연분만을 할 수 없는 상태 등 의사의 진단 하에 수술을 진행할 수도 있다. 그만큼 자연분만보다는 의료진이 많이 투입되어 더 안전하게 출산을 돕는 것 같았다.
다만 가장 큰 단점이라면 역시, '수술'이라는 부담감일 것이다. 아직도 주사 바늘을 못 보는 나로서는 칼로 생 살을 가른다는 게 무척 공포스럽다. 아무리 마취를 해서 그 순간엔 감각이 없더라도 마취가 풀리는 순간부터는 '후불제 고통'이 시작된다고 했다. 머리도 들 수 없고 꼼짝없이 누워만 있는다는데, 장기가 모두 뒤틀리는 기분이라 했다. 그만큼 산모에게는 다시 원래대로 몸을 회복하는데 더 많은 고통과 시간이 들 것이다.
또한 과다출혈, 장기 유착 등 수술이라는 과정 때문에 생기는 위험 요소도 많아 보였다.
아이가 태어나면 적극적으로 모유수유 의사를 밝히고 최대한 가까이 지내겠다고 패기 있게 결심한 나로서는 침대에 한 발자국도 못 움직인 채 누워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자연분만의 장점이 더 잘 보이는 것 같았다.
자연분만의 가장 큰 장점은 제왕절개와는 반대로 '회복력'일 것이다.
자연분만을 하면 출산 당일에도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고 다음 날 걸어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산모의 몸이 빠르게 회복된다고 한다. 때문에 아이와 더 교감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을 것이다.
제왕절개가 '후불제 고통'이라면 자연분만은 '선불제 고통'으로 출산의 과정이 끝나기만 하면 사람답게 지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자연분만의 단점도 분명했다. '선불제 고통'이 사람이 겪을 수 있는 최고의 고통이라는 것이었다.
겪어본 사람들의 후기를 보면 트럭이 배를 깔고 지나가는 기분이라고 했다. 생각만 해도 무서웠다.
하지만 온라인 강의를 들을 때 선생님이 해주신 말이 자꾸 떠올랐다.
'우리의 엄마, 할머니도 모두 해냈고
모두가 해내 왔기 때문에 지금처럼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거란 것,
정말 아픈 건 맞지만 인간이 견딜 수 있을 만큼 아프다는 것'
실제 못 참을 만큼 아픈 진진통은 주기적으로 짧게 찾아오기 때문에 그 순간을 잘 이겨낸다면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하셨다.
나는 엄살도 심하지만 때에 따라 참을성도 좋기 때문에 남들 다 견딘 고통이라면 나도 못 견딜 이유가 없을 거라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불안한 것은 자연분만의 '불확실성'이다.
자연분만은 내가 원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아기의 머리가 아래를 향하도록 잘 자리를 잡아야 하고, 진통을 겪으면서 자궁 문도 잘 열려야 하고, 자궁문이 열렸을 때 아기가 잘 내려와 줘야 하는데 이 모든 것들이 100% 확신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하나라도 잘 풀리지 않는다면 진통이라는 진통은 모두 겪고 수술실에 들어갈 것 같았다.
'응급 제왕'이 나에게는 가장 두려운 상황이다.
왠지 끝이 보이는 터널을 겨우 겨우 빠져나가고 있는데 다시 처음부터 되돌아가는 것만 같은 느낌이다.
자연분만의 과정에는 항상 이런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아픔을 잘 견디고, 아기가 잘 도와주길 바라는 것뿐이었다.
모든 건 확률이고 내 운이기 때문에 내 노력으로 어떻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불확실한 것을 엄청 싫어하고 겁이 많은 나에겐 자연분만보단 제왕절개가 더 적합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나도 나를 알다가도 모르겠다.
나는 의사 선생님께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 자연분만을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밤새 고민을 하지도 않았고 이미 출산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지도 않았다.
경험해 본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해봤자 그분들은 각자의 경험이 전부기 때문에 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논문을 쓸 정도로 정보를 찾아보고 싶지도 않았다.
오히려 넘쳐나는 정보에 눈을 감고 싶었다.
'닥치면 다 하겠지, 어떻게든 잘 되겠지.'
내 마음의 목소리는 계속 이랬다.
사소한 일에는 고민을 하면서, 정작 이런 큰 문제는 별생각 없는 게 나의 장점이라면 장점인 것 같다.
덕순이가 잘 나와줄 거라 믿고, 덕순이가 나오기로 마음먹은 그때에 그 신호를 잘 알아차려서 온 힘을 다해 돕는다면 나도 남들만큼 잘 견뎌서 남들만큼 건강하게 아이를 낳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출산의 방법에 대해 참 많은 것을 배우고 알아왔지만 정작 내가 내린 결론과 그 이유는 이렇듯 참 단순했다.
물론 진통 때문에 이불을 부여잡고 지금의 여유로운 나를 원망할 수 도 있겠지만 때로는 세상을 단순하게 볼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다짐의 결말이 과연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건강한 덕순이를 만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만 믿고 앞으로도 이렇게 '별생각 없이' 지내야겠다.
Ps. 일 년이 지나 이 일기를 꺼내는 지금에서 말하자면, 덕순이는 자연분만으로 건강하게 태어났다. 아프기야 무척 아팠지만 초산치고는 진행이 빨랐고 무통 주사가 제대로 효과를 발휘해서 분만 직전까지 정말 편하게 낳았다. 말 그대로 순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