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무지개 Oct 30. 2018

너의 무한한 가능성을 응원해

혹시 아이들의 생각의 공간에 울타리를 치고 있지는 않나요?

아래의 이야기를 읽어보고 바로 떠오르는 생각이 무엇인가?

  한 아이가 교통사고로 응급실에 실려 왔다. 아이의 아버지는 아이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가고 있었다. 아이는 수술을 받기 위해 수술실로 들어가고 있었는데, 수술을 맡게 된 의사는 아이를 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의 아이였기 때문이다.  


   ‘아이의 아버지는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오고 있다고 했는데, 수술을 맡게 된 의사도 자기 아이라니, 누가 진짜 아버지지? 병원에서 잘못 연락한 걸까?’ 이 이야기를 듣고 순간적으로 처음 떠오르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내 아차!라는 생각이 들었고 의사가 아이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이야기를 언제 어떻게 듣게(혹은 읽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지않지만 그때 내가 느꼈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나도 모르게 의사는 남자라는 고정관념이 내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었다.


  직업에 대한 성 고정관념뿐만 아니라 여자라면, 남자라면 어떠해야 한다는 편견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성 고정관념을 만드는 일등공신은 TV 프로그램, 광고, 애니메이션, 게임, 책 등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미디어이다.


착하고 희생적이고 가난한 드라마 여주인공은 그에 대한 상이라도 받듯이 백마 탄 왕자와 만나게 되고(똑똑하고 전문적 직업을 가진 여주인공이라고 할지라도 마찬가지다),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심지어 아이들 대상의 애니메이션도 예외는 아니다) 속 여성 캐릭터는 풍만한 가슴에 잘록한 허리, 큰 엉덩이는 기본이며 이를 부각하는 옷이 장착된다. 또 여성 캐릭터는 도전적이고 적극적인 남성 캐릭터에 비해 수동적이게 나오는 경우가 많다.     

     

   이러다 보니 임신하고 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나에게는 고민이 하나 생기게 되었다. 세상에 뿌리 박힌 성(gender) 고정관념과 특정 성이라는 이유로 받아야 하는 제약과 차별 속에서 내 딸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물론 아들이라고 해서 이런 고민을 하지 않지는 않았을 것이지만 더 고민이되는건 사실이다. 성(gender)에 대한 올바른 관념을 가져야 하는 것은 남자아이라고 달라지지는 않는다.)


   성 고정관념은 문화와 양육방식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이미 많은 연구에서 밝혀졌다. 스탠퍼드대학의 맥코비와 재클린 교수가 남녀를 비교하는 1,500개 이상의 연구들을 분석한 결과, 실제 사실에 기초한 성 차이는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하였다. 물론 발달심리학자들은 적지만 일관성 있는 성 차이가 몇 가지 있다고 하였지만 그 차이는 매우 사소하다고 하였다.(인용 1) 하지만 아이들은 만 2~3세가 되면 성 역할을 뚜렷하게 인식한다고 한다. 사회문화와 양육방식이 아이들의 무한한 가능성을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우리 딸이 성 고정관념에 갇혀 생각의 공간을 작게 만들도록 하고 싶지 않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집 안에서부터의 교육이라고 생각했다. 혹시 여성이라는 틀 속에 우리 딸을 놓고 교육하지 않도록 말과 행동을 조심하도록 노력했다. 그림책이며 장난감에서 무의식적으로 습득될 수 있는 성 고정관념에 대해서도 민감해졌다. 민감한 눈으로 바라보자니 매우 많은 부분들이 눈에 띄었다. 백설공주, 인어공주, 신데렐라 등 고전 동화인 공주 시리즈는 말할 것도 없고, 유명 캐릭터인 뽀로로의 그림책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도 병원에 갈 수 있어!>라는 제목의 책에서는 캐릭터들이 공놀이를 하는 장면에서 여성 캐릭터인 패티와 루피만 남자 캐릭터들이 공놀이를 하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구경하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다행히 다른 그림책에서는 다 같이 공놀이를 하는 장면이 나왔다). 유아 스티커북 <붙여도 붙여도 스티커왕>에서는 16가지 직업이 나오는데 간호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남자로 구성되어 있다.

  나는 그림책을 보다가 성 고정관념을 학습할 수 있는 장면들이 나오면 이야기를 다르게 바꿔서 말해준다. 공주라는 단어도 사용을 지양한다. 예쁘다, 귀엽다, 라는 표현과 함께 멋지다, 건강하다, 튼튼하다, 용감하다 등의 단어를 쓰려고 노력한다. 외모보다는 행동에 초점을 맞춘다. 평소에는 내 딸에게 무엇인가를 사주거나 해주려고 할 때 아들이었어도 이렇게 할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한다. 다양한 색깔과 다양한 디자인의 옷을 입힌다. 뛰어놀게 하고 도전하게 한다.


  하지만 나도 성 고정관념에 갇힌 생각을 하거나 말들을 할 때도 많다. 두 돌도 안 된 아이를 보면서 커서 예쁘고 날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물건을 고를 때 분홍색을 우선적으로 생각해 보며, ‘여자 아이라서 그런가 봐요.’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아마 우리 딸이 커서 축구선수가 된다고 하거나 카레이서가 된다고 하면 솔직히 좋아하지는 않을 것 같다. 이미 오랜 시간 동안 체화된 성 고정관념이 만션한 문화양식에서 완전히 자유롭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무엇인가를 바꿔 나가려고 하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사실 기존 체제에 순응하면 안전하고 편안하게 살 수 있다. 혹은 그 체제를 이용해서 더 잘 살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에게


도전하고 꿈꾸는 것 대신 순응하고 적응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기는 싫다.



   우리 딸이 점점 자라게 되면서 나도 해야 될 일이 더 많아질 것이다. 미디어는 여전히 성 고정관념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성 고정관념은 여자 아이들뿐만 아니라 남자아이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이들의 무한한 가능성을 위해서 힘들더라도 지속적으로 미디어에 대한 모니터링을 하는 것이 모든 부모의 의무이지 않을까 싶다.   

  

   아래는 <여성신문 30주년 '내 딸의 더 나은 삶을 약속드립니다'>라는 제목으로 정진경 사회심리학자분이 쓰신 글에서 추천하신 그림책과 동화이다. 나도 한 권씩 우리 딸에게 읽어 줄 생각이다.


페미니즘 계열 그림책

◆ 돼지책. 앤서니 브라운 지음

◆ 종이 봉지 공주. 로버트 먼치 지음, 마이클 마르첸코 그림

◆ 내 멋대로 공주. 베빗 콜 지음, 노은정 옮김, 비룡소

◆ 치마를 입어야지. 아멜리아 블루머! 섀너 코리 글, 체슬리 맥라렌 그림

◆ 올리비아는 공주가 싫어! 이안 팔코너 글, 박선하 역, 주니어김영사

◆ 루비의 소원. 시린 임 브리지스, 소피 블래콜 그림, 이미영 옮김, 비룡소

◆ 그레이스는 놀라워! 메리 호프만, 캐롤라인 빈치 그림, 최순희 옮김, 시공주니어

◆ 과학자 에이다의 대단한 말썽. 안드레아 비티 글, 데이비드 로버츠 그림, 김혜진 옮김, 천 개의 바람

◆ 올리버 버튼은 계집애래요. 토미 드파올라, 문지


페미니즘 동화

◆ 바보처럼 잠만 자는 공주라니! 이경혜 지음, 바람의 아이들

◆ 흑설공주 이야기. 바바라 G. 워커, 박혜란 옮김, 뜨인돌

◆ 엄마의 마흔 번째 생일. 최나미, 사계절   


   내가 좋아하는 작가인 버지니아 울프는 그녀의 책인 <자기만의 방>에서 아래와 같이 이야기했다. 이 아름다운 문장들이 우리 딸은 물론, 모든 아이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기를 바란다.  

 

   우리 각자의 내면은 남성과 여성, 이 두 개의 힘이 주재하고 있다. 존재의 정상적이고 편안한 상태는 두 성이 영적으로 협력하며 함께 조화를 이루며 살 때 이루어진다. 위대한 마음은 양성적이다.

(인용 1)『부모공부』, 고영성, 스마트북스, P96


책으로도 만나보세요!!!

http://naver.me/56IziNdy



매거진의 이전글 육아 2인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