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덕순이의 존재를 알고 난 이후 지금에 오기까지 8개월은 참 긴 시간이었다.
시간은 얄궂게도 초조할수록 느리게 흘러가고 방심할수록 빠르게 흘러가는 듯하다.
계획했던 임신이 아닌지라 처음 아기집을 확인했을 때에는 기쁨보다는 당혹감이 더 컸었다. 하지만 이내 그 당혹감은 걱정과 초조함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기는 일단 생겼고, 나는 그 아기를 어떻게 지켜야 할지 몰랐다. 내가 노력할 수 있는 건 그저 믿고 기다리며 내 몸의 변화들을 잘 견뎌내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2주에 한 번씩 정기 검진을 빠지지 않고 다녀서 아기의 상태를 확인하고 안심하는 것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첫 검진을 받은 1월부터 3월까지
약 두 달여간의 시간은 나에게는 야속할 정도로 느리게 느리게 흘러갔다.
5주 차 검진 그리고 2주 후에 7주 차 검진을 받기까지 나는 혹시나 아기가 잘못되진 않을까 하는 안 좋은 생각들과 불안들로 가득 차 있어 무척 예민해져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유산이 임신 초기 때 일어난다고 하고 나와 비슷한 주수에 유산의 슬픔을 겪는 엄마들의 사례들을 맘 카페에서 보면서 더 겁을 먹었다.
7주 차에 건강한 덕순이의 심장소리를 듣고 나서도,
9주 차까지 그 2주의 시간도 역시나 순탄하지 않았다. 7주 차에 건강하다고 안심할 수 없었다.
이 주수에는 그대로 아이들이 더 이상 크지 않고 도태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나는 여전히 예민해 있었다.
병원이란 병원은 모조리 가기 싫어했던 내가
하루하루, 병원 검진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초조함과 안심을 반복해서 12주 차 때 어느덧 사람의 형상이 제법 갖춰진 덕순이를 보았을 때부터 일까.
막연한 불안과 걱정을 넘어 이 아이는 잘 크겠다는 믿음이 생기고 있었다.
그리고 철없는 걱정 하나 더.
4주 후 16주 차 검진 때 비로소 성별이 밝혀지는데
딸을 무척 원했던 나에겐 4주라는 기다림은 나에겐 너무 가혹했다.
그렇게 나는 기다림과 기다림의 고비를 넘어, 16주 차 때 '덕순이는 건강한 딸'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큰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그 이후부터는 쭉 4주에 한번 검진을 다녔다. 본격적인 안정기, 임신 중기에 다다른 것이다. 이때부터는 나의 마음도 한결 안정을 되찾았다. 17~18 주수쯤 태동도 느껴지니, 아기가 건강하다는 확신을 스스로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남들도 가장 편하다는 임신 중기를 나는 그렇게 편하게 행복하게 지낸 것 같다.
비록 4주에 한 번씩 검진을 다녔지만, 2주에 한번 다니던 임신 초기에 비해 마음은 훨씬 편했던 것 같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나와 덕순이는 임신 후기까지 같이 오게 되었다.
32주 차 검진이 끝나고 그다음 검진은 34주 차였다.
다시 2주에 한 번.
데칼코마니 같은 이 주기를 보고 있자니 가장 조심해야 한다는 임신 초기만큼 지금도 나에게 무척 조심해야 할 시기구나 했다.
다행히 나는 다른 사람들만큼 후기의 각종 증상들로 고생하진 않고 있다. 배가 불러 몸을 움직이기 불편하긴 하지만 누워만 있을 정도는 아니고 아기가 위장을 압박해서 소화가 더디긴 하지만 그래도 맛있는걸 이것저것 찾아먹거나 직접 해 먹는 일상을 잘 누리고 있다.
하지만 이젠 긴장을 늦출 수는 없는 주수다.
34주 차 검진 때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이제 지금 나와도 문제가 없다고 하셨다.
그만큼 언제 어떻게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더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코로나가 매일매일 난리인 요즘에는
회사에서는 다 같이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 게 위험해 보여서 유난 맞아 보이더라도, 자리에서 혼자 끼니를 해결하고 지하철과 버스를 최대한 피하기 위해 남편이 퇴근길에 데리러 올 때까지 늦은 시간까지 기다렸다.
나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덕순이를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의 부주의로 덕순이가 나오려는 때에 필요한 조치를 받지 못한다면 그건 내 평생의 죄책감이 될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나와 덕순이는 다시 2주에 한번 흑백 초음파로 만나고 있다.
예정일이 다가올수록 2주에 한 번이 1주에 한 번이 될 것이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덕순이는 내 품에 안길 것이다.
1월부터 8월까지 긴 시간을 잘 버틴 나와 덕순이.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돌이켜보면 '우리 딸 참 대견하다.' 란 생각이 든다.
첫 임신의 기억을 이렇게 행복하게 꾸며준 덕순이에게 그저 고마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