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판 리조트에서 2달 살아보기
사이판에 도착해서 비행기에 내리는 순간,
한국과는 다른 습하고 더운 공기를 느꼈다.
아마도 비가 와서 더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더운 공기에 적응하기도 전에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입국심사장에 들어섰다.
장기체류로 인해 의심받을지도 몰라 동기들과 입국 목적에 대해 말을 맞춰놓았지만
그래도 미국령이라고... 떨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난생처음 미국 입국심사란 말이다!
영어 잘하는 두 명의 동기를 맨 앞에 보내고, 그 뒤를 따른 두 명의 동기는 1분도 안돼서 심사를 통과했다.
"오, 너무 쉬운데?" 하던 찰나
아니나 다를까 마지막 순서인 내 차례에 갑자기 직원의 표정이 굳어진다.
다른 줄로 가란다.
딱 봐도 깐깐하게 생긴 아저씨에게 여권을 건네니, 무표정으로 말을 걸어왔다.
"얼마나 체류하니?"
"어디서 지내니?"
"사이판은 처음이니?"
"왜 왔니?"
"2달 동안 사이판 섬에만 있는 게 확실하니?"
"네 동행들은 어디 있니?"
많은 질문을 쏟아내던 아저씨는 더블 체크를 해야겠다며 괜찮겠냐고 물었다.
순간 속으로 생각했다.
'내게 선택권이 있나요?'
알겠다며 아저씨를 따라갔더니 앞에 조사실 같은 무서운 공간이 보인다.
다행히 그 공간으로 나를 보내진 않았고 그 앞에서 취조를 받았다.
두 명의 입국심사위원?들로부터 많은 질문을 받아야 했는데 너무도 당황스러웠다.
연봉부터 시작해서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회사 이름, 부서, 사원증 사진까지 요구했다.
입국 시 얼마의 돈을 들고 왔는지까지 상상도 못 했던 질문을 받아 안 그래도 버벅거리는 영어가 더 안 나오기 시작했고, 꽤 오랜 시간 동안 휴대폰 속 사진까지 보여줘 가며 안간힘을 썼다.
입국심사장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다 나가고, 썰렁한 공간에 나와 아저씨들, 총 3명만이 남았다.
긴장한 내색을 하면 더 의심받을까 봐 애써 웃음 지은 표정을 유지했다.
카톡으로 동기들에게 연락도 해보고, 파파고로 번역도 해보고,
그렇게 30분은 훌쩍 넘긴 것 같았다.
무서운 아저씨들은 계속해서 무언가 궁금한 표정이었다.
도대체 같은 목적을 가지고 온 동기들과 내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마음속으로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되새겨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잘못이 없다.
무고한 시민이다.
거의 1시간가량 심문을 받고 너덜너덜해진 나를 보더니 아저씨들은
마지막에 "그냥 보내주지 뭐" 라는 식의 대화를 나누더니 마지못해 내게 "Enjoy Saipan"이라며 보내줬다.
떨떠름한 아저씨들의 표정이 잊혀지질 않는다.
맨 마지막으로 입국장을 탈출해보니 동기들과 우리를 데리러 오신 대리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리님은 나를 보더니 아마도 중국 입출국 기록이 많아서 잡아둔 것 같다고 하셨다.
그래. 난 무고한 시민이다.
무언가 이상한 것이 있다면 중국 입출국 기록이 많다는 것뿐이다.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싶었다.
그렇게 사이판과 조금은 무서운 첫 만남을 가지고 공항을 나서니 비바람이 우릴 반겼다.
비바람 틈에 무지개도 보였다.
사이판 무지개는 정말 크다던데, 소문대로 거대한 무지개였다!
긴 여정 끝에 리조트에 도착한 우리는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HR Orientation을 비롯한 간략한 OJT를 받았다.
아참, 이곳 직원들은 모두 마주치면 밝게 인사를 해준다.
현지어로 Welcome이라는 뜻의 현지어 "Ha fa dai" 를 외치면서 말이다.
사이판은 넓은 미국 땅 중에서도 최상급의 맑은 공기를 갖고 있다는 것이 OT 내용 중 가장 기억에 남았다.
'서울과 인천에서 미세먼지로 시달리던 내 폐가 너무 맑은 공기에 적응할 수 있을까?'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
다행히 첫 주라 스케줄이 빡빡하지 않고 널널해서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여유로웠다.
다음 주부터는 실제 부서에 투입돼서 업무를 해야 하기 때문에 평일에 자유로울 수 있는 기회는 첫 주뿐이라고 했다.
그래도 내겐 일주일의 휴가와도 같은 리프레시 타임이었다.
객실에서 보이는 오션뷰 하나로 충분했다.
2층이라 환상적인 뷰는 아니었지만 테라스가 있어서 시원한 바깥공기를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에어컨 바람을 싫어하는 나에게 밤바람을 느끼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테라스가 있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 첫날은 총지배인님 그리고 우리를 인도해주실 대리님과 한식당에서 저녁을 함께 했다.
들어서자마자 밖에 보이는 수영장과 휴양지 느낌이 물씬 나는 화이트 인테리어, 테이블에 놓인 생화가 기분 좋은 인상을 주는 그런 곳이었다.
음식 맛도 훌륭했다!
맛있는 탕수육과 해물탕, 나는 감자만 먹었지만 곱창구이도, 기본 반찬도 맛있는 곳이었다.
사실 아침 일찍 집에서 나와 비행기 탑승 전 급히 먹은 던킨도너츠 먼치킨 4알이 속에 든 전부였으니 맛없을 리가 없지만.
무엇보다 사이판에만 있다는 로컬 맥주가 정말 깔끔하고 시원한 것이 내 스타일이었다.
Bud Light, 토이스토리의 버즈 라이트이어가 생각나는 귀여운 이름이라 더욱 마음에 들었다.
2월인 지금 사이판은 건기에서 우기로 넘어가는 시점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생각보다 많이 습하지 않고 온도도 심각하게 높지 않았다.
날씨 어플을 보면 일주일 내내 25~29도 사이를 맴돌았다.
섬이 너무 작아서 구름이 지나가는 것에 따라 시시각각 날씨가 바뀌고,
비가 와도 스콜성으로 잠시 왔다 바로 맑아지는 그런 날씨다.
맑은 사이판, 비 오는 사이판 모두 즐길 수 있는 시기에 와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안녕, 사이판!
잘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