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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씨 Jun 17. 2022

불안이 낳은 건강염려증, 회복 이후의 이야기

건강염려증을 겪고 있는 누군가와 그의 곁에 있는 누군가에게

정신건강의학과 약을 끊은 지 어느덧 반년이 지났다.

   이물감, 가슴통증, 소화불량 등으로 인해 먹던 약을 지는  오래되었다. 불안장애로 괴로워하던 작년 봄에는 하루에도 병원을  군데씩 들락날락했는데, 지금은 코로나 신속항원검사를 위해 이비인후과에  것을 제외하고는 언제 병원을 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 그렇게 불안했지?' 하며 마치 남의 일처럼 기억도 희미해질 즈음, 가까운 지인의 가족   명이 작년에 건강염려증에 걸렸고 그로 인해 모두가 너무도 힘든 시기를 보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겪어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이해하기 힘들  상황이 작년 나와  가족의 상황과 너무도 닮아서 '고생했다'  밖에 건넬  없었다. 이미 지난 일이었고, 무엇보다 얼마나 힘들었을지 알기에 섣부른 말로 위로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혼자 돌아오는 길에 작년의 상황과    감정들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그때는 감정적이기만 해서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이해되지 않고 두렵기만 했는데, 지금에 이르러서는 정반대로 모든 것이 이해가 되었다.  당시 극단적으로 불안했던  마음만은 빼고.


건강염려증은 사소한 신체적 증세 또는 감각을 심각하게 해석하여 스스로 심각한 병에 걸려 있다고 확신하거나 두려워하고, 여기에 몰두해 있는 상태를 이른다.(출처: 두산백과) 나의 경우에는 목 이물감이었는데, 이것이 목에 무엇이 걸렸거나 갑상선 암이라고 생각되었는데 병원에서는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확실한 병명을 얻기 위해(?) 나는 12군데의 병원을 수십 번 들락날락했다.

(관련 글: 불안이 낳은 건강염려증, 일명 '병원쇼핑' https://brunch.co.kr/@minkyju/4)


가장 먼저 짚고 넘어갈 점은 건강염려증 환자가 느끼는 그 증상은 실재한다는 것이다. 목에 뭔가 걸린 것 같다거나, 심장이 심하게 쿵쾅댄다거나 하는 그 증상은 실제로 있으며, 단순히 환자의 망상이 아니다.(물론 심각하면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목 이물감 때문에 수많은 이비인후과와 내과를 다녔지만, 막상 내시경으로 목 안을 들여다보지도 않고 나를 진정시킨 건 한의사 선생님이 건넨 한 마디였다. "목에 뭐가 있다는 환자 분 말이 맞아요. 실제로 뭔가가 있을 거예요." 수많은 병원에서 거짓말쟁이 취급을 받는 것 같아 죄스럽고 억울했던 감정이 일순간 풀리며 어느 정도 침착함을 찾을 수 있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하던 상황에서 작은 실마리를 찾은 것 같았다. 아무것도 없는 걸 낫게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뭐라도 있다면 그걸 낫게 할 수는 있을 테니까.


두 번째로 짚고 넘어갈 점은 건강염려증 환자가 본인의 증상에 비해 느끼는 정도가 과하다는 것이다. 사실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지만 건강염려증 환자 본인이 이를 인정하기는 쉽지 않다. 본인만 느낄 수 있는 증상에 대해 주변인과 병원에게 입증하는데 몰두하기 때문에, 그 증상의 정도에 대해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평소의 건강한 자신이라면 느끼지도 못했을, 느꼈더라도 무시하고 넘어가 언제쯤 잊어버렸을 그 증상에 매분 매초 모든 신경이 곤두서 있을 것이다. 내 목 이물감의 경우도 평소 느끼지도 못할 수준으로 살짝 붓거나 가래가 붙어있는 것에 대해 하루 종일, 눈을 떠서 잠에 드는 순간까지 그것만 예민하게 신경을 쓰니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비유를 들자면 평소 신경도 안 쓰고 다닐 길을, 예민+불안으로 감각치가 극대화된 초능력자가 되어 풀 한 포기, 개미 한 마리가 거슬려 길바닥만 보고 있는 것과 같았다. 개미 한 마리에 집착해 길바닥만 보고 있다면 어떻게 정상적인 일상생활이 가능하겠는가.


위의 두 사실, 건강염려증 환자의 불안함과 더불어 그것이 과하다는 사실도 인정하는 것이 건강염려증 치료의 시작점이다. 아울러 실재하는 그 증상을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증상에 대한 불안함, 예민함을 가라앉히는 것이 더 중요하다. '불편해 죽을 것 같아.'에서 '불편하지만 죽지는 않아.', '불편하지만 괜찮아.', '불편하네' 등등으로 증상에 대한 주관적인 감정을 최대한 배제해 나가다 보면 그 불편함을 인지하지 못하는 정도에 이를 수 있다. 또한 근원적으로 나를 예민하게 만드는 환경을 직접적으로 개선하거나, 그것이 어렵다면 환경을 받아들이는 사고방식, 태도라도 바꾸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스스로 생각을 고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것이 어렵다면 적극적으로 상담을 받아보거나, 정신건강의학과 약을 복용해보기를 추천한다. 그리고 주변인들도 힘들겠지만 환자의 불안함을 이해해주되, 과한 걱정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끊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건강염려증의 대표 증상인 병원 쇼핑, 자신이 원하는 병명을 얻거나 약을 처방받기 위해 병원을 다니고 검사를 하는 자체로부터 안정을 얻는 것에 대해서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물론 환자가 병원에 가는 자체로 안정감을 얻는다면 의미가 아주 없진 않다. 하지만 건강염려증 치료는 분명 장기전이 될 터인데 한순간의 안정을 위해 적지 않은 시간과 돈을 쓰는 게 합당한 것일까? 게다가 그 안정은 금세 가실 것이고, 오히려 아무 병도 없는데 계속해서 오는 환자에게 던지는 의사의 말과 시선이 더욱 상처가 될 수 있다. 그렇게 의사에게 받는 스트레스와 더불어 스스로에 대한 불신까지 점점 커진다면 이는 점점 회복에서 멀어지는 길일 수도 있다. 관성적으로 병원에 가는 발걸음을 거두고 '괜찮아'라고 생각하며 책을 읽거나 짧은 예능을 보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평온해진 지금에 감사하며 작년 봄에 쓴 글 중 내 다짐을 옮겨본다. 나, 많이 노력했고 참 잘했다.


"내 의지로 병원을 가지 않고 버틴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웃기는 말이다. 다 큰 성인이 병원을 가지 않기 위해 버틴다는 것이. 하지만 나는 내일도, 모레도, 그리고 남은 날들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내 마음속 불안과 싸워야만 한다. 정말로 아픈데도 병원을 가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내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강박적으로 병원을 가서 스스로에 대한 경멸감과 죄책감으로 문 앞을 서성이다 결국 들어가고 마는 것만은 하고 싶지 않다. 지난한 노력이 필요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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