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주 차는 아기와 엄마에게 의미 있는 주수이다.
37주 차를 기점으로 그 이전은 조산이라 하지만 그 이후는 정상적인 출산으로 보기 때문이다.
때문에 아기가 작더라도 호흡이나 수면 등에 크게 문제가 없으면 인큐베이터에 가지 않는다고 한다.
또 빠른 아기들은 37주 차부터 제왕절개나 유도분만 등으로 태어난다. 그만큼 의학적으로도 안전하다고 판단되는 주수이기 때문일 것이다.
자연분만을 선택한 나로서는 아직까진 덕순이가 무리할 정도로 크지 않고 정상 범주에서 자라고 있기 때문에 자연 진통을 기다리며 덕순이가 나오고 싶은 날을 생일로 맞아주고 싶었다.
다행히 덕순이는 36주 차 마지막 날 검진 때 추정 몸무게로는 2.5kg로 평균보다는 약간 작은 크기였다. 아기가 클수록 자연분만이 부담스러워서 인위적인 방법이 들어가곤 하는데 자연적인 출산을 원하는 나로서는 안심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38주 차 검진 때까지 2주 동안 기다려야 했다. 그 사이에 아기가 태어날 수 있지만, 나와 덕순이의 상태가 무척 건강했던 건지 의사 선생님은 2주 뒤에 오라고 하셨다.
37주 차 때부터 때아닌 긴장과 설렘은 시작되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지냈지만 그래도 임신의 마지막, '출산'이라는 아주 아주 큰 마지막 퀘스트를 앞두었기 때문에 긴장이 안 될 수는 없었다.
'설마 오늘일까?'
'오늘은 아니겠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생각이 왔다 갔다 했다.
생리통 같은 가진통이 느껴지는 날은 더더욱 걱정이 들었다.
덕순이가 건강만 하다면야 사실 아무 때나 나는 상관이 없지만, 그래도 마음 한 켠으로 40주까지 뱃속에서 푹 쉬다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뱃속에서 잘 크지 못하는 아기를 제외하면 정상적인 아기들에게는 엄마 뱃속이 가장 편안하고 좋은 환경이라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태어나면 그때부터 고난의 시작이다.
내가 덕순이를 낳는 고통만큼, 덕순이도 나오는 고통을 감수해야 하고 매일매일 엄청난 성장통을 겪을 것이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그저 안아주고 달래주는 것뿐이라 세상에 태어나는 누구나 겪는 고난이지만 그래도 내 아기는 조금은 나중에, 따뜻한 뱃속에서 최대한 편안히 있다가 겪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막달이라 배는 점점 무거워지고 숨도 가빠져서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그 와중에 철없어 보이는 이유 하나가 더 있긴 하다.
'마지막으로 즐기는 혼자만의 일상'
4학년 2학기 때 바로 취직하느라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나는 회사원이 되어 있었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5살 때 유치원을 처음 들어간 이후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회사까지 25년간을 정해진 루틴을 지키며 살아온 것이다.
물론 학교야 중간중간 방학이 있었지만 그 방학도 그 당시 치맛바람이 극성이었던 엄마 덕분에 학원을 오가며 제대로 누리지 못했었다.
방학 없는 회사는 더 했지.
일 년에 한 번 주어지는 일주일의 휴가를 목놓아 기다리며 매일매일 출근을 했다. 다만 회사가 학교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더 이상 엄마와 싸워가며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지냈던 나에게 공부도 안 해도 되고, 일도 안 해도 되고, 나름 먹고 살만큼의 급여도 나오는 기간은 지금 휴직을 하는 이 순간이 유일했다.
게다가 덕순이가 아직 뱃속에 있기 때문에 자고 싶을 때 언제든지 자고 먹고 싶을 때 언제든지 먹는 자유로운 일상을 만끽할 수 있었다.
얼마나 행복한지.
주변에선 7년 동안 회사를 다니며 사회생활을 해온 내가 집에만 있는 게 답답하지 않은지 걱정을 하고는 했지만 이 순간이 짧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에게는 매일매일이 감사하고 행복한 나날이었다.
심심하면 심심 한대로 행복했고 낮잠을 실컷 자서 밤에 잠이 안 오는 날도 말똥말똥한 채로 행복했다.
그렇지만 아주 나중에, 덕순이가 이 글을 읽게 되더라도 내가 덕순이를 보고 싶지 않아 한다는 오해는 하지 말아줬으면 한다.
다만 덕순이를 품고 있는 이 시간도 덕순이를 보고 싶어 하는 만큼 행복하고 소중하다는 것이다.
아직 정해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나는 될 수 있는 한 덕순이의 의지로 나오는 그날까지 기다리고 싶다.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제왕절개도, 유도분만도 원하지 않는다.
미신 같지만 덕순이의 생일은 덕순이가 정하는 게 더 의미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내 아기를 믿고 기다려주고 아기가 원하는 순간에 최선을 다해 도와주는 것이 엄마로서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출산뿐 아니라 앞으로 덕순이가 성장하는 과정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불필요한 간섭으로 아기의 주도권을 뺏어가고 싶지 않은 마음.
그 출발선이 '자연 진통을 기다려보자'였다.
모든 걸 계획대로 딱딱 맞춰야 직성이 풀리는 내 성격으론 참 어려운 방법이긴 하다. 완벽주의자, 계획 주의자인 나에겐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제일 큰 스트레스였다.
하지만 매일매일 혹시 오늘이 '디데이'는 아닌지 긴장과 설렘으로 보내는 이 나날들만큼은 나에겐 스트레스가 아니라, 행복하고 소중한 시간들로 다가왔다.
그건 분명 덕순이라는 소중한 존재가 있어서 가능한 것이다.
덕순이를 믿고 기다리는 오늘 하루도
무척 행복할 것이라 확신한다.
ps. 이 글을 쓴 지 일 년이 지나 올리는 지금은, 이때 이 순간이 너무 그립다. 물론 내 옆에 천사처럼 자고 있는 덕순이도 무척 예쁘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