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무실의 '나이트 시프트'를 통해 본 빛의 또 다른 가능성
1인 가구의 비중이 높아지고, 재택근무와 인디펜던트 워커 등 업무의 방식과 형식이 급속히 변화하면서 우리의 공간도 달라지고 있다. 이전에는 가족 네 명이서 30평의 공간을 나누어 썼다면 지금은 7~8평의 공간을 혼자 사용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로써 독립적이고 개인적인 공간은 만들어질 수 있지만 한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은 매우 줄어든다. 이는 주거공간도 업무공간도 마찬가지다. 코워킹, 코리빙은 이러한 흐름 속에 탄생했다. 작은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모이면 또 다른 공간 활용과 시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개념과 시스템은 점점 발전하면서 보다 완성된 형태를 갖추어 나가고 있다.
한 때 코리빙을 준비하는 모 대기업 건설사의 담당자분과 이야기를 나누었던 적이 있다. 코리빙 공간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핵심은 '공용공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있다. 때문에 기업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는 이 공용공간을 어떻게 기획하여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개별 공간+a를 온전히 사용할 수 있게 하느냐였다. 공용공간이 무한정 존재하면 좋겠지만 그럴 수는 없다. 한정된 공간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은 ‘빛’이라고 말씀드렸다. 빛은 가장 적은 비용으로 가장 큰 분위기의 전환을 이끌 수 있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나는 한정된 공간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은 ‘빛’이라고 말씀드렸다.
한 공간을 여러 용도로 사용하는 것은 디자이너들이 오래전부터 고민해오던 주제다. 펼치면 침대, 접으면 소파가 되는 소파베드부터 책상이나 식탁을 숨겼다가 사용할 때만 꺼낼 수 있는 히든 퍼니처, 용도에 따라 책상이 되었다가 침대가 되었다가 장식장이 되었다가 그 형태를 바꿀 수 있는 변신(?) 가구까지. 하지만 이런 시도들은 기능적인 접근에 한정되어 있을 뿐 아니라 변경에 따른 높은 유지관리 이슈로 인해 개인 공간에는 적용될 수는 있어도 공용공간에 적용하기는 어려운 방식이다.
빛은 공간의 분위기뿐 아니라 공간의 용도까지 바꿀 수 있는 존재다. 낮시간 높은 색온도인 주광색 빛의 정돈된 공간은 사무실로 사용하기에 적합하다. 공간의 빛을 이보다 낮은 색온도인 주백색으로 바꾼다면 음식을 먹는 식당이나 카페의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이보다 낮은 색온도인 전구색 조명에 낮은 조도, 나아가 컬러 조명까지 적절하게 적용된다면 라운지나 바와 같은 느낌을 만들 수도 있다. 각 색온도와 용도에 맞는 빛의 높이, 방향, 조도, 연출 방식까지 미리 계획해 놓는다면 한 공간이 조명을 바꾸는 것 만으로 전혀 다른 공간들로의 변신이 가능하다. 그리고 최근 이러한 생각을 그대로 실현에 옮긴 한 공간을 방문하게 되었다.
계기는 갑자기 받게 된 초대장이었다. 출처는 집 근처 사무실이라는 의미의 '집무실'이라는 이름으로 서비스를 하고 있는 곳으로, 최근 론칭한 '나이트 시프트'라는 행사에 초대한다는 내용이었다. 평소 공유 오피스를 사용하고 있던 터라 집무실은 예전부터 눈여겨보고 있는 서비스였다. 새로운 운영방식도 그러하지만 무엇보다 공간의 분위기가 이전 공유 오피스와는 결을 달리하는 매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 근처에는 아직 지점이 생기지 않아 멀리서 바라만 보고 있었는데 초대장이라니.
나이트 시프트는 집무실의 밤을 새롭게 바꾸는 프로젝트다. 일몰시간에 맞춰 공간이 조명과 음악이 변화함으로써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집무실의 석촌점에 시간을 맞춰 방문했고, 집무실의 새로운 프로젝트에 대해 김성민 대표님의 설명을 들었다. 주신 위스키의 향을 맡으며(차를 가져가 마시지는 못했다) 재즈가 흘러나오는, 사무실 같지 않은 사무실의 이곳의 분위기를 마음껏 즐기고 왔다. 그렇게 빛으로 만드는 한 공간, 두 얼굴의 힘을 느낄 수 있었던 즐거운 저녁을 보냈다.
그렇게 빛으로 만드는 한 공간, 두 얼굴의 힘을 느낄 수 있었던 즐거운 저녁을 보냈다.
프로젝트가 탄생하게 된 시작점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공간을 보다 오랫동안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었다. 집무실은 공간의 출입내역을 데이터화할 수 있는 덕분에 어느 시간에 어느 만큼 의 사용률을 보이는지를 분석할 수 있었다. 해 질 무렵부터 해 뜰 때까지의 이용률이 낮았고 (물론 일반적인 업무시간에 의한 영향이 가장 컸겠지만) 이 시간대의 활용률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던 중 빛의 변화를 이용한 나이트 시프트가 탄생했다.
반 고흐와 올라퍼 엘리아슨 등 여러 아티스트들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지금의 변화를 계획하게 되었고 그 덕분에 쾌적하고 세련된 낮의 사무실과 흥미롭고 새로운 밤의 환경 모두를 갖춘 공간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음악에도 변화를 주어 화려하지 않아도 밀도를 채울 수 있는 빌 에반스, 챗 베이커 등의 재즈가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늘 그리고 외치던 '빛을 활용한 공간 변화'를 실제로 이룬 사례를 보게 되어 (내가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매우 기쁜 마음이었다 그리고 이날 나에게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정보는 앞서 언급했던 데이터로 볼 수 있는 개선된 수치였다.
바뀐 공간의 분위기는 사람들의 이용시간, 방문자수 증가로 이어졌다. 빛을 통한 '분위기 변화'라는 정성적인 변화가 사용량 증가라는 구체화된 수치의 변화로, 결과적으로는 매출의 변화로 이어진 것이다. 마치 조명설계의 결과가 조도 계산이라는 데이터로 수치화되어 나오듯, 경험의 질 향상은 사용량이라는 데이터로 수치화되어 나오는 일련의 과정들을 보며 마음속으로 박수를 쳤다. 만약 내가 사용자라면 자료 분석, 협의와 생산성을 높여야 하는 업무는 낮시간에 보고, 글을 쓰는 것과 같이 영감과 창조성이 필요한 작업은 위스키 한 잔을 두고 꼭 나이트 시프트의 시간을 활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빛을 통한 '분위기 변화'라는 정성적인 변화가 사용량 증가라는 구체화된 수치의 변화로, 결과적으로는 매출의 변화로 이어진 것이다.
빛은 우리가 눈으로 보는 모든 것이다. 빛은 우리의 근본적인 시각정보를 바꾸어 공간과 분위기를 좌우하며 그로 인해 공간의 용도까지 바꾸어 놓는다. 같은 의자도 업무용 의자에서 와인을 마실 수 있는 의자로 바뀌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두 개의 의자를 구매하는 비용과 보관하고 시간마다 교체하는 비용을 가정한다면 어떤 것이 효율적이며 멋진 변화를 만들어 내는가에 대한 답은 어렵지 않게 내릴 수 있다. 빛의 변화를 고려한 멋진 공간 기획, 그에 맞는 공간의 설계와 가구의 설계, 나아가 사용자 경험의 설계가 이루어진다면 그보다 효율적이며 강력한 다양한 공간 활용 경험의 제공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