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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수민 라이트랩 Oct 22. 2021

아기 거북은 반짝이는 바다에
도달할 수 있을까

인류가 만든 빛으로 인해 바뀌는 지구의 빛 환경, 그로 인한 영향들

        

날이 어두워지고 파도소리만이 들리는 해변. 하얀 알 껍질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깨진 알 속에서 아기 거북이가 태어났다. 여기까지 온 과정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먼저 모래의 굵기 모래의 온도 바닷물로부터의 거리 등을 따져보고 신중히 알을 낳은 어미 거북의 선택이 있었다. 모래가 너무 가벼우면 다른 동물로부터 쉽게 파지거나 쓸려 알이 드러날 위험이 있다. 그렇다고 너무 깊고 단단하게 파묻으면 새끼가 알을 까고 나올 수 없다. 바다와의 거리 역시 중요하다. 너무 가깝다면 만조 때 바닷물에 휩쓸려 물고기와 새우의 먹잇감이 될 것이고, 너무 멀다면 태어난 아기 거북이가 바다에 닿기도 전에 모두 지쳐버릴 것이다. 그렇게 최적의 장소에서 수십여 일을 무사히 버틴 거북이 알만이 비로소 부화에 성공한다.    


 

수많은 위험을 거치고 드디어 아기 거북이가 세상에 태어났다. 갓 부화한 아기 거북이들은 너도나도 지표면으로 기어 나온다. 이때 표면의 모래가 뜨거우면 다시 땅속을 파고 들어가 모래가 식기를 기다린다. 한낮의 뜨거운 태양과 하늘에서 자신을 노리는 새들을 피해 서늘하고 어두운 밤을 택한다. 체력이 떨어지기 전에, 몸이 마르기 전에 그리고 다른 동물에게 발각되기 전에 바다에 도달해야 한다. 물 밖에서 청각이 둔한 거북이는 시각을 이용해 바다를 찾는다. 얕게 경사진 해변에서 바라본 바다의 표면은 달빛과 별빛이 반사되어 반짝거린다. 알에서 나와 빛을 따라 바다로 향하는 것은 수천 년 동안 이어져온 거북이들의 본능이다.      



때를 직감한 아기 거북은 드디어 지표면으로 올라와 본능적으로 바다의 빛을 향해 내달린다. 중간중간 길을 막은 조개껍질과 나뭇가지를 넘고, 때로는 사람의 발자국이 만들어 놓은 깊고 어두운 모래 골짜기를 힘겹게 오르기도 한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아기 거북의 몸이 마르고 체력이 다할 때쯤 도착한 곳. 하지만 그곳은 안타깝게도 바다와 정 반대인 해안도로 가로등 아래였다. 지금도 수많은 아기 거북이들은 바닷가의 리조트, 상업시설, 간판 등이 비추는 빛에 속아 바다가 아닌 육지를 향해 기어간다. 기존에도 1% 정도의 낮은 거북이의 생존확률은 인간이 밝힌 빛으로 인해 이전보다 훨씬 더 낮아지고 있다.                          



갓 부화해 바다를 향해 움직이는 아기 거북



어두운 밤을 밝히는 빛으로 인해 우리는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길고 안전한 밤과 풍성하고 화려한 경관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밤의 인공조명이 오히려 혼란을 주는 사례도 적지 않다. 공항의 활주로는 명확한 조명의 색상, 광도, 빔 각도, 방향, 휘도에 대한 기준을 만들어 운영된다. 공항 주변에는 색을 가지거나 위를 향해 비추는 경관조명과 같이 혼선을 줄 수 있는 조명의 사용이 제한된다. 비행에 수많은 관측 장비가 사용되는 현재에도 여전히 시각정보는 비행에 있어 매우 중요한 관측 요소이기에, 이처럼 공항 내외부 빛은 엄격하게 관리된다.     



인간은 자신들의 비행을 위한 빛환경을 만들기 위해 이토록 노력하지만, 새와 곤충과 같이 다른 비행을 보호하기 위해 하는 노력은 매우 미미하다. 하늘을 나는 곤충의 경우 어두운 밤에는 낮에 비해 시각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밤하늘의 달과 별의 위치를 사용하여 방향을 탐지하곤 한다. 나방은 달이 없는 밤에 북극성을 기준으로 비행하며, 딱정벌레는 은하수를, 말벌과 꿀벌, 귀뚜라미와 개미는 달빛을 사용해 방향을 탐지한다는 것이 연구를 통해 알려졌다.  곤충도 이러하니 계절에 따라 먼 길을 비행하는 새들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날아다니는 새와 곤충뿐만이 아니다. 앞서 이야기한 바다거북의 사례처럼 이 땅 위에 발을 딛고 사는 수많은 생명체들이 어두운 밤 인공조명의 영향을 받는다. 전 세계적으로 척추동물의 약 30%, 무척추동물의 약 60% 이상이 야행성이라고 한다. 이들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어두운 밤 작은 빛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심지어 여기서 말하는 ‘빛’은 우리가 보고 느끼는 가시광선 이외의 파장도 포함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인공조명은 대게 가시광선뿐 아니라 자외선과 적외선까지 넓은 범위의 빛을 방출한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빛에 의해서도 이 땅의 수많은 동물과 곤충, 그리고 식물들은 영향을 받는다.     



이 땅의 모든 생명체는 아주 오랫동안 태양과 달의 빛과 주기에 적응하며 살아왔다. 허나 짧은 시간 급속도로 발전한 인공조명의 빛은 이 땅의 생명체가 적응해온 근본적인 활동주기와 감각정보를 흩트려놓는다. 도시를 중심으로 점차 인류의 밤은 밝아지기 시작했고 산업화와 인공조명의 발전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밝은 밤을 만들었다. 거대 도시가 생겨나면서 이는 더 이상 하나의 가로등이나 거리의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도시 전체가 마치 어두움을 용인하지 않는 것처럼 빈 곳 없이 밝은 빛으로 채우기 시작했다. 아네테 크롭베네슈(Annette Krop-Benesch)는 그의 저서 <우리의 밤은 너무 밝다>에서 이러한 상황을 “빛이 거대한 뚜껑처럼 지구를 덮었다.”라고 표현했다. 인류의 조명은 우리가 사는 공간 주변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지표면에 반사하고 대기 중에 산란하며 말 그대로 점차 지구를 ‘덮고’ 있다. 이 현상은 여러 가지 형태로 생태계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만든다.     




인류의 조명은 우리가 사는 공간 주변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지표면에 반사하고 대기 중에 산란하며 말 그대로 점차 지구를 ‘덮고’ 있다.



우리는 ‘안전’과 ‘번영’이라는 이유로 빛에 갇혀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선 빛은 생명체의 활동에 교란을 가져온다. 빛을 좋아하는 곤충과 어류는 어두운 밤 밝은 인공조명을 향해 모여든다. 가로등 주변에서 우리는 날아다니는 수많은 곤충들을 볼 수 있다. 곤충이 빛을 향해 모여드는 현상이 의미하는 것은 단지 그들의 활동 영역이 바뀐 것 정도로 그치지 않는다. 빛을 따르는 개체와 빛을 피하는 개체의 활동 영역을 인위적으로 나누게 되고, 이를 활용하거나 그렇지 못한 상위 개체의 활동 영역과 우열까지도 나누어 버린다. 보다 넓은 지역과 공간에서 다양한 활동을 해야 하는 개체들이 가로등 밑에서 충돌, 과열, 탈수 또는 포식의 결과로 죽어간다. 이러한 현상은 해상교량이나 선박의 인공조명이 존재하는 바닷속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일어난다.     



수많은 곤충이 가로등 밑에서 충돌, 과열, 탈수, 포식의 결과로 죽어간다.

 

 

또한 밤의 과도한 인공조명은 또한 야간에 활동하는 생명체들의 시각 능력과 방향 탐지에 혼선을 가지고 온다. 달빛과 별빛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수많은 곤충과 새들이 비행 중에 길을 잃고 헤맨다. 또한 강한 인공조명에 노출된 새와 곤충들은 시각능력이 저하되거나 심한 경우 영구적으로 상실되기도 한다. 밤에도 불이 켜 있는 투명한 건물 유리창에 부딪혀 죽는 새만 해도 엄청난 수에 이른다. 미국 시카고는 봄가을이면 500만 마리의 철새가 도시를 지나갈 정도로 새의 이동경로 한복판에 위치한다. 이 도시에 불을 밝힌 높은 건물들이 생겨나면서 밤하늘을 가로지르던 철새들이 건물 유리창에 부딪히거나 지칠 때까지 건물 주위를 빙빙 돌며 이동하지 않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 정도가 심각해 매일 아침 건물 관리인들은 지붕에서 죽은 새를 삽으로 퍼내야 했다고 한다. 이를 위해 시카고는 절전 프로그램을 계획해 철새가 이동하는 시기에는 외부 조명을 끄고, 차양을 설치하고, 실내조명을 최대한 낮춤으로써 새의 사망률을 80퍼센트 가까이 줄였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이러한 결과와 더불어 각 개체의 생식 능력 변화, 나아가 개체수에 영향을 미쳐 결국 생태계의 균형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다. 야간의 빛공해가 식물의 엽록체 미세구조에 변화를 일으킨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빛에 민감한 식물과 작물들은 적은 양의 인공조명으로도 발화 시기에 변화가 생기기도 했다. 또한 육지의 동물과 곤충들, 바다의 어류들 역시 인공조명으로 인해 영역, 개체수, 생식의 영향을 받으며 생태계의 변화들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자연의 균형을 깨뜨리면서 환경오염, 수질오염 등의 결과로 나타나며, 반복된다면 결국 지구 상에 사는 모든 생명체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큰 문제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빛 공해로 인해 나타나게 되는 문제는 단순히 별을 보기 어려워진다는 문제 정도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는 생각보다 광범위한 영역에서 지구에 또 인류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지만 무조건 환경에 영향을 주는 빛을 줄이자는 단순한 해결책으로 접근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한 예로 [빛이라는 물감] 편에서 이야기했던 낮은 연색성의 나트륨램프를 사용한 가로등이 메탈할라이드나 LED 같은 높은 연색성을 가진 램프로 바뀌면서 시각적 쾌적함 뿐만 아니라 운전자 및 보행자의 안전에도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곤충에 미치는 영향은 장파장의 단색광인 나트륨램프 가로등이 이후의 다른 백색 광원의 가로등보다 오히려 적었다고 한다. 우리에겐 빛의 발전이 곤충에게는 더 유해한 결과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가로등을 다시 이전의 단색광으로 돌아가기는 쉽지 않다. 우선 사용하지 않지만 밝게 켜 있는 우리 집, 사무실, 상업시설, 공공공간의 빛부터 줄여나가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무조건 길이 어둡다고 높고 밝은 가로등부터 놓을 것이 아니라 필요한 밝기와 배광, 시간을 고려해 최소한의 빛을 놓는 연습부터 시작해야 한다. 도시는 24시간 환한 빛으로 채워두고,  자신들의 침실은 암막커튼으로 빛을 가린 채 잠을 자는 인간의 모습이 이 땅의 다른 생명들에게는 매우 이기적인 모습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도시는 24시간 환한 빛으로 채워두고,  자신들의 침실은 암막커튼으로 빛을 가린 채 잠을 자는 인간의 모습이 이 땅의 다른 생명들에게는 매우 이기적인 모습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너무나 당연한 인공조명은 인류 혹은 지구 환경의 역사로 봤을 때 아주 최근에서야 이 땅에 나타난 변화의 요소다. 긴 호흡으로 보았을 때 우리는 인공조명이 선사한 어둠의 정복에 아직 심취해 무분별하게 이 땅을 과도하게 밝히고 있는 시기를 지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앞으로 지구의 밤은 더더욱 밝아져 결국 많은 것들이 망가지는 결과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실내에서의 밝은 빛에 익숙해져 갈수록 실외에서도 점점 더 밝을 빛을 요구하게 될 테니까 말이다. 지구는 우리 인간만이 살아가는 공간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옆 사람이 잠을 잘 때 방의 불을 함부로 켜지 않듯이, 아기 거북이가 온전히 바다를 향해 달려갈 수 있도록 우리의 불을 하나쯤 꺼둘 수 있는 배려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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