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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수민 라이트랩 Aug 28. 2020

빛의 형태를 디자인하다

루이스폴센 조명에 담긴 빛 이야기



19세기 후반, 백열전구가 세상에 처음 등장했다. 전기를 다루는 기술이 점차 발달하면서, 많은 과학자들이 전기를 통해 빛을 만드는 일에 몰두했다. 그리고 토마스 에디슨(Thomas Alva Edison)은 가정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백열전구를 만드는 데 성공한다. 실용화에 가장 성공한 사람이 에디슨이었을 뿐, 이미 19세기 초반부터 영국과 미국, 러시아 등 전 세계에서 백열전구의 대한 특허가 20개 이상 출원되었을 만큼 전기를 이용해 만들어지는 빛이 세상을 밝히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던 시기였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백열전구라는 새로운 빛을 좋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그렇게 개발된 전기시스템과 백열전구는 이전의 오일램프, 가스램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밝았다. 백열전구는 빠르게 증기선, 지하 등 어두운 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이 되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백열전구라는 새로운 빛을 좋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눈부심으로 인해 오랫동안 백열전구가 밝히는 환경에 노출된 작업자들의 시력이 나빠지는 현상이 발생했다.



더군다나 그 전까지의 램프들은 주로 다루기 쉬운 테이블이나 작업대 위, 창가 등 눈과 비슷한 높이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를 걱정한 런던의 안과 의사들은 광원에서 직접 나오는 직사광을 이용하지 못하게 하는 법안을 만들었다. 분명히 이전까지의 빛을 대하는 방식을 그대로 백열전구로 사용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이때부터 많은 사람들이 '이 새로운 빛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이 새로운 빛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지만 이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램프의 광량을 낮추자니 열을 통해 빛을 내는 백열전구의 특성상 전력 효율이 현저하게 떨어지게 된다. 눈이 부시지 않도록 램프를 가리면 빛의 효율이 떨어지며, 정작 필요한 곳을 밝히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렇게 백열전구는 밝히자니 눈이 부셨고, 덮어 씌우자니 효율이 너무 낮은 램프였다.



새로운 광원을 위한 새로운 조명기구가 필요했다. 수많은 디자이너와 과학자들이 열면 눈이 부시고 막으면 효율이 떨어지는 이 아이러니한 문제를 풀기 위해 다양한 방법들을 고안했다. 그중 루이스폴센의 조명을 설계한 건축가 폴 헤닝센(Poul Henningsen)은 세 개의 갓으로 이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했다.




조명 갓에 따라 반사되는 빛의 형태를 보여주는 PH조명 단면 이미지 (출처 : 루이스폴센 홈페이지)


PH조명의 단면은 빛의 건축가라고 불리는 루이스 칸의 켐벨 뮤지엄 단면을 연상시킨다.



PH시리즈로 불리는 이 조명은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전구가 보이지 않으면서도, 빛은 여러 개의 갓에 반사되어 원하는 곳에 밝고 부드럽게 떨어졌다. 공간의 높은 곳에 설치하면 눈이 부시지 않으면서 공간을 아름답게 밝혀주었다. 심지어 조형적으로도 아름다운 이 조명은 루이스폴센의 대표 조명이 되었으며, 이후에 나오는 다양한 루이스폴센의 조명들이 빛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를 알려주는 푯대와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PH시리즈는 계속 발전해 다양한 조명으로 만들어졌다. 조명 갓의 각도와 넓이는 빛을 어디로 보낼지를 결정한다. 형태에 따라 더 위로 보낼 수도, 옆으로 보낼 수도 또는 아래로 보낼 수도 있다. 갓의 표면 컬러는 각 구간으로 보내지는 빛의 색감에 영향을 준다. 아래로 향하는 빛은 전구색을 유지하되, 옆으로 퍼지는 빛은 푸른색 전등갓에 반사시켜 아래로 향하는 빛보다 푸른색을 더해줄 수 있다. 갓의 재질은 무광으로 빛을 산란시킬지, 거울처럼 그대로 반사시킬지, 유리처럼 일부를 머금어 빛나게 할지를 결정하여 각기 다른 빛의 형태를 만들어낸다,




다양한 곳에서 만난 각기 다른 루이스폴센 PH 펜던트 조명



그러한 특성을 바탕으로 수많은 PH시리즈가 생겨났다. 어찌 보면 비슷해 보이는 조명이지만, 같은 빛의 형태와 색상을 가진 조명은 하나도 없다. 사실 인공광원이 풍성한 현대에는 이러한 미세한 차이가 가지고 오는 빛의 변화를 일일이 느끼기는 어려운 건 사실이다. 하지만 처음 백열전구가 등장한 시대 유난히 길고 어두운 북유럽의 겨울밤을 조명 한두 개로 밝혔던 사람들의 삶을 생각해 본다면, 아름다운 형태와 빛을 가진 조명기구 하나가 가진 힘은 실로 작지 않았을 것임을 알 수 있다.



"빛의 형태를 디자인한다(Design to Shape Light)."라는 슬로건처럼, 루이스폴센의 조명들은 단지 조명기구의 외형이 아니라 빛을 디자인해왔다. 물론 빛을 디자인하는 다른 수많은 조명기구와 브랜드들이 있지만 '백열전구'라는 광원을 공학적으로 그리고 미적으로 가장 완성도 높고 아름답게 풀어낸 조명은 루이스폴센의 PH시리즈라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빛의 형태를 디자인한다.
Design to Shape Light.






그들의 슬로건은 그 이후에 만들어지는 수많은 조명에도 꾸준히 이어져오고 있다. 백열전구에서 LED로 광원이 바뀌어가고, 새로운 형태들이 계속 나오지만 루이스폴센의 조명은 늘 빛을 고려하며 미적으로도 아름다운 조명을 계속 만들어내고 있다.



최근 인테리어와 가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좋은 조명'에 대한 관심도 함께 높아졌다. 이전의 조명이 단순히 공간을 밝히는 용도였다면, 이제는 점차 인테리어의 조형적 요소로써 조명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혹자는 왜 이렇게 조명이 비싸냐고 말한다. 구성을 보면 대단한 재료나 기술이 사용된 것도 아니라고 말이다. 그렇기에 가장 불법 복제품이 많이 만들어지는 영역이 조명이기도 하다. 하지만 모든 분야가 그렇듯 기능과 재료, 제조방식 같은 표면적인 영역을 넘어 그 이상의 가치와 스토리를 담고 있으며, 또 사람들이 기꺼이 그 가치에 높은 비용을 지불하는 제품과 브랜드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명품이라 부른다.



"좋은 조명은 비싸지만, 좋은 빛은 비싸지 않다."라는 말은 필자가 자주 언급해온 말이다. 비싼 조명을 산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빛환경을 얻는 것도 아니며, 좋은 빛을 얻기 위해 무조건 명품 조명을 사야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비싸지 않은 비용으로도 좋은 빛환경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누구나 각자가 인정하는 특정한 분야의 명품이 있으며, 그 명품은 그 분야에서 각각의 스토리와 이유로 인정받는다.



루이스폴센은 조명계의 명품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다. 다만 루이스폴센이 명품으로 불리는 이유는 단지 아름다운 외형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루이스폴센의 가치는 외형과 함께 빛의 형태를 디자인하는 그들의 방향에 있다. 루이스폴센뿐만 아니라 수많은 멋진 조명 브랜드는 조명기구의 외형에 앞서 빛을 다룬다. 단순한 외형의 아름다움을 넘어, 좋은 조명에 담긴 좋은 빛에 대한 이야기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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