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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수민 라이트랩 May 10. 2020

나 혼자만의 기록이라 생각했다.

글로 빛을 쓰게 된 나의 시작과 도전





나 혼자만의 기록이라 생각했다.



빛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디자이너나 건축을 공부하는 사람이면 모를까,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어할 이야기는 될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보기 위한 블로그 같은 것도 운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따금씩 그냥 나의 개인 SNS 계정에 빛에 대한 나의 생각들을 끄적거리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나의 첫 직장은 조명설계사무소였다. 운 좋게도 오랜 업력을 지닌, 업계에서 유명한 설계회사였다. 덕분에 벽 한쪽 책장에 가득 쌓여있는 그간의 사례들을 들춰보고, 다양한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빛이라는 매력적인 존재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다. 새로운 눈은 세상의 모든 것이 빛이라는 존재를 통해 보도록 만들었으며, 자연에서부터 건축과 디자인 특히 우리 삶 속에 빛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하지만 일을 시작한 지 불과 3년 차 되던 해에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터졌고, 에너지 문제가 세계적으로 대두되면서 당시 내가 있던 조명업계는 큰 타격을 입었다. 빛을 너무 좋아했지만, 한동안은 회복되기 힘들거라 판단한 나는 다른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후, 다른 영역에서 일을 하면서도 빛에 대한 나의 애정은 끊이지 않았다.  빛이라는 존재를 인지하고 바라보니 어느 분야든 빛과 연관되지 않은 분야가 없었다. 건축과 디자인은 당연하고, 자동차를 타도 조명을 구경하고, 빛을 그렸다고 회자되는 화가들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예술가가 되었으며, 매장의 조명 코너는 나의 놀이터요 우리 집은 실험실이 되었다. 그러면서 하게 된 생각들을 개인 SNS 계정에 메모하듯 짧게 올리곤 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누군가 읽어주길 바라는 글이었다기보다 혼자만의 기록에 가까웠다.



처음부터 브런치에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앞에서 말했듯, 나는 글을 제대로 쓸 줄 아는 사람도 아니었으며, 조명업계를 떠난지도 오래되었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재미있어할 거라 생각하지도 않았었다. 그전까지 빛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던 사람들은 대부분 내 주변 선후배 디자이너 또는 건축에 관심 있는 사람 정도였기 때문이다.



계기는 큰 맘먹고 시작한 어느 독서모임에서 시작됐다. 처음 만난 낯선 사람들 앞 자기소개 시간, 평소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빛 이야기를 몇 가지 나누자 순간적으로 엄청난 관심이 나에게 쏟아졌다. 전혀 다른 주제를 가진 모임이었고, 멤버 중엔 디자이너나 건축가 한 명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원래의 주제는 잠시 잊을 만큼 나의 빛 이야기를 흥미로워했다. 이 짧고도 특별했던 순간에 나는 어떤 작은 가능성을 보았다.





‘어쩌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재미있어하지 않을까...!?’



어딘가에 글로 내가 가진 빛 이야기를 써 보고 싶었다. 나만의 공간이 아닌, 보다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공간에. 오랜만에 브런치에 로그인을 했다. 예전에 다른 주제로 이미 두 번을 시원하게 떨어지고 나서 덮어둔 계정이었다. 오랜만에 하얀색 창을 열었다. 커서가 깜빡였다. 그리고 혼자 써왔던 메모들을 처음으로 긴 글의 형태로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빛이라는 새로운 주제로 두 편의 글을 작성한 후 작가를 지원했고 드디어 브런치의 작가가 되었다.



처음 들어보는 '작가'라는 호칭은 나에게 큰 도전이었고, 또 한 번의 강한 동기부여가 되었다. 아직 제대로 발행된 글 하나 없지만 벌써 작가가 된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첫 번째 글을 업로드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미 한번 썼던 글이었지만 막상 업로드하려니 처음 쓴 글은 너무 거칠었다. 느리지만 차분히 글을 정리하고 고쳐나갔다. 그동안 아내와 여행을 다니면서 찍기만 하고 묻어두었던 하드 드라이브의 사진들도 다시 꺼내어 보았다. 이야기에 필요한 사진들을 찾기 위해서였다. 한참 동안 글과 이미지들을 조합하고 다듬었다. 해보지 않은 작업이었기에 서툴렀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에 신이 났다.



며칠 동안 이어진 수정 끝에 겨우 5분여 분량의 짧은 글 하나를 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이어 두 번째 글을 정리하고 올리던 즈음, 신기하게도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의 부족한 글을, 그것도 나를 모르는 누군가가 읽고 반응해 준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오직 글로만 나를 만나본 누군가가 나의 생각과 글에 자신을 노출하며 좋아요를 누르고, 시간을 내어 답글을 달아준다는 것이 감사하고 소중했다.



글을 쓰다 보니 욕심이 생겼다. 파편처럼 흩어져 있던 소재들이 글을 쓰면서 하나의 정돈된 이야기가 되어갔다. 이 매력 있는 빛이라는 존재에 대해, 그리고 좋은 빛을 알아감으로써 더 나아지는 우리에 삶에 대해 이야기하자는 보다 구체적인 목표도 생겼다. 조명이라는 분야에 발을 담갔던 시간도 겨우 3년여의 짧은 시간이었고, 그 분야를 떠난지도 오래되었기에 과연 내가 이야기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고민했던 적이 있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시간은 오히려 내가 이 분야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시각을 키웠으며, 전문가로서가 아닌 쉽고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글을 쓰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자의 반 타의 반 쉬운 글을 쓰려고 노력했기 때문이었을까, 내가 올린 글들은 운 좋게도 생각보다 많은 사람에게 읽히기 시작했다. 다음과 브런치 등에 종종 소개되고, 구독자가 생기기 시작했다. 놀라운 일이었다. 어떤 글들은 공유에 공유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퍼져나가 읽히게 되었다. 그렇게 차근차근 글을 쓰기 시작한 지 몇 개월이 흘러 지금은 책을 낼 출판사를 찾고 있는 과정에 이르렀다. 마치 맨 처음 어느 독서모임에서 생각지도 못한 관심을 받았던 그 순간처럼, 많은 사람들이 나의 빛 이야기에 관심 가져줄 수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이제 나는 여러 사람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 도전하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다. 비록 내가 글을 제대로 써본 적 없다 할지라도, 나의 이야기가 작아 보인다 할지라도, 내가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라 할지라도 우리는 글을 쓸 수 있다. 글을 쓴다는 것, 그것을 시작한다는 것 자체로 우리의 생각은 발전한다. 그리고 누군가의 나의 글을 읽고, 생각에 공감하고, 모두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경험은 나 자신을 변화시킨다. 줄 세우고 순위 매기기에 지친 우리에게, 나만의 이야기를 향해 한 걸음을 떼는 그 행위의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이제는 알게 되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당장 나의 일과 역할에 충실하느라 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면, 또는 나만이 좋아하는 이야기일 거라 단정 짓고 홀로 품고 있는 이야기가 있다면, 서툴더라도 글을 써보았으면 한다. 유창하지 못해도 다듬고 다듬을 수 있는 것이 글의 장점이니까. 그리고 천천히 쌓아 놓은 글은 분명 그 이야기의 가치를 아는 누군가에게 읽힐 것이며, 그 경험은 나 자신을 아껴야 하는 이유를 발견하는 소중한 자산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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