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해를 당했다고?
상담을 하다 보면 누군가의 죽음을 가까이에서 보게 될 수도 있다했지만, 내가 그런 경험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특히 일을 시작한 지 1년도 채 안 될 때는.
내가 기억하는 제시카는 밝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콜롬비아 출신인 그녀는 서툰 영어로도 성실히 상담에 임했고, 6살 딸을 다시 만날 날만을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제시카는 어린 시절 부모님의 이혼 후, 미국에서 살자는 새아버지를 따라 엄마와 함께 몰래 국경을 넘어 미국에 왔다고 했다.
미국에 정착한 후 제시카는 스물한 살에 한 남자를 만나 아이를 낳았다.
산후조리를 위해 엄마와 새아버지와 같이 살던 중, 새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이후 제시카는 환청과 환각에 시달리기 시작했고 결국 혼란형 조현병 진단을 받게 되었다.
혼란형 조현병: 사고와 말이 뒤죽박죽이고 감정 표현이 부적절하게 나타나는 유형의 조현병
환각과 환청에 시달리는 사이 아이 아빠와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졌고, 그녀는 감옥에 가게 됐다.
시민권자인 아이 아빠와 달리 불법체류자인 제시카는 딸의 양육권을 빼앗겼고 아이 아빠가 금방 다른 여성과 결혼하게 되면서 제시카의 딸은 아이 아빠의 부인이 키우게 되었다.
딸이 그리웠던 제시카는 아이의 새엄마를 SNS에서 찾아서 딸의 사진을 좀 보내달라고 부탁했지만,
싸늘한 말만 돌아왔다.
“이젠 네 딸 아니고 내 딸이야. 너 같은 정신병자가 어떻게 애를 키워? 이젠 잊고 사는 게 그 아이에게도 좋을테니 두 번 다시 연락하지 마.”
그 문자를 그대로 나에게 보여주던 그녀는,
“그래도, 딸을 사랑해 주는 것 같아서 다행이야”라며 마른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나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감옥에서부터 약물치료를 성실히 받았고, 출소 후 패런팅 클래스(parenting class)를 적극적으로 참석하며 공동 양육권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
패런팅 클래스(parenting class): 부모가 자녀 양육에 필요한 기술, 지식, 의사소통 방법을 배우는 교육 프로그램
누구보다 열정이 많았던 그녀는 일하고 싶어 했다.
언젠가 딸을 다시 만나면 이쁜 옷과 장난감을 사주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법적으로 일을 할 수 없는 그녀였기에, 나는 원래는 절대 하면 안 되는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근처 한인 식당에서 몰래 일 할 수 있을지도 몰라. 내가 같이 가서 사장님에게 직접 얘기해줄게.”
그 말에 제시카는 집 근처에 있는 네다섯 군데 한식당 이름과 주소, 연락처를 전부 적어서 왔다.
고맙다며 은혜를 꼭 갚겠다며 눈시울을 붉히던 그녀의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날 오후 늦게까지 제시카와 얘기하며 약속했다.
다음 주에 식당들 전부 다 가보자고.
현금으로 임금 주는 곳이 한군데 정도 있을 거라고 희망을 주었다.
그렇게 기분 좋은 마음으로 퇴근했다.
그리고 그날 밤, 그녀는 살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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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청각 장애를 가진 심리 상담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