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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씨 Mar 14. 2022

불안할 때 나는 '쓴다'

내 머릿속을 헤쳐서 풀어내어 마구 그리는 것에 가까운.

어렸을 때부터 글 쓰는 것을 좋아해 온 나에게는 '말하기' 보다 '쓰기'가 훨씬 편하고 익숙하다. 몇 번 상은 받았지만 그렇다고 남들에게 자랑스레 내보일만한 수준은 아님에도 내 글을 사랑한다. 사실 좀 더 원초적으로 따져서 글을 쓰는 행위 자체를 사랑한다. 


처음 시작은 단순한 일기였다. '생산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이 있는 나는 시간을 별 일 없이 보내는 것을 싫어했다. 아니, 두려워했다. 적어도 어떤 일들을 하며 하루를 유의미하게 보냈다는 '기록'으로서의  첫 일기가 2018년 4월 13일, 부서 이동이 있던 날에 적혔다. 그때부터 매일까지는 아니더라도 최대한 자주 일기를 쓰려했다. 기록은 매월 이어졌고, 2019년 겨울까지 다다랐다. 그리고 2019년 9월 29일, 몹시도 좋아했던 이에게서 이별을 선고받고 쓴 일기는 '기록'이 아니었다. 질서 정연한 글자들의 나열이 아니라, 글자의 모양을 빌린 내 감정을 몇십, 몇 백 줄에 걸치어 그려 낸 그림에 가까웠다.


"악몽 같았던 9월이 끝났다. 문득 생각이 나 힘들긴 하지만, 속에서 무언가 치솟아 오르지만, 애써 넘기는 중이다. 어제 명상에서 ‘내가 생각을 지배한다’고 했듯이, 나는 생각에 지배당하지 않는다. 내가 생각을 지배하고, 그 생각은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갈 뿐이다. 생각 스스로가 머물러서 나를 괴롭히지 않는다. 떠오르는 생각들에 오래 괴롭다면, 그는 오히려 내가 그 생각을 놓아주지 않고 괴롭혀지기를 자초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힘들었던 9월, 행복했던 7~8월의 기억 속 편린들이 나를 괴롭힌다.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까. 나도 모르게 그 얼굴을 지운다. 떠올리려고 해도 이미 흐릿하다. 그저 그와 내가 속했던 상황만이 내 눈앞에 펼쳐지는데, 그 속에 그의 얼굴은 이미 흐리다. 정말 나는 그를 사랑했다기보다는, 그와 함께 나눈 유난스러웠던 사랑의 순간을 사랑했던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글을 썼다. 그를 통해 어지럽게 난잡하고, 낯 부끄럽게 원초적인 감정들을 쏟아냈다. 남에게 내 감정, 상황을 털어놓는 것이 익숙지 않는 나로서는 이렇게라도 풀어내는 것이 최선이었다. 어떻게든 꺼내지 않으면 속에 끌어안고 죽을 것만 같던 부정적인 감정들이 술술 흘러갔다. 그렇게 쓴 글을 처음에는 읽지 않았다. 글은 그냥 쓰지 않으면 견디지 못해 토해낸 무언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일 글을 쓰면서 그 속에서 매번 되풀이되는 시꺼먼 우울을 조금씩 직시할 수 있게 되었다. 피하고 싶던 속 깊은 내 감정들이 점점 모양을 잡고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초반에는 그것들이, 그리고 그것들을 속 깊은 곳에 박아 살아온 내가 불쌍했다. 그다음에는 '왜?'를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왜 이런 감정을 지니게 되었을까?', '나는 나를/상대를 왜 이렇게 생각할까?' 온갖 이유를 찾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그를 만났을 때 이래서, 가족들이 이래서, 어렸을 때 이래서. 그렇게 나 자신에 대해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 스스로에 대해 이렇게 열심히 탐구해본 적은 처음이었으니까. 그저 내가 못나서가 아니라, 나도 어쩔 수 없었음을 편 들어주는 수많은 이유들을 찾고 나서 일기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향해 흘러간다. 내가 그 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은 건지, 혹은 그저 혼자 있고 싶지 않은 건지, 아니면 적어도 무언가라도 하며 살고 싶은 건지. 원하는 것, 나아가고 싶은 방향을 알게 된 나는 더이상 일기장 안에서 울고 있지만은 않았다. 하루의 작은 순간마다 우울과 무력감이 아니라 의지와 감사함이 깃들기 시작했다.


결국 2019년 12월 31일 마지막 일기에서 나는 그에게 실제로 보냈던 짧은 메모로 그해를 마무리한다. 그에게 보냈다지만, 사실은 2019년 지질하게도 울고 아팠던 나에게 보내는 다정한 작별인사에 가까웠다.


"아프지 말고, 잘 먹고, 이사 잘하고, 따뜻하게 잘 입고, 잘 자고, 좋은 꿈 꿔. 내가 너에게 건넨 안부 인사는 단 한 번도 가벼웠던 적이 없어. 너는 착한 척하지 말라고 했지만, 착한 척이 아니라 항상 진심이었어. 과거에 붙잡히지 말고, 미래를 걱정하지 말고, 현재에서 스트레스 덜 받고, 재밌게, 행복하게 잘 지내. 안녕!"


그리고 2021년 봄, 다시는 마주칠 일 없을 것 같던 우울과 불안에 더욱 깊이 빠졌을 때 나는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역시 처음에는 기록용 병상일지였다. 어떤 증세가 나타났고, 어떤 병원에 갔고, 의사가 어떤 말을 했고, 어떤 약을 먹었으며, 어떤 결과가 나타났는지. 하지만 매일 이어지는 기록에서는 나아지는 것이 없었다. 오히려 기록 속 증상들에 집착하니 더욱 불안해지기만 했다. 방향을 바꾸어 예전처럼 내 감정을 정신없이 풀어냈다. 쉴 새 없이 손을 움직이는 자체로도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난생처음 겪는 몸과 마음의 불안감이 어지러운 단어와 문장들로 그려졌다. 매일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몇십 줄의 일기를 쓰면서도 마음 한편엔 약하지만 곧은 믿음이 있었다. 이렇게 쓰다 보면 나아질 거야 하는. 역시나, 2년 전과 비슷한 방향으로 진행된 일기는 2021년 3월 6일 '몸이 아픈 게 도합 해서 2주밖에 되지 않았다.'로 시작해서, 2021년 9월 29일 '아무것도 안 하고 쉬는 것에 익숙해진 것 같아서 뭔가 뿌듯하다. 다시 살이 찌지만, 그래도 좋다.'로 대략 마무리가 된다. 지난한 시간 동안 불안과 우울과 눈물과 연민으로 엮인 문장들이 하릴없이 흐르다가도 알게 모르게 견고히 쌓여 결국 나를 지키는 벽이 되었다.


아무것도 없는 평화롭고도 심심한 일상에서는 마냥 귀찮지만, 결국 힘들 때 돌아와 기댈 구석은 글을 쓰는 것뿐이다. 아니, 글을 쓰는 나 자신을 믿는다. 언제 어디서라도 글을 씀으로써 다시 일어날 수 있을 스스로를 믿어주고, 사랑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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