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이 지난 후 신체화 증상이 나에게 남긴 것
불안장애로 고생했던 2021년의 내 몸은 갓 태어난 아기보다도 불안정했다. 극도로 예민해진 신경, 흐트러진 교감신경계 때문에 이유 모를 증상들이 나를 괴롭혔기 때문이다. 목이 조이고 무언가 걸린 것 같은 이물감부터 이명, 소화불량, 설사, 빈뇨, 과호흡, 심장 두근거림, 입마름 등등 태어나서 처음 겪는 것들이었지만 힘들다고 피할 수도 없었다. 내 몸이었기 때문이다.
아파서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였는데도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보면 멀쩡했다. 내시경도 해보고, 엑스레이도 찍어보고, 갑상선 검사까지 했지만 항상 결과는 '아무 이상 없음'이었다. '증상-검사-이상 없음'의 사이클이 반복되면서 건강염려증까지 생겨 계속 병원을 옮겨 다녔다. 새로운 병원에서는 정확한 병명을 찾아 줄 거라 믿으며. 두 달 넘게 온갖 종류의 병원을 다니고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신체화 증상'이라는 것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거 나잖아?"
신체화 증상은 신체에 아무런 내과적 이상이 없음에도 환자가 다양한 신체적 증상을 느끼는 것을 이른다. 머리, 복부, 관절 등의 통증, 메스꺼움, 구토, 설사, 불규칙한 월경, 환각, 이명 등등 나타나는 증상은 매우 다양하며,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면역계 이상, 신체 감각에 대한 인지 장애로 추정되고 있다.
나의 경우에도 예민한 성격이 극심한 스트레스와 맞물려 신체 증상으로 터진 케이스였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수많은 증상으로 몇 달간 힘든 시기를 겪었지만, 결과적으로 정신적인 문제임을 받아들이고 정신건강의학과 약을 복용함으로써 나아질 수 있었다. 아래의 이야기는 회복의 과정과 그 후에 대한 이야기다.
건강염려증과 마찬가지로 신체화 증상 역시 정신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것임을 받아들이는 게 중요했다. 스트레스로 발병한 것인 만큼 회복의 답은 증상에 덜 민감하게 대처하면서 스트레스를 줄여나가는 것이었다. 더불어 정신건강의학과 약도 꾸준히 먹었다. 정신적인 문제라고는 하지만 결국 신체 증상으로 느끼고 있으니 똑같이 약이라는 물리적인 수단으로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처음 한 두 달은 진전이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몸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2시간마다 잠에서 깨던 것이 3시간, 4시간으로 점점 늘어나더니 통잠을 잘 수 있었다. 매일 새벽에 하던 설사를 하루 이틀 거르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부터 하지 않았다. 침이 말라 뻑뻑하던 입 안에 낯설 정도로 침이 솟기 시작하더니 정상으로 돌아왔다. 하루에 죽 두세 입밖에 못 먹어서 10kg가 빠졌었는데 조금씩 먹는 양이 늘더니 몸무게도 평균으로 돌아왔다. 꾸준히 마음을 다스리고 약을 먹은 결과 그 많고 다양한 증상들이 모두 없어진 것이다.
이 모든 과정에서 중요한 건 '천천히, 하나씩' 나아졌다는 것이었다. 성질 급하고 완벽주의가 심했던 나는 단 한 번에 모든 증상이 없어지기를 바랐지만, 당연하게도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언제 나을 것이란 확신도 없이 증상으로 가득한 하루를 겪어내는 것이 또 다른 스트레스였다. 하지만 아무런 차도가 없기도, 심지어는 나빠지기도 하는 지난한 날들을 겪어내면서 증상들이 약해진 것을 분명히 인지할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가장 나중에 나타난 증상이 가장 처음, 그리고 가장 처음에 나타난 증상이 가장 나중에, 그러니까 역순으로 나아졌다. 비교적 나중에 나타났던 이명이 가장 먼저 사라졌다. 그다음에는 빈뇨가 사라졌다. 그렇게 순서대로 하나씩 나아지더니 마지막에 남은 것은 가장 처음에 나타났던 목 이물감이었다. 2021년 2월 말 내시경 이후 나타난, 모든 병과 불안과 우울의 시작. 목 이물감만 남았을 그 시점에는 이미 몸에 대한 자신감이 붙어 마음이 평온했다. '꾸준히 약 먹다 보면 낫겠지. 아니, 낫지 않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난 그렇게 불안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을 거야.'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던 때였다. 두 달 정도는 다른 증상 없이 목 이물감만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것마저 이틀에 한 번, 나흘에 한 번, 일주일에 한 번씩으로 나타나는 주기가 길어졌고 어느 순간에는 없어져 있었다. 나는 그렇게 나았다.
그럼에도 '완치'가 아닌 '회복'으로 표현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1년이 훌쩍 지난 지금에도 목이 조이는 느낌만큼은 간간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바로 불안하거나 신체적으로 힘들 때, 그리고 카페인에 민감한 내가 커피를 많이 마실 때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전과 같이 불안해하지 않는다. 익숙해진 것도 있지만, 이제는 이 증상을 '불안 경보기'로 쓰면서 '내가 불안하구나', '내가 스트레스를 받는구나'하고 알아차리는 용도로 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거침없이 퍼지려는 불안 회로를 침착하게 정지시키고 운동이든, 생각을 바꾸든, 다양한 방식으로 마음을 진정시킨다. 그러면 어느 순간 증상은 다시 사라져 있다.
작년 3월 "증상이 몸에 남을 수도 있다"던 정신과 선생님의 걱정스러운 한 마디는 결국 현실이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다지 불행하지도, 불안하지도 않다. 증상이 심하고 약하고를 떠나, 내가 증상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더불어 오히려 이 '불안 경보기'가 있기 때문에 더 안 좋은 상태로 가기 전 멈출 수 있다는 안도감 때문이다. 아예 없어졌다면, 아니 처음부터 신체화 증상 따위 생기지 않았더라면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이미 모든 걸 겪은 지금 이 시점에 후회는 아무 소용이 없다. 아니, 오히려 전에 없던 경보기를 얻어서 앞으로 올지 모를 더 큰 불안에 대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면에서는 잘 된 일일지도 모른다. 신체화 증상이 힘든 시기를 통해 얻은 훈장이자 힘들 시기를 대비하는 경보기가 되어서, 인생은 참 알다가도 모른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