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임신 후기

32주 차의 기록

by 덕순

돌이켜보면 나는 참 운이 좋은 것 같다.

덕순이를 만나 임신하면서 겪는 불편함과 아픔을 두루두루 겪었지만 굳이 비교하자면 남들만큼은 아니었다.


그 힘든 입덧도 2주간을 굵고 짧게 견뎠더니

차츰 좋아졌고 임신으로 인해 생기는 소양증이나 쥐젖, 피부 착색 등의 피부 트러블도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임신을 하고 난 뒤 피부가 더 좋아진 듯했다. 여름마다 땀 때문에 트러블이 생기곤 했는데 덕순이가 있어서 그런지 올해는 피부가 반들반들했다.


한 번도 유산기나 조산기로 입원 치레도 하지 않고

임신 중기 때는 배도 덜 나와서 남들처럼 평범하게 지내면서 여행도 다니고 즐겁게 보낸 것 같다.


그리고 모두가 제일 힘들어한다는 임신 후기가

나에게도 다가왔다.

그동안의 무탈함에 자신감이 생겨서인지 나는 그렇게 힘들다는 임신 후기도 그럭저럭 잘 보낼 것 같았다. 그런 자신감은 좋지만 자만하는 건 경계해야 했다.




32주가 다가올수록 배는 눈에 띄게 부풀었고 발톱도 스스로 못 깎을 만큼 불편해졌다.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게 부자연스러웠고 그동안 한 시간씩 산책을 해도 멀쩡했는데 금세 다리가 무거워졌다.

다리에 모래주머니를 잔뜩 매달아 놓은 느낌인데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점점 더 불편해지는 몸을 받아들이고 충분히 보살폈어야 했는데, 나는 앞으로 쌓인 일들을 마저 다 못할까 봐 걱정부터 했다.


덕순이 옷과 손수건들이야 미리 다 빨아놨지만

아기띠, 침대 매트, 이불들은 아직 빨지 않은 상태였다. 내 몸이 불편해질수록 빨래하기 더 힘들어질 거란 생각에 불안해졌다.


그래서 나는 무모하게도 32주 차 되는 주말에 결심을 하고 침대의 커버를 모두 벗겨내어 빨래를 했다. 하루 종일 세탁기가 돌아갔고, 남편을 못 믿는 나는 그 많은 빨래와 옷감 정리를 혼자 다 했다.

내 키만 한 범퍼에 커버를 씌우느라 진땀을 빼고 내친김에 방치해뒀던 아기 침대를 세정제로 박박 닦아내었다.


배불뚝이에 고개를 숙이고 쭈그리며 침대를 닦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앞으로 더 어려워질 거란 생각이 지금의 불편함을 앞섰다.


그도 모자라 예전에 사둔 역류방지 쿠션을 꺼내보았다. 처음엔 커버만 벗겨서 빨 생각이었는데, 중고 거래로 샀다 보니 미처 이 쿠션이 통 쿠션이란 걸 모르고 있었다. 커버 없이 솜이 들어있는 통째로 빨아야 했다.

세탁기에 구겨 넣으니 모양이 망가질까 봐 걱정이 앞섰다. 내 몸은 항상 뒷전이었던 나는 또 바보같이

화장실에서 그 큰 쿠션을 빨아보았다.


배는 나와서 허리 굽히기도 힘든 몸으로 세제를 직접 뿌려서 발로 밟아가며 빨았는데 도무지 거품이 깨끗이 헹궈지지도 않고 물을 먹은 솜은 무척 무거워져서 내가 도저히 들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중도 포기하고, 남편을 시켜 세탁기에 헹굼과 탈수를 돌리니 솜이 뭉치긴 했지만 그럭저럭 빨 수 있었다. 아마 내가 직접 탈수까지 했다면 내 몸은 성한 곳이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무척 힘들게 했던 주말이 지나고,

32주 차 2일째 되는 날 새벽에 생리통처럼 배가 몹시 아픈 것을 느꼈다.

별 일 아니겠지 하고 지금까지의 내 몸을 믿고 억지로 잠을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약간의 하혈의 흔적이 보였다.

덕순이를 품은 이후로 처음 보는 피였다.


놀란 나는 그 즉시 병원으로 달려가 태동검사며, 경부 검사를 받았다. 다행히 덕순이는 무사했고 출혈은 더 이상 진행되지 않고 있었고, 안정을 취하라는 진단을 받았다.

병원문을 나오는 데 왜 자꾸 죄책감이 드는지, 덕순이에게는 마냥 미안했다. 못난 엄마가 덕순이 생각은 안 하고 무리를 해서 결국 탈이 난 것 같아 몹시 속상했다.


앞으로 내 몸은 점점 더 힘들어질 텐데,

내 몸을 내가 위하고 보살펴야 덕순이도 안전할 텐데...

지금까지는 내 몸을 가장 뒷전으로 생각하고 산 것 같았다.

적어도 덕순이를 낳기 전까지는 내 몸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덕순이와 함께 있는 몸이란 걸 깨닫지 못했던 것 같다.


32주 차의 초입부터 호되게 일을 치르고 그 뒤로 나는 평소보다 더 조심하고 몸을 아꼈다.

물론 내 노력과 상관없이 임신 후기로 들어설수록 몸은 점점 더 아파왔다.

새벽에 종아리 경련은 수시로 나서 끙끙거리기 일쑤였고 조금만 오르막길을 걸어도 숨이 차올라서 헐떡거렸다. 다리는 천근만근 무거워져서 부어오르는 느낌이었다.

아기가 혈관을 누르고 있기 때문에 다리에 혈액순환이 잘 안돼서 생기는 증상들이었다.


남편은 내가 이렇게 힘들어할 때면 덕순이에게 엄마 그만 괴롭히라며 장난스럽게 말을 건넨다.

그럴 때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괴롭혀도 되니까, 건강만 하렴.

네가 아픈 게 제일 괴로운 거야.




언제부터 내가 덕순이를 내 몸보다 아끼고 사랑하게 되었을까?

이 작은 아기는 언제부터 내 인생의 전부가 되었을까?


알 수는 없지만,

앞으로 남은 임신 후기의 갖갖은 고통도 덕순이를 향한 애정으로 난 씩씩하게 이겨낼 것이다.


엄마는 강하니까.

나도 강하게 이겨낼 수 있다.

이전 07화이 시국의 임산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