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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순 May 05. 2022

생각이 너무 많은 사람의 이야기

내 안의 나와 같이 살아가기

"너는 생각이 너무 많아."

지하철 문이 열리고, 내릴 차례가 되었던 파트장님이 나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이었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 이런저런 일들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사직서를 제출했지만 끝내 회사를 박차고 나오지 못했고, 다른 팀으로 발령이 났었다. 좋지 않은 모양새로 팀을 떠나는 것이었지만 그분은 나를 위해 환별회 겸 저녁 식사자리를 마련해주셨다. 집에 돌아오는 길 하필이면 가까운 동네라 파트장님과 단 둘이 지하철을 타는 것도 너무 불편했는데 그런 내 마음을 알았던 건지 가는 내내 그분은 본인의 휴가 계획 등 시시콜콜한 얘기만 계속했다. 그리고 먼저 도착한 역에 내리기 직전, 나에게 이 뼈 있는 한마디를 던지고 갔다.


'가끔은 저 사람의 모난 성격 때문에 힘들었지만, 역시 최고의 관리자 답 구나.'

속으로 생각했다. 나를 이토록 잘 꿰뚫는 말이 있을까?

그분의 말이 백번 맞다. 나는 생각이 너무 많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고 좀 더 과장하자면 태어났을 때부터 그랬다. 나는 생각이 너무 많게 태어났다.




생각이 너무 많은 나를 품고 사는 것은 무척 고달팠다. 어느 날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잠을 잘 수 없게 만들었고, 또 어느 날은 일어나지도 않을 걱정들이 쌓여 사소한 것조차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그중 인간관계가 특히 그랬다. 미움받을 용기가 부족했던 나는 늘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행동했고 누군가를 만나는 날이면 정신적인 체력이 항상 방전되었다. 


나는 이런 내가 싫었다. 고민 끝에 악수를 둔다고,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서 늘 안 좋은 선택만 했고 억울한 일들이 자주 생겼다. 이렇게 살다 간 제 명을 다 못 채우고 일찍 죽을 것 같 성격을 고쳐보기로 작정했었다. 그때가 아마 이십 대 중반쯤이었다.


참 많 책들이 '너는 변할 수 있어.'라고 말하며 나를 응원했다. 그때마다 나는 가슴이 벅차오르며 '그래. 나는 변할 수 있어.' 하며 용기를 냈지만, 책을 읽고 나면 그뿐 나는 항상 그대로였다. 여전히 나는 쓸데없는 걱정들이 많았고 현실과는 동떨어진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변하고 싶지만 변하기 싫어하는 나의 몹쓸 게으름을 탓해오던 어느 날, 나는 우연히 스스로를 성찰하는 시야의 전환점을 만났다.




그 시작은 알만한 사람들은 모두 다 아는 MBTI 성격 유형 검사를 알게 된 이후였다.

한참 인기를 끌기 전 회사 동료를 통해 알게 된 이 검사를 재미 삼아 해보았는데 내 성격 유형으로는 INFJ가 나왔다. 이 유형은 내향적이고, 직관적이고, 감정적이고, 계획적인 사람 정도로 설명할 수 있다. '아 내 성격이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갈법했는데, 이 유형에 대한 설명 중 흥미 있는 구절이 있었다.

'생각이 정말 정말 많은 유형'

'전 세계에서 가장 희박한 유형'


내 성격이 그렇게 유니크했었나? 왠지 모를 특별함에 뿌듯하기까지 했다. 흥미가 생겨 나와 같은 성격 유형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보게 되었다. 관련 유튜브 영상의 댓글부터 SNS 계정까지 닿을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닿아보려 했다.

어릴 적부터 인생에 대한 고민이 컸다는 사람들, 항상 남들을 먼저 배려해서 그에 맞는 가면을 쓰느라 본인의 진짜 성격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사람들, 겉으로는 누구보다 따뜻하고 정이 많아 보이지만 누구보다 차가운 속마음에 스스로 놀랄 때가 많다는 사람들... 모두 내 얘기 같았다.

마치 누가 나에 대해 적어놓은 듯한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왠지 모를 큰 안도감이 들었다.


'나만 이렇게 사는 게 아녔구나. 유난히 복잡하고 깊은 생각들. 다른 사람들에게 내 마음과 생각을 절대 온전히 전달할 수 없을 것 같은 이 무기력함. 세상에 나 하나만 외톨이처럼 이러고 사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나와 비슷하다니.'


때로는 공감이 가장 큰 위로가 되는 법이다. 굳이 번뜩이는 해결책이 아니어도 그냥 '나도 그래. 네 마음이 뭔지 알아.' 정도의 공감만 있어도 큰 위안을 얻는다.

내가 그랬다. 그동안 나를 고쳐보려고 무던히도 노력했지만 수많은 책들의 응원 속에도 받지 못한 깊은 위로를 나는 얼굴도 모르고 단지 성격 유형이 같다는 사람들에게 받고 있었다. 나와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서 이미 나는 안도했다. '생각이 너무 많아 문제가 아니라 내가 원래 생각이 너무 많게 타고난 거구나. 그리고 나 같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구나. 이 사람들도 그냥 생각이 원래 많게 태어난 거겠지.'

원래 타고난 성격이 이런 것이라면, 그리고 나와 같은 사람들이 어딘가에 살고 있다면 억지로 그것을 거스르기 위해 애쓰기보다 이를 덤덤히 받아들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마치 오뚝이를 백번 천 번 흔들어봤자 어차피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 우연히 읽게 된 사주에 대한 글이었다.

SOL 작가님의 사주 공부 후기


'사주라 하면은 조그만 천막에 쪼그려 앉아 복비를 주고 믿거나 말거나인 이야기들을 듣는 거 아닌가' 했던 내가 이 분이 쓰신 글을 읽으며 사주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사주는 정해진 팔자였다. 태어나기를 본디 그렇게 태어나 살아갈 팔자. 그것은 고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게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필자는 사주를 배우면서 다른 사람의 언행에 대해 '왜 저런 행동을 하지?' 의아해하며 분노하기보다는 '원래 저런 팔자인 사람이구나.' 하며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사주를 나에게 대입해보았다. 만약 내가 사주를 본다면 나는 필시 이런 팔자일 것이다.

'걱정이 많아 한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종종거리는 팔자.'

비싼 돈을 내고 팔자를 고칠 수만 있다면야 고민해보겠지만, 사주는 그런 게 아니었다. 본디 그렇게 태어난 것이고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나는 그동안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려고 애써왔기 때문에 힘들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있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어쩌면 고쳐보겠다고 애쓰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지만 그렇게 나는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야를 바꾸어보았다.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서 탈인 사람'이 아니라 '원래 그렇게 태어난 사람'으로 말이다.




나는 내 안의 나를 고쳐보겠단 마음을 뒤로하고 인정하고 같이 살아보겠다 다짐했다. 그리고 '이런 나'여서 좋은 점들을 생각해보았다.


나는 예민하기 때문에 섬세하다. 다른 사람들의 감정선을 재빠르게 알아차려서 배려해준다. 또한 예민한 성격 탓에 조금이라도 선을 넘는 무례는 무척 싫어하기 때문에 남들을 대할 때도 무례를 범하지 않고자 무척 노력한다. 친절하지만 선을 넘지는 않을 만큼 적당한 거리감. 누군가에겐 마음의 벽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곳엔 관계를 오래 이어나가고 싶은 나만의 배려가 담겨있다.


그리고 나는 생각이 너무 많기 때문에 글을 쓸 소재가 넘쳐난다. 특별할 것 없는 인생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사춘기 소녀는 떨어지는 낙엽만 봐도 깔깔 웃는다는데 나는 그것만 봐도 심오한 성찰을 한다. 찰나의 순간 깊은 생각에 빠지지만 나는 그것들을 그저 쓸데없는 망상이려니 하며 꿈속의 기억처럼 쉬쉬 지워버리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나는 그것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나이 서른이 다 될 무렵부터였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내 생각에 공감을 해주고 칭찬을 해주었다. 글을 잘 쓴다는 칭찬을 얼마 만에 들어본 걸까? 초등학생 이후로 처음이었던 것 같다.

성찰의 기록들은 모이고 모여 내 이름이 새겨진 작품이 되었다. 덕분에 나는 이곳에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내 생각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 탈인 나'와 함께 살아가기로 했다. 바꿔보려 애쓰지 말고 있는 그대로 함께 하기로 했다. '생각이 너무 많아 탈인 나'는 나에게 그 대가로 무수한 생각들을 선물해주었다. 그 선물들을 하나하나 풀어쓰면서 나는 스스로를 격려해본다.


'그래. 나 정도면 함께 살기 괜찮은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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