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5년차가 되어도 생생한 그 날의 기억
실무 면접 때였다.
"이렇게 순서대로 국내, 인쇄, 해외, 옥외 미디어 팀장입니다. 이 중에 가고 싶은 두 개 팀만 골라보세요."
지금 생각하니 오랜 면접이 지루했던 팀장님들의 인기투표 비슷한 것이었겠거니 싶지만, 당시만 해도 옆에 있는 지원자보다 썩 그럴듯한 답을 내놓기 위해 머릿속이 뒤엉켰다. 선택과 동시에 영어 질문이 나올 법한 해외를 피하고 신문방송학 전공임에도 신문을 읽지 않던 나의 성향을 존중해 국내, 옥외를 꼽았다.
"뭐 국내는 알겠고, 옥외에서 일하고 싶다는 이유가 뭐죠?"
"대학 시절 혼자 떠난 뉴욕 여행에서 타임스퀘어에 걸린 현대차 인터랙티브 광고를 보고 엄청나게 압도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스케일이 큰 매체를 다루는 일을 해보는 것도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대충 이런 식의 고루한 답변이었던 듯한데 역시나 옥외 팀장님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이에 질세라 어떤 질문이 와도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로 일관하는 지원자와 함께 면접을 본 탓에 인생 최대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도 소극적이어 보인다는 지적을 받았다. 스물다섯이란 나이가 왜 그 당시엔 사람을 주눅 들게 만들었는지, 대기장에서 보았던 경쟁자의 두 살 어린 나이가 나의 탈락을 더욱 암시해 주는 징표 같았다.
어안이 벙벙하게도 1차 면접 합격 통보를 받았다. 임원 면접은 정말 죽을 각오를 다해서 보았다. 일 년 넘는 취준 생활에도 최종 문턱에 처음 가보는 나로서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 같았다. 인턴 계약 기간이 끝나가던 회사에 있지도 않은 연차를 내고 마지막 면접을 보러 가는 길엔 조금은 울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면접을 보러 가는 길이 출근길이 될 확률은 미지수였고 몇 주 뒤 받게 될 상처에 미리 겁을 먹었다. 그나마 살아내고 있는 기분을 느끼게 해 주던 인턴 근무 기간도 끝나고 합격 발표날은 긴장을 덜기 위해 최대한 웃긴 영상들을 끊임없이 찾아보고 있었다. 하하. 진심 없는 웃음을 짓던 차에 발표가 났다는 문자가 왔고 대학 합격 조회보다도 백 배는 떨리는 마음으로 결과창을 열어보았다. '최종 합격'이었다. 드디어 갈 곳이 생겼다.
최종 합격 이후 두 달 간은 자사 연수, 그룹사 연수, 타 직무 OJT로 노동 없는 급여를 받았다. 현업에 배치되는 당일 오전, 통계 자격증을 무기로 합격했을 것이라 예상하고 매체플래닝팀을 기대하던 나의 첫 발령 직무는 뜻밖에도 '매체(옥외)'였다. 발표 창을 들여다보며 면접 당시 옥외 팀을 고른 나를 석연치 않아하던 팀장님의 표정이 겹쳐 보였다. TO 때문에 부득이하게 원하지 않는 신입을 받게 되었을 거란 상상을 해보니 1년 반의 취준 생활을 끝내고 맞이하는 첫 사회생활이 제법 도전적일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처음으로 팀장님과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뜻밖에도 실무 면접이 끝난 뒤 나를 본인의 팀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는 말을 들었다. 아무것도 몰라서 용감했던 신입은 질문을 할 수밖에.
"팀장님은 저를 왜 뽑으셨어요?"
"그냥 일 잘하게 생겨서."
아직도 저 이유가 정말인지 그냥 지나가는 말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더 나아가서 정말 나를 보내달라고 한 것인지도 미지수이긴 하지만), 내가 생각해도 딱히 다른 지원자들보다 뛰어난 점은 없었다. 마찬가지로 이전에 수없이 떨어졌던 기업 공고에서도 나는 모자란 지원자였던 적이 없었을 것이다. 결과는 다만 누가 조금 더 잘 어울리는 부하 직원이 될 수 있을 거란 예감을 주느냐의 차이로 엇갈렸겠지.
물론 다른 이유들로 나의 사회생활 첫걸음은 끝도 없이 도전적이었지만 나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진 직책자와 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왠지 모를 안도감을 주었다. 동시에 느껴진 허탈함도 무시 못할 감정이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