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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수민 라이트랩 Sep 21. 2020

고래는 빛이었다.

오랜 시간 인류에게 빛을 안겨준 안타깝고 고마운 존재에 대하여



인류에게 오랜 시간 고래는 빛이었다.




처음 불을 발견한 뒤, 어둠을 물리치기 위해 인류는 나뭇가지와 식물의 씨앗 등에서 만든 기름에 불을 붙여 빛을 만들었다. 들짐승 및 가축으로부터 나온 기름도 사용하였다. 하지만 그러한 재료들은 너무 빨리 불타 없어지거나, 구하기가 어렵거나 구하더라도 그 양이 매우 적었으며, 태울 때마다 그을음과 악취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마저도 태울 기름이 있는 자는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었겠지만.



그러던 중 '바다 위의 등불'이라 불리는 존재가 나타났다. 바로 고래 기름이었다. 18세기, 해상무역과 어업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나던 시기, 고래기름은 빛을 만들기 위한 최고의 재료였다. 고래기름은 이전에 불을 밝히던 다른 재료에 비해 값도 싸고 공급량도 많았다. 큰 고래의 경우 한 마리 당 60배럴, 약 1만 리터의 기름이 나왔다고 한다. 그렇게 고래기름은 인류의 어둠을 밝히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고래의 종류에 따라, 또 고래 기름을 다루는 방식에 따라 각기 다른 품질을 가진 기름이 나왔다. 남방 긴 수염고래와 북방 긴 수염고래가 주로 사용되었으며, 고래기름을 정제하는 방법도 1년에 걸쳐 계절별 기름이 따로 만들어질 정도로 복잡하고 많은 정성이 들어갔다. 특히 향유고래의 머리에서 나온 고래 왁스로 밝힌 불빛은 가장 희고 맑았다고 한다. 게다가 그을음도 적었으며 오래 지속되었고 더운 날씨에도 물러지지 않는 최고급 재료였다.



만약 18세기에 지금과 같이 빛 이야기를 하고자 했다면 지금과 같이 형광등과 LED램프를 비교하거나 색온도를 구분하는 대신, 남방 긴 수염고래와 향유고래 기름의 빛 차이, 겨울 고래기름과 봄 고래기름 램프의 빛깔 차이를 이야기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Photo by Iswanto Arif on Unsplash



하지만 명이 있으면 반드시 암도 존재하듯, 우리에게 좋은 빛의 재료가 된 고래는 그로 인해 무차별적으로 포획되는 안타까운 일들이 일어났다. 인공의 빛이 귀하던 시절이었기에, 빛은 곧 권력이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더 밝고 깨끗한 빛을 원했고, 이윤을 취하려는 자들은 그를 위해 엄청난 수의 고래를 잡아왔다. 그렇게 권력의 야망과, 어둠을 이기고 무한히 번영하고픈 인류의 욕심으로 인해 수많은 고래들이 잡혀 빛이 되어 사라졌다.



멸종 위기의 고래를 구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석유의 발견이었다. 석유와 전기로 이어지는 대체에너지가 인류의 빛을 만들어 내지 못했더라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또한 그렇게 대체되었다 하더라도 인류를 밝히기 위해 셀 수 없이 많은 고래가 희생되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렇게 오랜 시간 인류에게 고래는 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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