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가 된다면 가져야 할 마음가짐
내가 다닌 첫 조명 설계회사의 소장님,
그러니까 내게 조명을 알려주신 사실상의 사부님(?)은 나에게 종종 이런 말을 했다.
"조명이 대단한 것 같지? 하지만 조명 잘못된다고 큰 일 나지 않아."
의아했다. 당시의 나는 이제 막 조명의 분야에 뛰어든 20대의 꿈 많은 신입 조명 디자이너였다. 세상 모든 게 다 빛으로 보이고, 가는 곳마다 천장만 보고 다니며, 조명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되는 시기였다. 나의 첫 직장상사가, 더군다나 우리나라 1세대 조명설계 전문회사의 대표이며 30년 가까운 경력으로 조명 설계라는 분야의 깊이와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심지어 날 가르치신 분이 이따금씩 버릇처럼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이 의아했으며 한편으로는 서운했다.
인류가 발전하고 모여 살게 되기 시작하면서 사회는 분업화되었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분야가 생겼으며, 자신의 분야를 더욱 갈고닦아 전문가가 되어갔다. 문자와 책의 발달로 인류는 자신의 시행착오와 깨달아 알게 된 것들을 기록하기 시작했으며, 그 기록들이 쌓여 각 영역의 학문이 발전해 나갔다. 각자의 분야가 깊어진 깊이만큼, 한 사람이 알게 되는 세상의 이야기는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깊어진 만큼 비좁아진 각자의 구멍 안에서 하늘을 본다. 내 구멍의 모양이 동그라미면 동그라미의 하늘이, 세모의 구멍이면 세모로 보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모습이라 쉽게 착각한다. 나의 전문분야의 지식이 쌓이며, 나의 관심분야에 대한 애정이 깊어갈수록 세상은 이런 형태라는 더욱더 강한 확신을 갖는다. 브랜딩을 좋아하는 사람은 세상이 모두 브랜드로 보이며, 디자인을 전공하는 사람은 모든 것이 디자인으로, 투자를 하는 사람이라면 모든 것이 돈의 흐름으로 인식되고, 사장이라면 결국 세상의 모든 것이 자본주의와 귀결되어 보일 것이다.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보이는 모든 것은 빛이다."라는 말을 수시로 할 만큼, 빛에 대해 관심 갖기 시작하면서 모든 세상은 빛이라는 관점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런 깊은 애정과 이해로부터 오는 깨달음과 이전에 생각할 수 없었던 통찰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나의 하늘과 다른 사람의 하늘은 다를 수 있으며, 나의 시각 역시 수많은 여러 시각중 하나에 불과하다.'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 겪을 수 있는 세상의 경험과 볼 수 있는 세상의 넓이는 광활한 우주에 비해 너무나 작다.
문제는 나의 경험과 위치와 분야를 통해 얻게 된 관점을 세상의 진리를 발견한 것처럼 생각하는 데 있다. 내가 깨달은 세상의 이치, 지금 시대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문제점, 나의 경험과 지식을 조합해 볼 때 지금 내가 발견한 어떤 관점이 세상을 바꿀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그 착각이 누군가에게 진리로써 강요될 때, 우리는 그를 가리켜 꼰대라고 부른다. 꼰대는 나이와 경험에서만 발생되는 것이 아니다. 전문분야에 대한 왜곡된 애정과 편향된 경험으로부터도 꼰대는 탄생한다.
꼰대는 나이와 경험에서만 발생되는 것이 아니다.
전문분야에 대한 왜곡된 애정과 편향된 경험으로부터도 꼰대는 탄생한다.
내 분야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의 전문분야를 비하한다거나 부정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는 오히려 그 분야의 전문성에 대한 자신감을 기본으로 하며, 세상에 대한 겸손과 다른 분야에 대한 존중이 있지 않다면 할 수 없는 말이다. 이 드넓은 세상과 수많은 지식 속에서 자신의 분야만이 중요하다고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은 마치 내 공을 빼앗길 까 봐 두려워하는 어린아이의 모습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두 살씩 나이를 먹고 사회생활 경험이 쌓여가면서 그때 그 소장님의 말이 한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려고 하는 이들에게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를 이따금씩 깨닫게 된다. 막상 누구라도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가다 보면 내가 있는 분야가 세상 전부인 것 같고, 이걸 모르는 사람은 뭔가 부족한 사람 같으며, 이 분야가 결국 세상을 바꿀 수 있으리라는 착각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경험한 만큼만의 세상을 살아간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은 세상에 대한 겸손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자신의 분야를 보다 넓은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힘이 중요하며 그것은 우리가 끊임없이 책을 읽고, 배우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과 소통해야 하는 이유다.
스타트업에서 남들이 하지 않는 분야를 개척하며 그 나름의 전문가가 되어가면서, 또 브런치에 빛에 대해 글을 쓰며 나만의 생각들을 하나의 큰 이야기로 만들어 나가면서 너무 나만의 세상에 빠지려고 하는 것 같을 때마다 난 소장님의 그 이야기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는다.
'이게 이 세상의 전부는 아냐. 세상은 내 생각보다 훨씬 넓고, 또 다양하니까.'
최근 소장님을 다시 찾아가 커피 한잔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오래 일했던 스타트업을 퇴사한 후 인사드리기 위해 연락을 드렸는데 거의 8년 만의 만남이었다. 약간 더 하얘진 머리와 깊어진 주름 말고는 8년 만에 만난 소장님은 그대로 셨다. 나는 소장님께 '여전히 빛에 대해 관심이 많고, 어떤 일이 될지 아직 모르지만 빛에 대한 일을 하고 싶다.'라고 말씀드렸다. 이에 소장님은 다소 단호하게 "난 반대다."라고 하셨다. 어려워진 조명 디자인 업계가 이유였다. 그 대답을 아쉬워하던 찰나 "그런데 나 같이 나이 든 사람을 만나면 부정적인 이야기밖에 듣지 못한다. 무언가 하고 싶다면 젊은 열정적인 사람들을 만나 많이 이야기해라.'라고 덧붙이셨다.
자신의 분야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힘은 세상에 대한 겸손함과 전문성의 자신감에서 나올 수 있는 말임을 소장님과의 대화로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의 첫 직장의 상사가 멋진 전문가였음에 감사하며 만약 내가 쓴 글이 책으로 나온다면 반드시 소장님께 감수와 함께 추천사를 부탁드려야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