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와 '왜'를 통해 '달라지기'
(개인의 경험 기준입니다.)
성인 상담은 보통 1회기 당 50분 동안 진행되며, 별도의 검사가 추가되지 않는다면 '상담'이라는 말에 충실하게 상담 선생님과의 질문과 답변으로 이루어진다. 엄밀히 말하면 낯선 타인과 이야기하는 것 뿐인데 여기에 상담 및 센터를 오가는 시간, 상담비용(내가 방문한 두 곳은 1회기 당 8만 원이었다)까지 고려해서 적지 않은 투자가 든다. 우울증과 불안장애로 힘들어하던 당시에는 상담을 다니며 도움을 많이 받았지만, 어느 정도 심리적인 안정기에 이르러서는 시간과 비용적인 투자를 이어가기가 부담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상담에서 더 이상의 진척 없이 똑같은 결론에 갇힌 느낌이 들자, 관성적으로 상담을 받는 것은 그만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상담을 통해 이야기를 이어가고는 있지만, 정작 그 이야기 속 밑천이 바닥을 보이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제부터는 타인이 아니라 오직 나만이 진척시킬 수 있는 영역이었다.
한동안 이어왔던 상담을 쉬게 되었지만, 스스로에 대해 알아가며 좀 더 나아지려는 노력을 그만둔 것은 아니었다. 선생님과 이야기하던 시간이 혼자서 글을 쓰고 생각을 하는, 나를 상담하는 시간으로 바뀌었다. 그 과정에서 실제 상담에서 주로 쓰였던 세 가지 방법을 추렸다.
1. '어떻게' 느끼는지 알아차리기
"요즘 어때요?" 대부분의 상담은 이 질문으로 시작되었다. 단순한 근황, 나아가 특정 상황에서 내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느끼는지를 묻는데, 너무 당연하게도 무엇에 대한 답을 내려면 이것이 어떤 문제인지를 정확히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질문에 단순히 '짜증 나 죽겠어요."로 대답해서는 끝이 나지 않는다. 앞서 말했듯이 구체적으로가 중요하다. 그 짜증이 어떤 감정인지, 증오, 불안, 공포, 슬픔, 지겨움 등등 수많은 감정의 카테고리를 기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평소에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 먼저 알아차리려 노력하기보다 마주한 상황의 당위성, 향후 가능성을 우선적으로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 자체도 낯선데 그것을 더욱 세부적으로 파고드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문제에 대한 분석이 구체적이고 명확할수록,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성은 더욱 신속하고 명확하게 형태를 갖춘다.
하지만 부정적인 감정에 압도되는 경우, 스스로를 모를 때가 많다. 나 역시 불안장애가 발발했을 때 느끼는 바를 표현할 수 없어 우물쭈물하자, 선생님이 팁을 주었다. "단어를 고를 수 없으면, 이미지로 표현해볼래요?." 고민하던 나는 "뭔가 까맣고 끈적하고 커다란 덩어리가 목에서 가슴까지 가득 채우고 있는 것 같아요. 그게 계속 저를 밑으로 끌어당기는 것 같아요. 그냥 까매요."라고 답했다. 그 말을 하면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 불안해하고 무언가 두려워하고 있구나, 하고.
그래서 어떤 상황에 놓이거나 어떤 감정이 일어날 때뿐만 아니라 가능한 항상 내 감정에 관심을 기울이려 노력한다. 언뜻 스쳐가는 이 감정에 태그를 달아 놓는 것이 내 상태를 확인하고 미래의 내가 나아갈 방향을 아는 첫 단추임을 알기 때문이다.
2. '왜' 그렇게 느끼는지 분석하기
어떻게 느끼는지 알아차리는 것이 시작이라면 그다음 과정은 '왜' 그런지를 분석하는 것이다. 나에 대해 분석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이 민망할지라도 이는 마치 수학 문제와 같은 치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문제를 알았으니 풀이를 해야 할 차례가 온 것이다.
목에 무언가 걸린듯한 느낌이 너무 불편하고, 이 상황이 계속될까 봐 불안하고 우울하다는 나에게 선생님이 질문을 했다. "왜 그렇게까지 느껴요?" "계속 신경 쓰인다니까요? 빨리 나아야 하잖아요." "그런데 목에 뭐가 걸렸다고 해서 죽는 건 아니잖아요? 목 막힘이 그렇게 심한 것도 아니라고 하고... 그리고 빨리 나으면 좋기야 하겠지만, 그게 빨리 나아야만 하는 건가요? 간단한 감기에 걸렸을 때도 지금처럼 빨리 나아야 한다는 불안함에 시달린 적이 있어요?" 던져진 질문들에 대한 답은 모두 '아니오'였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렇게 작은 것 하나에 큰 타격을 입고 있을까?
이유를 찾기 위해 나라는 사람의 역사를 차근히 거슬러 올라갔다. 지금의 내 성격과 취향, 감정, 사고방식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어 지금의 형태로 구성되기까지 수많은 가능성을 따져 보았다. 특히나 가족, 친구 등 나에게 영향을 많이 미치는 사람들, 그들과의 관계에서 인상적이었던 장면들에 대해서는 더 많은 질문을 던졌다. 100% 정답이 있을 수는 없겠지만, 수 시간 상담을 통해 나온 가능성은 '완벽한 나에 대한 강박 때문'이었다. 혼자서도 뭐든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나는 스스로에게만큼은 1%의 여유도 주지 않았다. 불완전한 나,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목 이물감을 계기로 터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3. '달라지기'
나를 힘들게 하는 문제와 그에 대한 나름의 풀이를 찾고서 스스로 달라지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을 되새기며 '답'을 찾았다. 스스로에게 너무 박하게 굴어 일어난 일이니, 반대로 스스로에게 관대해져 보기로 했다. 말이 쉽지, 30년 넘게 살아온 방식에 반해서 생각을 고쳐먹는다는 건 정말 어려웠다. 그러나 당장은 나의 답을 믿고 바뀌는 수밖에 없었다.
'빨리 나아야만 해'라는 강박은 '언젠가 낫겠지'로, 다시 '낫지 않아도 괜찮아'로 바꾸었다. '나는 왜 이렇게 여유가 없고 나약할까'는 '나에게는 그럴 수밖에 없던 이유가 있었어'로, 그리고 '좀 부족한 사람이어도 괜찮아. 나아지면 되지'로 바꾸었다. 이 변화는 포기나 체념이 아니라, 스스로 고민해서 찾아낸 삶의 다른 방식이었다. 작은 노력들이 내 삶의 전반으로 퍼져나가 새로운 습관이 되었고, 결과적으로 조금씩 나아져 소중한 일상을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이따금 불안함이 슬금슬금 고개를 드려 할 때 예전과는 다르게 생각한다. '아무렴 어때', '뭐가 되었든 괜찮아' 내 생각을 바꾸는데 이렇게 지고지순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놀라웠지만, 덕분에 얻게 된 평온한 일상은 더욱 놀라웠다.
'복세편살' 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고 다들 성화인데 다른 것도 아닌 스스로에 대해 이렇게 항상 예민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되나 싶었다. 하지만, 다른 것도 아닌 스스로이기 때문에 항상 가장 먼저 돌봐야 함을 인생에서 나름의 바닥을 치고서야 깨달았다. 더 깊은 바닥을 치지 않도록, 설령 그러하더라도 조금 덜 타격을 입고 조금 더 빨리 헤어 나올 예방책으로 나를 상담하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평안한 요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