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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수민 라이트랩 Mar 23. 2020

달은 노란색이 아니다

빛을 이해하기 위한 이야기 (6)



콘크리트로 다양한 제품을 디자인하던 시기가 있었다. 강도가 높고, 틀만 만들면 자유로운 형태로 성형이 가능하다는 특징을 활용해 당시에 다양한 대형 화분을 디자인했다. 원기둥이나 반구형태의 단순한 형태에서 벗어나 표면에 패턴을 입히기도 했으며, 표면에 여러 각도를 주어 다양한 형태를 만들었다. 콘크리트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다양한 색을 입힐 수 있다는 거였다. 다양한 안료가 섞인 콘크리트는 수만 가지 색을 가진 단단한 제품이 되었다. 파스텔톤의 각진 화분을 바라보며 당시의 난 이런 질문을 던졌다.




위 화분은 몇 가지의 색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이 화분은 몇 가지의 색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아마 대부분은 ‘한 가지 색’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만약 화분 사진의 각 부분을 떼어내어 비교해 본다면 적어도 꺾인 면마다 각기 다른 색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같은 면에서의 미묘한 색변화까지 구분한다면 아마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색을 화분에서 뽑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누군가는 그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건 빛 때문에 그림자가 생겨 다 다르게 보이는 것이지 원래는 한 가지 색이다.’라고. 만약 그렇다면 저 수많은 색 중 그 ‘원래의 그 한 가지 색’은 어떤 색일까? 그리고 그 색은 무엇을 기준으로 정해질까?



저 수많은 색 중 그 ‘원래의 그 한 가지 색’은 어떤 색일까?
그리고 그 색은 무엇을 기준으로 정해질까?




앞서 말한 것처럼 빛은 화분을 맞고 사방으로 빛을 반사한다. 그리고 반사된 빛이 우리눈으로 들어와 우리는 그 색을 감지한다. 하지만 이렇게 난반사가 일어난다고 해서 모든 방향으로 같은 양의 빛을 반사시키는 것은 아니다. 물체의 표면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굴곡의 비중 때문에, 빛이 들어온 각도와 동일한 정 반대의 각도로 가장 많은 빛이 반사된다. 그 각도와 멀어질수록 표면은 가장 적은 양의 빛을 반사한다. 동일한 색으로 제작된 물체의 표면이 각도에 따라 감지되는 색의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당연히 사물은 어떤 고유한 색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또 우리는 별 무리 없이 그 색을 기억하고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색이라는 건 대상이 가지고 있는 색에 대한 특성뿐 아니라 대상을 비추는 빛, 그리고 관찰자인 우리가 어디서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리고 빛이 오가는 동안의 환경에 따라 수 없이 변화하는 존재다. 빛과 관찰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은 위의 화분을 보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면 빛이 오가는 동안의 환경은 어떻게 물체의 색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일까?



최근 TV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한 IT금융사의 광고가 있다. 지구에서 저 멀리 달을 보고 있는 화면에서 무한정 줌인이 되어 결국 달 표면에 이르러 달 표면에 발자국을 찍는 한 장면으로 이루어진 광고다. 사람들은 그 광고를 보며 각자 다양한 생각들을 했겠지만, 나는 달의 색을 유심히 보았다.  



다시 한번 이 질문을 가지고 광고를 다시 보자. 달은 무슨 색일까?



실제로 달이 떠 있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의 색은 재미있게도 흰색에 가깝다. 달은 스스로 빛을 내는 행성이 아니다. 달은 태양빛을 반사해 지구에 있는 우리 눈에 보이게 되며, 그렇기 때문에 태양 빛의 색이 곧 달빛의 색이라 봐도 무방하다. 풍부한 빛을 머금은 태양빛은 우리 눈에 하얀색을 띄며, 그렇기 때문에 달 역시 하얀색을 띠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달의 색은 노란색일 것이다. 어린 시절 그렸던 우리들의 그림 속 달은 노란색이었으며 각종 책과 그림 속의 달도 노란색이었다. 왜 우리는 달은 노란색으로 기억하고 있을까? 그것은 아마도 우리의 기억 속에 가장 인상적인 달의 장면이 달이 노란빛으로 빛나는 때였기 때문일 것이다. (혹은 그 인상적인 달빛을 이미지화시킨 다양한 그림과 매체 때문일 것이다.) 달은 뜨기 시작해 낮은 고도에 있을 때 산과 건물 등 주변의 모습과 비교되면서 가장 크기가 커 보이며, 이 낮은 고도일 때의 달은 노란색을 띤다. 이것은 태양이 지평선을 넘어갈 때 붉은빛을 띠는 원리와 유사하다.




왜 지평선 부근의 해와 달은 노란빛이나 붉은빛으로 보일까?



빛은 직선으로 움직이며, 물체에 맞으면 반사한다. 거울과 같이 반듯한 면에 맞아 한 방향으로만 반사되는 것을 정반사라고 하며, 울퉁불퉁한(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작은 면까지 포함, 사실상 우리 물질을 이루는 대부분의 표면) 면에 맞을 경우 사방으로 빛이 퍼지게 되는데, 이것을 난반사라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반사를 흔히 산란이라고 부르며 산란은 물체뿐 아니라 공기 중 미세한 입자들을 통해서도 일어난다.



낮시간 하늘이 파랗게 보이는 이유는 지구의 대기 중 미세한 입자를 맞고 빛이 여러 방향으로 퍼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빛이 사방으로 퍼지는 현상을 산란이라고 하는데, 대기의 아주 작은 입자들을 맞고 반사되는 빛에 파란빛이 더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태양의 고도가 낮아지며 햇빛이 통과해야 하는 대기가 길어지면, 이미 파란빛은 먼저 산란이 되어 흩어지고 나머지 붉은빛이 멀리 도달하며 우리 눈에 아름다운 붉은 노을의 색이 보이는 것이다.




태양의 고도가 낮아지며 햇빛이 통과해야 하는 대기가 길어지면, 이미 파란빛은 먼저 산란이 되어 흩어지고 나머지 붉은빛이 멀리 도달하며 우리 눈에 아름다운 붉은 노을의 색이 보이는 것이다.




달도 사실 높은 고도를 유지하고 있는 대부분의 시간에는 거의 하얀색에 가까운 빛을 띤다. 하지만 그 달은 산 중턱이나 건물 옆에 걸려있는 것보다는 인상적이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빛의 산란은 그렇게 우리가 인지하는 태양과 달의 색을 바꾼다.



그렇다면 달은 무슨 색일까? 낮은 고도에서만 노란색이기에 하얀색으로 봐야 할까? 앞서 소개한 영상 마지막 달에 발자국이 찍히는 장면에서 달의 표면은 회색이다. 달의 표면에는 산소, 규소, 마그네슘, 철, 칼슘 및 알루미늄이 풍부하며 이로 인해 회색으로 보이는 것이다. 누군가 달에 도착한 당신에게 달이 무슨 색이냐고 물어본다면 달은 회색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제는 머리가 아프다. 도대체 달은 무슨 색일까.




달은 노란색일까? 흰색일까? 그도 아니면 회색일까?  (출처 : NASA)






빛은 하늘 위 태양이나 집 안의 조명등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공기로 가득 차 있는 대기 중에도, 우리가 머물고 있는 방 안에도, 테이블과 그 위에 있는 책 위에도 빛은 존재한다. 그리고 빛은 공간 속에서 끊임없이 반사하고 산란하며 우리가 사는 세계를 가득 채운다. 그리고 우리는 그중 극히 일부의 빛, 그러니까 내 눈으로 들어온 빛만을 감지하며 우리는 그것을 통해 세상을 받아들이고 사고한다.




빛은 공간 속에서 끊임없이 반사하고 산란하며 우리가 사는 세계를 가득 채운다.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은 빛이다. 그 빛이 어디서 출발해 어떤 과정을 거쳐 내 눈에 들어오느냐에 따라 달은 나에게 노란색일 수도, 흰색일 수도 또 회색일 수도 있다. 대상인 '달' 자체 만으로는 우리가 달이 어떤 색으로 보이는지 알 수 없다. 빛을 이해하기 위해서 빛 자체에 대한 특성과 대상의 특성뿐 아니라 그 빛을 받아들이는 우리, 즉 사람에 대해 알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앞으로는 그 빛을 받아들이는 사람에 대해, 더 나아가 그 빛 속에 사는 우리의 삶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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