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난이었다.

[별밤] 내게서 가난을 빼면 남는 게 없기에.

by 별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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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이었다.


돌이켜보면, 가난이었다.

가난이 아니라면, 우리는 달랐을까?

어린 나의 공간은 허름했다.
단칸방, 신발을 신고 나가는 작은 부엌 겸 수도,
마당 건너 멀리 떨어진 나무판자 두 개로 버텨야 하는 푸세식 화장실까지.

마당을 가운데 두고 쭉 둘러져 있던 단칸방 중
가장 해가 들지 않고 화장실과 먼 집이 우리 집이었다.

어린 나는 대부분 비가 줄줄 새는 단칸방 한 켠,
티비 옆 화장대 아래에서 지냈다.
그 안에 들어가 무언가를 읽거나 만들거나
100원씩 모은 용돈을 세었다.

태어날 때부터 가난한 사람은
그게 가난인 줄을 잘 알지 못한다.

비가 오면 방 여기저기에 양동이를 두고,
양동이가 차면 비워야 했다.

깜빡 잊은 날에는 양동이의 물이 넘쳐
일을 마치고 돌아온 엄마에게 혼이 나기도 했다.

그때 나는 여덟 살, 초등학교 1학년이었다.



어린 보호자


네 살, 다섯 살 동생들과 종일 시간을 때우며 보내는 날들은
보통은 그냥 그냥 지나갔다.

문제는 어린 내가 대응할 수 없는 돌발상황이었다.

여동생이 우물에 빠진다거나,
남동생이 입에 거품을 물고 경기를 일으킨다거나,
불이 났을 때였다.

가난한 집은 유난히 불도 자주 났다.

그땐 그랬다.
어쩌면 당연했다.
추운 날에는 석유곤로 하나로만 몸을 데울 수 있었다.

그 곤로에 옷가지가 닿기라도 하면
쉽게 불이 났다.

모기를 쫓으려 두어 놓은 모기향으로도,
석유곤로로도 불이 났다.

돌발 상황마다 나는 혼이 났다.



말썽꾸러기 장녀


어린 나는,

동생을 잘 돌보지 못해서,
저금통의 동전을 몇 개 털어 간식을 사 먹어서,
준비한 밥을 다 먹지 못해서,
집에 불을 내서,
동생의 상황을 옆집 아줌마에게 빨리 말하지 않아서,

조용히 혼이 났다.

엄마는 나를 혼내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쳐다보고, 한숨을 쉬었다.

어린 나는, 책임질 것이 많았다.



자지 않는 밤이 익숙한 아이


아버지는 잘 참지 못했다.

도박을, 술을, 화를 참는 것을 어려워했다.
밤에는 말을 삼키지 못해 모두 내뱉어야 했다.

깊은 밤,
실컷 말을 하고 화를 내고 술을 마시고
물건을 던지고 나면
결국 밖은 환해졌다.

아버지가 술에 빠지고,
엄마가 아픈 날에는
내가 동생들을 챙겼다.

장을 보고,
도시락을 준비하고,
숙제를 같이 하고,
도서관에 매일 데리고 다녔다.

그렇게 내가 동생들을 챙기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내가 동생을 책임지는 것은 익숙했다.
어린 내게 버거운 건
그런 최소한의 생활마저 방해받을 때였다.

술에 취한 아버지가 밤새 잠을 재우지 않고 성가시게 하면
나는 새벽에 잠깐 쪽잠을 자고 일어나
또 일상을 반복했다.



지금도 남아 있는 아이


그런 날에도
도시락은 있었고,
준비물은 있었고,
숙제는 있었다.


그날의 미션을 혼자서 해내야만 했다.


그렇게 학교에 가면,

그때부터는 무엇도 할 의욕을 잃고
쉬는 시간마다 가만히 앉아 책을 봤다.

누군가와 말을 하는 것도,
운동장에 나가 노는 것도,
귀찮았다.


그렇게 활자에 중독되어
글자가 없을 때에는
어디서든 찾아내어 반복해서 읽고 읽었다.

아버지를 닮아
글자가 없는 상황을 잘 참지 못했다.


그렇게 참지 못하는 아버지와
자주 아픈 엄마를 닮은 나는
영 볼품이 없어 보였다.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일 거라는 확신은커녕,
내가 노력하면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자신도 없었다.

이제 다시 그때로 돌아온 듯하다.

나는 어린 나를 정리하지 못한 채 살아왔고,
그 아이는 여전히 책임을 지고 있다.


볼품없는 스스로를 애써 감추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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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밤입니다.

이야기를 내면에서부터 끌어주신

은나무 작가님과 다른 동료 작가님들에게,

그리고 읽어주신 분들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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