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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씨 Mar 18. 2022

불안할 때 나는 '상담한다'-1

내 이야기를 한다는 것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눈물로 마음고생할 때 '왜 자꾸 이유 없이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라고 한탄하자 상담 선생님이 말해주었다.


"이유 없는 눈물은 없어요. 그 이유를 찾아 보듬어줄 힘을 키워 줄수록 돕는 것이 상담의 목표입니다."




심리 상담을 처음 시작한 것은 회사의 지원 덕분이었다. 민원을 응대하거나 때로는 자극적인 콘텐츠를 접해야  상황이 많은 회사였기 때문에, 직원 복지  하나로 신청한 이에게 심리상담 금액을 지원해주었다. 당시의 나는 우울증이 있다거나 하는,  기준에서 특별히 힘든 상황에 놓여있지는 않았다. '상담은 정신적으로 엄청 힘든 사람만 받는  아닌가?', '내가  힘든 사람의 기회를 빼앗는  아닐까?' 하는 생각에 멈칫했지만, 그럼에도 상담을 받아보고 싶은 이유는 있었다.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벅찬 업무량, 7년을 이어온  연애의 종지부,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은 가족관계... 결국 가볍지만 다소 무겁기도  마음으로 당산역 근처에 위치한 상담실의 문을 두드렸다.


첫 방문에서 요즘 내 기분과 상황, 인식 등과 관련된 객관식, 주관식 검사지를 작성해 제출한 뒤 작은 방으로 안내받았다. 여러 책들과 상담일지가 꽂힌 책장, 가운데 놓인 책상, 그리고 그 위에 내 이름 석 자가 적힌 상담일지와 갑 티슈. '상담실은 이렇구나.' 하는, 제삼자의 시선으로 탐색한 그곳은 평범했다. 곧이어 상담 선생님이 들어왔고, 이곳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하는 등의 시시콜콜한 질문들과 답이 오간 뒤 상담의 시작을 알리는(?) 질문이 시작되었다.


"요즘 어때요?"


"음... 별일 없어요. 그런데 회사 일이 너무 많고... 팀원이 차장님이랑 저밖에 없거든요. 음... 그리고 7년 사귄 첫 남자 친구랑 헤어졌는데.... 어?"


이야기를 시작하자마자 눈물이 쏟아졌다. 이상하고 부끄러웠다.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몇 마디 꺼내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눈물이 뚝뚝 떨어질 일인가? 당황하는 나에게 상담 선생님은 이런 일에 익숙한 듯 티슈를 내 쪽으로 밀었다. 그리고 그것이 신호탄이었는지, 끅끅댈 정도로 울음이 터졌고 나는 발가벗겨진 듯 창피함과 함께 묘한 후련함을 느끼며 회사, 연애, 가족, 스스로에 대한 답답함을 두서없이 쏟아냈다. 상담 선생님은 찬찬히 들어주다가, 질문도 하면서 나에게서 계속 이야기를 끌어냈다. 이야기를 하면서 스스로도 신기했다. 평소에 사람들을 만나면 항상 듣는 축에 속해서 '근황 토크'를 하면 항상 몇 마디로 끝내는 나였다. "나는 뭐 항상 똑같지. 같은 회사 다니고, 그냥저냥~" 잘 나가지도, 못 나가지도,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은 평범한 삶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기엔 약간 부끄럽고 심심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하지만 50분을 꽉 채우고도 모자라 다음 회기를 기약하며 이야기를 마친 내가 "저는 제 얘기를 하는 걸 싫어하는 사람인 줄 알았어요"라고 말하자, 선생님이 "자기 이야기하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어요."라고 대답했다. 상담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발걸음이 가벼웠다. 회사, 연애, 가족 등 그 무엇도 바뀌거나 해결된 것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속이 후련했고 한편으로는 나에게 미안했다. 낯선 사람 앞에서 울 정도로 힘들고 지쳤던 나였는데 왜 알아봐 주지 못했지, 하면서. 하지만 스스로에 대해 이해하고, 사랑해주려 노력한 바가 없으니 그럴만했다. 항상 나를 우선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나 자신 보다, 내 앞의 타인, 속해 있는 조직, 상황에 나를 맞추는데 익숙한 나였으니 그동안 곪아온 것이 터진 이 결과가 당연했다. 그를 증명이라도 하듯, 매주 이어진 이후의 상담에서도 나는 눈물을 쏟아냈다.


3개월 동안 상담을 받고, 한참을 더 지나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겪었을 때 다시 상담을 받았던 최근에 이르기까지 나는 주변인이 힘들어할 때 상담을 추천한다. 하지만 내가 상담을 추천하는 이유는 상담 자체가 '해결책'이어서가 아니라 해결책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쉼터'이자 '도움닫기'여서이다. 상담은 이루어지는 50분의 시간 동안 오롯이 내가 주체가 된다. 내가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선생님이라도 상담을 진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 자의적으로 반 타의적으로 속 깊은 이야기를 긁어내다 보면 평상시 인지하지 못했던 감정, 과거사들이 술술 나온다. 친구, 가족, 심지어 스스로에게도 하지 못했던 부끄럽고 창피하고 괴로워서 피하고 싶던 이야기들인데, 어쨌든 이 시간만큼은 돈을 주고 전문가에게 산 서비스이기 때문에 아무 말이나 해도 괜찮은 느낌이 든다.


내 앞에 있는 전문가를, 그리고 나를 믿으면서 상담을 하다 보면 1차적으로 속에 있는 생각과 감정을 꺼낼 수 있고, 2차적으로 그것들을 비교적 명확하게 구체화할 수 있으며, 3차적으로는 그 결과물이 탄생하게 된 데 기여한 생각의 오류, 성장배경 등을 되짚게 된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과거의 나를 안쓰러워하고, 현재의 나를 파악하며, 미래의 나를 믿어줄 수 있게 되니 상담에 드는 시간과 돈이 마냥 아깝지만은 않다. 매 회기를 마치고 눈물로 번진 얼굴을 수습하지 못한 채 집에 걸어오면서 적어도 나에 대해 한 가지씩은 이해하려고 했다. '아, 내가 그래서 그랬구나.' 정 이해하지 못할, 혹은 이유를 모를 때는 '그럴 수도 있지.' 혹은 '어쩔 수 없었나 보다.'하고. 그때마다 바라본 밤하늘이 그저 어둡지 만은 않았던 것은 그를 바라보는 내 마음이 조금씩 가벼워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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