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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수민 라이트랩 Dec 23. 2019

지속 가능한 카페가 된다는 것

이 시대 카페의 의미, 그리고 지속 가능한 카페 모델에 대한 생각



나는 카페를 좋아한다. 사실 각자 좋아하는 스타일의 카페가 다를 뿐, 카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이제 어떤 방식으로든 카페는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카페는 맛있는 커피와 디저트를 즐길 수 있는 곳뿐 아니라, 친구 또는 누군가와 함께하는 만남의 공간이 되기도 하며, 집 또는 사무실에서 벗어나 멋진 공간을 내가 사용하며 나의 여가시간을 보내는 곳의 역할 역시 수행한다. 최근에는 그 두 가지의 역할을 넘어 문화 콘텐츠를 유통하고 생산하는 역할 역시 카페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카페가 계속 생겨나고 또 문을 닫는다. 그 어느 식음료 시장보다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는 분야였으며 누구나 작게,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사업이 카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 카페라는 곳은 처음 커피를 팔았던 곳에서 그 의미와 역할이 점점 변해가고 있다.




커피를 파는 공간에서, 시간과 공간을 소비하는 공간으로



우선 카페는 커피를 파는 곳에서 공간을 제공하는 곳으로의 역할을 바꾼 지 오래다. 물론 기존의 맛있는 커피를 파는 시장 역시 존재하지만 나는 이 두 가지 시장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굳이 나의 주관적인 명칭의 기준으로 나누자면 하나는 커피를 파는 곳의 역할을 하는 ‘커피숍’으로서의 역할과, 시간과 여가를 소비하는 곳으로써의 ‘카페’로서의 역할이다. 어렴풋이 하나였던 역할이 조금씩 명확하게 둘로 나뉘면서 나는 카페는 이제 결코 개인이 쉽게 하기 어려운 사업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유를 먼저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다음과 같다. '커피숍'의 역할은 이미 편의점과 저가형 프랜차이즈, 그리고 다양한 가정용 커피머신들이 장악했으며, 카페의 역할은 이제 결코 작은 매장으로 해결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유일하게 두 가지를 모두 하고 있는 곳은 스타벅스 밖에 없다. 스타벅스는 커피숍, 카페 모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독보적 존재다. 혹여 주변에서 누군가 카페를 창업하겠다고 하면 나는 냉정하게 다음과 같이 묻는다.



그 자금으로 스타벅스 주식을 사는 것과
직접 카페를 개업하는 것 중 어떤 것이 승률이 높을까?




물론 스타벅스가 무자비하게 우리나라 커피시장을 쓸어 담는 와중에도 우리나라만의 멋진 카페들이 많이 생겨난 것도 사실이다. 작지만 디테일과 감각이 살아있는, 프랜차이즈에서는 낼 수 없는 감성으로 무장한 카페들을 곳곳에서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성수동과 한남동, 신사와 종로 일대를 중심으로 개인이 창업하기에는 어려운 규모의 굵직굵직한 국내 유명 브랜드들이 생겨나기도 했다. 화제가 되고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요소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결국 ‘콘텐츠’였다고 생각한다. 공간과 이미지의 콘텐츠가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것이다. 여기에는 배경이 있다.




현대는 가상이 현실을 집어삼키는 시대다. 카페는 그 시대를 거치며 한번 더 변화한다.



현대는 가상이 현실을 집어삼키는 시대라 이야기한다. 실제의 나보다 SNS상의 내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나의 저녁은 망쳤을지언정, SNS에 남길만한 멋진 사진을 남겼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한쪽에서는 개인정보의 보호를 외치지만 또 다른 한쪽으로는 나를 지속적으로 온라인에 노출하는 아이러니도 발생한다. 책 '가상은 현실이다'의 저자는 이를 ‘전시’라고 표현했다. 온라인에 나를 전시하는 행위. 실제의 ‘나’보다 ‘전시된 나’가 더 중요한 세상이 되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가상의 내가 죽으면 현실의 내가 죽듯이, 가상의 내가 무너진다는 것은 현실의 나를 죽일 수만큼 '전시된 나'는 중요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러한 세상으로 바뀌어 가면서 우리가 사는 공간 역시 그 흐름에 맞춰 바뀌었다. 실제 ‘내’가 머무는 용도로의 공간보다 ‘전시되는 나’로의 공간이 더 중요하게 된 것이다. 가장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카페는 가장 먼저 나를 전시하기 위한 공간으로 바뀌어갔다. 처음 커피를 파는 공간에서 시간과 여가를 누리는 공간으로, 이제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가 나를 전시하는 '스튜디오’로서의 역할로 카페의 역할이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이다.



카페는 이제 스튜디오가 되었다. 카페를 방문한 사람은 커피를 마시고 공간을 즐기고 이야기를 나누는 행위보다 온라인에 나를 전시하기 위한 용도로 이 곳을 사용한다. 카페는 나를 전시하는 배경의 역할을 담당하며, 나의 여가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를 표현해주고, 나는 이런 장소를 즐길 만큼 감각적인 사람임을 나타내 주는 장소가 되었다. 그렇게 카페는 나를 전시하는 스튜디오로써 소비된다.




카페는 스튜디오가 되었다.



그래서 카페는 스스로 콘텐츠를 갖기 시작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상향 평준화된 커피나 빵보다는 전시공간으로서의 콘텐츠가 카페의 중요한 요소가 된 것이다. 이제 카페라면 누구나 스튜디오로서 작용할 만한 공간을 확보한다. 그것이 카페로서 커피를 마시거나 여가를 소비하는 것에 방해가 된다 할지라도 강행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었다. 가장 좋은 전망을 을 갖거나 가장 돈을 들여 꾸미는 곳은 카페의 핵심 공간이 되며, 우리는 그곳은 '포토존' 또는 '인스타그램 뷰'라고 부른다. 이런 곳은 늘 경쟁이 치열하기에 편안히 커피를 마시거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누구나 그 자리에 앉고 싶어 한다. 이러한 카페의 본질은 커피의 맛이나 여유로운 시간보다 '온라인의 전시'에 있기 때문이다.



의자가 불편해도 괜찮고, 주변이 시끄러워도 괜찮다. 과도한 세련의 추구로 인해 차가움만이 존재하는 공간 역시 견딜 수 있고, 너무 거칠어 공사장에 있는 것 같은 불편한 공간이어도 괜찮아졌다. 어디서 본 적 없는 것 같았던 새로운 것들은 모두 전시의 요소가 된다. 보여주기 위한 TV 속 세트 같은 공간이 카페라는 이름 위에 펼쳐진다. 말 그대로 스튜디오다. 공간의 우선순위는 거기에 있다. 아름다운 스크린에서 벗어나 실제 공간에 도착하면 이것도 저것도 불편한 것 투성이인 것 같은, 딱 그 느낌이다.



불편한 카페에 주말이면 이전에 찍은 사람들을 보고 스튜디오를 방문해 사진을 찍어 올리려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이는 홍보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쳐 사람들이 계속해 몰려드는 현상을 만든다. 이렇게 한번 붐업되어 카페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하지만 쉽게 뜨거워진 만큼 금방 식기 마련이다. 촬영을 위한 스튜디오는 두 번 가지 않는다. 나를 전시할 수 있는 새로운 스튜디오는 오늘도 계속해서 생겨나기 때문이다.



카페가 콘텐츠를 직접 만들고, 스스로 스튜디오가 되어 이슈를 끌어온 순간 그것은 유행이 되며 머지않아 소비되고 버려진다. 카페는 계속 새로운 유행을 위해 지속적인 콘텐츠를 개발하거나 아니면 도태되는 수밖에 없다. 최근 이슈가 되는 멋진 카페들에 내가 감탄하고 기꺼이 그 공간을 경험하기 위해 방문하면서도, 팬이 될 수 없는 이유이다.




그럼에도 스타벅스는 우리에게 시간과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한다.



내가 스타벅스를 최고의 커피맛이나 공간이라 생각하지 않음에도 팬이 되고 좋아하는 브랜드라고 생각했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스타벅스는 나를 전시하기 위한 공간은 아니다. 물론 그조차도 때론 전시로 활용되지만 적어도 스타벅스 브랜딩의 핵심은 거기에 있지 않다. 스타벅스는 여전히 커피숍으로서의 역할과 우리의 여가시간을 가져가기 위해 노력한다.



처음부터 스타벅스의 목표는 고객의 여가시간을 스타벅스에서 보내도록 만드는 것이었기에 스타벅스는 고객이 공간에 머무는 방식과 시간에 대해 거의 터치하지 않는다. 스타벅스의 커피와 빵이 최고로 맛있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스타벅스를 방문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곳에 머무르는 동안 내 공간과 시간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



그렇기에 나는 더욱 이 시기에 ‘카페’라는 사업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커피숍의 역할로는 편의점을 이길 수 없고, 시간과 공간을 소비하는 역할로는 스타벅스를 이길 수 없다. 스튜디오로서의 카페는 이제 적은 자본으로는 충족될 수 없을 정도로 과열되었으며, 크게 벌린다 해도 잘 되기도 힘들고 잘 되더라도 롱런하기는 더 어려운 사업이 되었다.




어느 골목에서 발견한 새로운 가능성



그러던 중 최근 어떤 카페를 발견했다. 합정과 상수를 잇는 길 어디쯤 위치한 카페였다. 오래된 주택을 개조해 만든 카페는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외관과 내부를 가지고 있었다. 독특한 점은 주택을 개조한 것이니만큼 개별 공간을 충분히 살려 개인의 영역을 존중해 주었다는 점, 그리고 뻔한 조명을 쓰지 않았다는 점 정도였다. 그리고 커피와 빵은 생각 이상으로 맛이 있었다. 요즘 흔히 보이는 인스타그램 포토존도, 카페 전체를 한두 컷으로 요약할 수 있는 멋진 뷰도 가지고 있지 않은 그런 카페였다.



하지만 수년간 이 길목의 카페들이 생기고 사라지는 와중에 이 카페는 살아남았다. 이제는 낡은 티가 제법 나는 카페인데도 여전히 주말에는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오간다. 많은 카페들이 문을 닫는 거리에서 어떻게 이 카페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일까. 그 카페에서 느껴진 것은 편안함, 그리고 배려였다. 그것은 공간의 배치, 구조, 음악, 직원 등 여러 곳에서 느껴졌다. 지인이 나에게 이 카페를 추천하며 했던 ‘거기만 가면 작업이 잘 된다’라는 말이 어떤 것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규모가 좀 더 큰 주택을 개조해 오픈했다는 이 카페의 연희동 지점도 마찬가지였다. 두 공간 모두 인스타를 위해 만들어 놓은  ‘한 방’이 없다. 대신 과한 세련됨이 가지고 오는 불편함 역시 없다. 시간의 때를 묻어 예스러움이 일부 묻어날 뿐, 커피를 마시고, 대화를 하고, 글을 쓰고, 작업을 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요즘의 스튜디오라면 모두 포토존을 만들었을, 가장 넓고 높은 메인 공간 역시 큰 멋을 부린다기보다 머문 사람들이 편안히 커피를 마시고 사색할 수 있는 정도의 공간으로 만들어 놓았다.



사실은 약간 기쁘기도 했다. 지속 가능한 카페의 모형을 본 것 같은 기분에서였다. 모든 카페가 콘텐츠를 만들어 제공하기에 바쁜 이 시대에, 이 곳에서는 방문한 사람들이 콘텐츠를 만들고 있는 듯했다. 나 역시 앉은자리에서 하고자 했던 몇 편의 길고 짧은 글들을 어렵지 않게 써 내려갈 수 있었다. 오로지 내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게다가 이 곳에서 제공하는 커피와 빵은 모두 수준 이상으로 맛있으니 '이러면 다 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짐작하건대 이 카페의 대부분의 고객은 단골일 것 같다. 적어도 처음 방문하는 것보다 여러 번 방문하는 경우가 많을 것 같다. 이 공간은 자신을 전시하기 위해 오는 공간이기보다, 자신의 여가를 혼자 또는 누군가와 보내러 오는 곳이었다. 사진을 찍고 정작 커피는 시끄러운 공간 속에서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떠나야 하는 공간이 아닌, 내가 원하는 만큼 자유로이 공간과 커피를 즐길 수 있는 그런 곳이었을 것이다. 거의 처음으로 ‘스타벅스를 가느니 여기를 오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이 카페는 늘 그렇게 자신의 시간을 보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던 것 같다. 7년이라는 시간 동안 건재했다면 그 사실이 이를 증명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지속 가능한 카페가 된다는 것



책 ‘브랜드가 되어간다는 것’이라는 책에서 경험과 체험을 구분해야 한다고 한다. 브랜드가 된다는 것은 ‘관계’가 생긴다는 말이다. 카페라는 공간과 그곳을 방문한 사람 간에 ‘관계’. 거기에는 존중받는다는 느낌, 그곳에서 편안했다는 기분, 내가 지불한 것 이상을 받았다는 고마움 등이 영향을 미친다. 그러면 사람은 브랜드에게서 마치 인간 대 인간과 같은 ‘관계’를 느끼게 되어 그 공간을 애정 하고, 어려움이 생기면 같이 아파하며, 잘못된 길을 갈 때도 믿어주고 기다려주는 대상이 된다. 브랜딩은 내부적으로 체계를 갖추어 한 가지 철학을 가진 운영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역할을 한다고 하면, 외부적으로는 마치 어떠한 성향을 가진 하나의 인격체처럼 존재하여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교감하고 소통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하지만 현대의 많은 브랜드들은 ‘체험’을 ‘경험’과 착각하여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어떠한 공간에서, 제품에서 어떤 것을 느꼈다고 하여 그것이 브랜딩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 마치 내가 인스타그램 타임라인을 채우고 있는 멋진 유명 카페를 ‘체험’했지만 그 이상 어떠한 ‘관계’를 만들지 못한 것과 같다. 한쪽이 만들어내는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만으로 브랜드는 완성될 수 없다. 브랜드는 하나의 인격체로 사람과의 관계가 형성될 때 비로소 완성된다. 쏟아지는 콘텐츠에 피로를 느낀 사람들이 앞으로 가고 싶어 하는 카페는 그런 브랜드와의 '관계'가 있는 공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만약 대체제가 없다면, 사람들은 다시 스타벅스로 향할 것이다.



카페는 커피를 파는 곳에서, 우리의 여가시간을 보내는 공간으로 변화해왔다. 그리고 온라인의 세계에 나를 전시하는 목적의 스튜디오로 그 모습이 변화해 왔다. 그리고 그 모습은 또다시 변화할 것이다. 무엇이 변하고 무엇이 변하지 않을지에 대해 올바르게 바라볼 때, 지속 가능한 카페는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커피가 카페의 본질이라며 다른 것은 제쳐두고 커피맛을 올리기 위해 노력하며, 누군가는 시간과 공간을 소비하는 것이 카페의 본질이라 생각하고 좋은 공간을 제공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SNS에 사진을 올리는 행위가 이미 새로운 본질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그에 알맞은 카페를 만든다.



어떤 것이 변하지 않을 본질이 되어 오래도록 남을 것인가. 지속 가능한 카페의 답은 그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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