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과거와 작별을 잘하고 있는가
모든 사진은 메멘토 모리이다.
| 수잔 손택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에는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라는 가사가 있다. 서른이 되었을 때 이 문장이 머리로 이해가 되었다면 마흔이 넘어서는 마음에 동요가 일었다. 아마 쉰을 넘어서면 사무치게 들리지 않을까 생각된다. 시간은 멈칫하는 순간도 없이 흘러간다. 오늘은 어제가 되고 어제는 과거가 되고 희미한 기억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사람들은 붙잡을 수 없는 순간을 마냥 보내주지 않는다.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마주하거나 기록하고 싶은 무엇이 나타나면 사진을 찍는다.(사진은 여러 용도로 사용되는 만큼 사진을 찍는 이유도 많다. 이 글에서는 사람들이 자신의 생활 속 순간을 찍는 사적인 사진으로만 한정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내가 찍은 사진은 나의 삶에서 기록되어야 할 순간이며 나는 이 순간을 기억하고자 한다는 나의 의지가 담겨있다. 즉, 하나의 사진은 이미 자신이 기록한 사건에 대한 하나의 메시지가 된다. 1)
사람들은 사진을 통해 더 이상 실재하지 않지만 간직하고 싶은 과거를 언제나 쉽게 소유할 수 있다. 과거를 추억하고 기억하는 데 있어서 사진은 어떤 매체보다 탁월하다. 사진을 찍음으로써 사람들은 그 순간을 다시 볼 수 있다는 것에 안심하게 된다. 수잔 손택은 『사진에 관하여』에서 실제로 사진은 포착된 경험이며, 카메라는 이처럼 경험을 포착해 두려는 심리를 가장 이상적으로 이뤄주는 의식의 도구 2)라고 하였다. 존 버거는 『사진의 이해』에서 사진기가 발명되기 전에 사진의 역할을 대신했던 것은 판화, 드로잉, 회화 등이 아니라 좀 더 의미심장한 대답으로 ‘기억'이라고 말한다. 지금 공간 안에서 사진이 하고 있는 일들이 이전에는 회상 안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3) 하지만 기억과 달리, 사진은 의미를 보존하지는 않는다. 4) 의미를 지니기 위해서는 이해가 작용해야 하는데 이해는 사진을 보는 우리들의 몫이 된다.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의 『세월』에서는 사진에 대한 의미가 부여되고 해석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그녀는 실제 자신의 사진을 매개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녀는 기억에도 없는 자신의 아기 사진부터 무릎에 손녀를 앉히고 찍은 사진까지 지난 온 긴 세월을 사진을 통해 들여다본다. 그 사진 속에는 그녀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녀를 둘러싼 사회와 그 사회 속에서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그녀는 삶의 흔적이 찍힌 사진을 다층적으로 해석하고, 이해하면서 사진 속 순간이 과거가 아니라 흐르고 있는 시간 속에 살아있도록 서사를 부여하였다.
사진은 재현이나 모방 혹은 해석이 아니라, 실제로 그 대상의 흔적 5)이기 때문에 사진 그 자체에는 서사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사진을 볼 때마다 '이 시절은 이랬었지', '내가 이랬었다고?' 등 사진을 보며 지금 시점으로 사진에 의미를 부여한다. 이것은 사진 속 정지된 시간에 다시 생명을 부여하는 의식이다. 그러나 과거의 순간이 사진으로 남아 있다 해도 결국 그 시간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순간이고 사진 속 대상도 결코 지금과 같지 않다. 에르노는 『세월』에서 자신의 과거를 다시 불러내 기억하고 의미를 읽어내지만 결국은 그 시간을 떠나보내는 의식을 행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즉, 이 의식에는 사진 속 순간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동시에 애도하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프로이트는 애도 작업은 상실의 사랑으로부터 새로운 사랑으로 건너가는 정상적이고 건강한 리비도의 경제학 6)이라고 하였다. 마찬가지로 사진을 통한 애도 작업은 과거의 나를 조금씩 떠나보내면서 동시에 과거의 나에서 지금의 나로 건너가며 내 존재를 인식하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나는 『세월』이라는 책을 읽은 후에 오랫동안 보지 않아 먼지가 소복이 쌓인 나의 사진첩을 펼쳐보았다.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성인이 되기 전까지의 많은 사진들이 두 개의 사진첩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런데 두 사진첩에 꽂혀있는 대부분의 사진들은 나의 기억 속에 남아 있지 않았다. 사진을 보면서 나는 ‘아, 그때 나는 이런 모습이었구나’, ‘이런 일도 있었구나’ 등의 식으로 사진에 서사를 부여하였고 사진은 내가 이전에도 ‘존재했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계속 사진첩을 넘기다가 나는 한 사진을 보고 뾰족한 가시에 찔린 듯 마음이 따끔거렸다. 사진 속에는 생크림 케이크가 상위에 올려져 있고 그 뒤로 생일을 맞은 내가 흰색 강아지를 두 팔로 앉고 거의 무표정한 모습으로 앉아있으며 나의 오른쪽에는 입맛을 다시고 있는 듯한 내 남동생이 앉아있다. 그리고 나와 동생 뒤에는 지금의 내 나이 정도 되어 보이는 엄마가 앉아있다. 아마 이 사진은 아빠가 찍어주셨을 것이다. 그냥 보면 평범해 보이는 생일 기념사진이지만 이 사진 속에 있는 남동생과 강아지는 지금 존재하지 않는다. 그 사실을 직시한 순간 뒤틀어진 시간 속에 갇힌 것 같은 현기증과 함께 슬픔이 나에게 찾아왔다. 행복했던 순간이 담긴 사진을 보며 그 당시의 행복을 떠올리지만 사진은 언제나 슬픔을 기저에 깔고 있다. 사진 속 순간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수잔 손택은 『사진에 대하여』에서 '모든 사진은 메멘토 모리이다'라고 하였다. 그녀는 모든 것이 급속히 사라지는 오늘날(그녀가 오늘날이라고 말한 시대에서 50년이 지난 지금은 더 급속도로 모든 것이 사라지고 있다)은 향수를 느낄 수밖에 없는 시대이고 사진이 이 향수를 적극적으로 부추기고 있다고 말한다. 사진은 애수가 깃들어 있는 예술, 황혼의 예술이다. 사진에 담긴 피사체는 사진에 찍혔다는 바로 그 이유로 비애감을 띠게 된다 7). 이 비애감은 지금은 없다는 상실감을 바탕으로 한다. 이별은 했지만 차마 마음속에서는 보내지 못한 옛 연인의 사진을 바라보듯 우리는 사진을 보며 지나간 순간들을 쓰다듬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의 과거는 점점 희미해져 간다. 몇 가지 큰 사건들만이 스냅사진처럼 순간의 이미지로 각인되었지만 그 기억조차 사실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 같다. 현재는 너무나도 순간이고 미래는 잡히지 않아 공허하지만 과거는 내가 경험한 시간으로 나의 존재를 느끼게 해 준다. 사람들은 과거가 기억에서 지워지는 것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신을 상실하는 것처럼 느낀다. 그래서 과거에 집착하고 연연하며 과거가 자신을 지배하도록 내버려 두기도 한다. 우리에게는 과거를 떠나보내기 위한 시간, 과거의 사라짐을 인정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바로 애도의 시간. 그것이 사진이 하는 역할 중 하나이다.
결국 우리는 잊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 우리의 과거를 언젠가는 기억 저편으로 보내기 위해서, 애도를 통해 지금의 나로 돌아오기 위해서 그리고 다시 새롭게 살아갈 힘을 얻기 위해서.
나는 오늘도 내 핸드폰에 저장된 몇 해 전에 찍은 사진첩을 보며 당시의 나와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을 다시 한번 기억하고 그리워하고 떠나보냈다. 아마 사진이 존재하고 내가 존재하는 한 이 애도의 작업은 계속될 것이다.
참고문헌
1) 제프 다이어 엮음, 『존 버거의 사진의 이해』, 열화당, 2015, p.32
2) 수잔 손택, 『사진에 관하여』, 도서출판 이후, 2005, p18
3) 제프 다이어 엮음, 『존 버거의 사진의 이해』, 열화당, 2015, p.65
4) 같은 책, p.66
5) 같은 책, p.65
6) 롤랑 바르트, 『애도일기』, 이순, 2012, p.269
7) 수잔 손택, 『사진에 관하여』, 도서출판 이후, 2005, p.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