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실 벽에 걸린 시계 초침이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57분.
내담자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조금 더 이야기해도 괜찮아요”라고
먼저 말했을 것이다.
할 말이 많은 내담자를
배려하기 위해서,
그리고 더 좋은 상담사처럼
보이기 위해서.
하지만 그날은
시계를 한 번 더 보고
조심히 말을 꺼냈다.
“시간이 다 되어가요.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다음 시간에 이어서 이야기해요.”
공기가 잠깐 멈춘 느낌이었다.
내담자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고,
나는 미안해 죽을 지경이었다.
그래도 나는
다음 상담 예약을 잡고
정해진 시간에 상담을 종료했다.
집에 돌아온 뒤에도
그게 계속 떠올랐다.
혹시 차갑게 느끼진 않았을까,
혹시 도움이 안 됐다고 생각하진 않았을까.
예전보다 나아졌다 생각했는데
괴로움은 아직 예전 그대로였다.
나는 핸드폰에 저장해 두었던
‘2025년 끝나기 전 해야 할 일’
목록을 지웠다.
그리고,
‘2025년 끝나기 전 하고 싶은 일’
리스트를 새로 만들었다.
- 무료 나눔 인테리어 소품으로 방 꾸미기
- 회사동료, 친구들 집들이에 초대하기
-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정주행 하기
- 크리스마스 컨셉으로 셀프 네일하기
- 물감으로 그림 그리며 힐링타임 갖기
생산성과 연결된
‘해야 할 일’ 대신
철저히 쉬는 데만 집중한
‘하고 싶은 일’로
2025년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예전 같았으면
스스로를 다그쳤을 것이다.
“이러다 또 뒤처진다.”
“이럴 시간 없어.”
하지만 요즘은
그 말들이 목까지 올라왔다가
조용히 다시 내려간다.
물론
여전히 마음 한구석은 불편하다.
아직도 나는
쉬는 나를 완전히 믿지는 못한다.
그 마음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래서 나는 더이상
완전히 괜찮아지려고 애쓰지 않는다.
다만,
조금 덜 무너지려고 한다.
지금의 나는
열심히 사는 날과 푹 쉬는 날을
같은 삶 안에 두려고 한다.
둘 중 하나만이
진짜 나라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아마 몇 년 뒤의 나는
지금보다 더 안정적일 수도 있고,
여전히 흔들리고 있을 수도 있다.
그래도 그때의 나에게
이 말 하나는 남기고 싶다.
너는
너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이 되었고,
맘대로 쉬어도 된다는 걸
조금은 믿게 되었다고.
괜찮지 않은 날에도
너는 여전히 너였고,
그걸 지켜낸 것만으로도
충분했다고.
그러니 다음에도 또 흔들리면
서두르지 말고,
네 편부터 되어주라고.
그래.
난 내 편이 되어줄 거다.
그것이면,
그걸로 된다.
뒤에 보이는 전등, 테이블, 티비 스탠드 전부 무료나눔이다.
조금씩 구색을 갖추는 중.
치맥하면서 본 '김부장' 왜 이리 재밌고 슬픈지.
울엄마아빠가 생각났다.
사실 언제부턴가
크리스마스가 시큰둥했는데
네일을 하고 나니
산타할부지에게 선물까지 받고 싶어졌다.
요즘 물감 그림 그리는 재미에 푹 빠져
회사 동료, 친구들에게 줄 크리스마스 카드도
전부 직접 그리고 있다.
3주 동안 ‘나’라는 주제로 글을 써보았습니다.
나를 너무 보여준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고,
홀가분하기도 합니다.
2025년,
참 행복했습니다.
돌이켜보면
뒹굴거리면서도
꽤 열심히 산 한 해였습니다.
이제 만 나이로도
빼도 박도 못 한 30대가 되었으니,
앞으로는
억울한 이타주의자보다는
건강한 이기주의자가 되려고 합니다.
사람 좋아하는 마음은
그대로겠지만요.
사랑하는 독자분들,
2025년 한 해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2026년에
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