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준비가 앞섰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무척 당황하기 때문에
평소에도, 회사에서도 많은 가능성을 열어두고 (주로 최악의 경우를 중심으로) 미리 준비를 해 두는 편이었다.
언제 아기가 나올지 모르는 지금의 상황은 이런 나의 준비성을 더 불태운 것 같다. 29주 차부터 아기 세탁기가 오자마자 아기 옷을 하나둘씩 빨아 넣기 시작했다. 남들은 막달에 출산 휴직을 들어가면 그제야 하는 출산 빨래를 한 달 정도는 훌쩍 일찍 시작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앞으로 다가올 장마와 덕순이의 상태는 나에겐 너무 큰 변수였다.
출산 빨래를 시작할 즈음에 날씨가 습해서 빨래가 잘 안 마르면 어떡하지?
그러면 안 되겠지만 덕순이가 조금 일찍 나오게 되면 어떡하지?
이런 다양한 돌발 상황에 무방비로 당하고 싶지 않았던 터라 나는 미리미리 준비하는 것에 온 신경을 썼다.
그중 제일 골치 아팠던 것은 수유 용품들이었다. 모유수유를 하고는 싶었지만 모유수유는 알면 알수록 내 의지뿐만 아니라 아기가 얼마나 잘 따라와 주느냐가 더 관건이었다. 어쩔 수 없이 모유수유를 못하게 된다면, 분유를 먹여야 하는데 덕순이가 나오기 전까지 이건 알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미리 준비해야 하는 내 성격 상 알 수 없다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넋 놓고 있으면 나중에 젖을 먹이거나 분유를 먹일 때 당장 필요한 물건들이 없어서 당황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젖을 먹인다면 당분간은 젖병, 젖병 소독기, 젖병 세척솔, 열탕 소독 냄비 같은 것들은 필요가 없다. 모두 아기들에게 분유를 먹이기 위해 필요한 물건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래를 알 수 없는 나로서는 저 물건들을 모두 구비해야 했다.
물론 모유수유에 필요한 모유 저장팩, 수유쿠션도 미리 구비해 놓았다.
덕분에 날이면 날마다 택배가 문 앞에 쌓여만 갔다.
필요할 것 같은 물건들을 모조리 구비해 놓는 탓에 넓었던 집은 점점 좁아졌다.
처음 이사를 왔을 때만 해도 휑했던 작은 방은 어느새 덕순이의 짐으로 발 디딜 틈이 없어졌다.
'옛날에는 이런 것 없어도 다 잘 키웠어!'
엄마 아빠가 오면 늘 하는 말이었다.
어른들이 보기엔 유난 맞아 보일 정도로 다양한 '육아 템'들이 방을 가득 채웠다.
개인적으로 어른들의 저런 말들이 별로 듣고 싶지 않았다. 사실, 좀 듣기 싫었다. 내가 내 아이를 더 잘 길러보겠다고 하는 건데, 그리고 이미 세상은 30년 전과는 달라져 있는데, 왜 자꾸 옛날 시절만 얘기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시절이 정답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는지.
정작 그 시절을 겪은 나는 이렇게 겉만 멀쩡한 어른 아이가 되어 있는데..?
자꾸 생각이 또 다른 생각의 꼬리를 물고 울컥하는 감정이 들곤 했다.
어찌 되었건 이제 좁아진 방에 물건들이 날이면 날마다 쌓이는 것은 사실이었다. 출산 휴직에 들어서면서 시간 여유가 많아진 나는 그동안 벼르고 있었던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비우기' 프로젝트였다.
그동안 현관문 앞 작은 방은 우리의 활동 구역이 아니다 보니 본의 아니게 창고가 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널찍한 방에 예전 전셋집에서 식탁으로 쓰던 책상 하나와 책장만 나란히 붙어 있었다.
책장과 책상에는 '버리기에는 애매한, 지금은 안 쓰는' 짐들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그중에는 내 물건들이 유독 많았다. 엄마 집에서 가져온 대학 강의 노트는 참 말 그대로 '계륵' 이였다. 치열했던 그 시절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추억의 물건이었지만 쌓아만 놓고 있자니 책장 한 칸이 터지기 직전이었다.
물론 어릴 적 사진이 담긴 앨범처럼 절대 버려서는 안 될 물건들도 있지만 대학 강의 노트, 어릴 적 그렸던 낙서, 초등학교 가정통신문처림 안 버리자니 공간만 차지하는 짐들도 많았다.
이런 짐들이 계속 자리를 차지하는 건 내 잘못이 컸다.
막상 버리려고 마음을 먹으면 왠지 모르게 다시 고이 보관하게 되었다. 내 추억을 버리는 것만 같아서 망설이게 된 것이다.
나보다 물건을 못 버리는 엄마는 더 하다. 엄마 아빠 집을 가보면 어릴 적 읽었던 책들이 빛바랜 상태로 그대로 먼지가 수북이 쌓여있다. 그 책들만 통째로 버려도 집이 훨씬 넓어질 텐데 엄마는 고장 난 밥솥도 못 버리는 성격이라 매번 나와 살면서도 싸우곤 했다.
그런 엄마를 보고 제발 좀 버리라고 무척 날 서게 화를 냈던 내가, 엄마처럼 물건을 못 버리고 있었다.
아마 덕순이가 없었더라면 나는 끝까지 그 짐들을 놓지 못했을 것이다. 내 짐은 그대로인데 날이면 날마다 덕순이의 짐들이 그 위에 쌓였다.
이랬다가는 작은 방에 있는 모든 책장들이 곧 포화 상태가 될 것이 뻔했다. 나는 선택을 해야 했다.
'덕순이의 물건을 줄여야 하나'
혹은
'내 물건을 버려야 하나'
나는 그리고 후자를 선택했다.
앞으로도 후자만을 선택하기로 다짐했다.
내 물건은 내 기억 속에만 소중한 물건이지만 덕순이의 물건들은 앞으로 덕순이를 기를 때 모두 필요한 물건들이었다. 필요성으로 따져보아도 내 짐들을 버리는 것이 당연했다.
좀 더 감성적으로 생각하자면 이 세상에 비우지 않고 채울 수 있는 게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만남을 가지려면 지금의 만남을 정리해야 하고, 무언가를 얻으려면 포기하거나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 있다.
그걸 거슬러서 온전히 채울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물건들, 더 나아가서 사람 사이의 관계까지도.
덕순이를 맞이하기 위해 내가 소중히 여겼던 것들을 과감히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 나는 버리고 버렸다.
나름 추억이라고 버리지 못했던 낡은 종이들과 공책들은 모조리 분리수거 종이함에 들어갔다.
그 밖에 버리기는 애매했던 물건들은 상태가 괜찮으면 당근 마켓에서 무료 나눔을 열었다. 인형들도 덕순이가 쓸만한 것들과 아닌 것들을 구분해서 탈락한 친구들은 모조리 버렸다.
그제야 짐짝 같던 책장이 깔끔해지고, 덕순이의 물건을 넣을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사실 아직 멀었다.
일 년 동안 입지 않은 옷들은 미련 없이 버려야 한다는데 아직 옷을 모조리 버리지는 못하고 있다.
나도 버릴수록 채워진다는 '미니멀리스트'에 조금은 가까워진 건가? 그러기엔 덕순이의 짐들이 너무 많긴 했다.
하지만 버리고 버리면서 나는 소중한 것을 배운 것 같다.
'채우기 위해 비우기'
물건뿐 아니라, 내가 살아온 기억도 마찬가지였다.
덕순이가 태어나고 덕순이와의 행복한 추억을 쌓으려면 내 마음 한편에 새까맣게 굳어있는 안 좋은 기억들을 비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직도 나는 불현듯 어릴 적 상처받은 기억들을 생각하며 울곤 한다.
아무 힘없었던, 그저 당할 수밖에 없었던 불쌍한 나에게 연민을 느끼고 그때 더 화를 내지 못한 것에 분하고 억울해했다.
따지고 보면 나의 어릴 적은 '사랑의 매'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며 아이들을 때리며 길렀던 시절이었다.
안 맞고 자란 아이가 오히려 없을 것이다.
다만 운이 나쁘게 나는 좀 더 예민한 아이였고, 엄마 아빠는 좀 더 강압적인 부모였다.
틀어진 축은 세월이 갈수록 더 틀어져 어른이 된 나에게 아물지 않은 상처가 되어버렸다. 상처를 버리지 못하고 덕순이를 기른다면 어릴 적 내 기억들이 자꾸만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아무리 좋은 옷을 입히고, 좋은 것을 찾아 먹여도
내 어릴 적 부모처럼 내가 덕순이에게 화를 쉽게 낸다면 아무것도 잘한 것이 아닌 게 된다.
그래서 나에겐 큰 과제가 있다.
어릴 적 불행했던 나를 '버리고' 덕순이를 맞이해야 한다. 그래야만 온전히 아이와의 행복한 추억을 쌓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잘 해낼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진 않는다.
다만 나와 덕순이를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오래된 낡은 종이들을 모조리 버렸던 것처럼 새카매진 묵은 불행들을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