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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수민 라이트랩 Aug 13. 2021

우리 집 창문이 도시의 등불이 되다

모여서 도시를 비추는 우리의 작은 불빛들



나와 아내에겐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은,
꿈같이 아름다운 장면을 마주한 기억이 있다.




 신혼여행을 마치고 귀국하던 중 항공사의 오버부킹으로 인해 암스테르담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지 못한 적이 있었다. 다양한 이유로 수차례 비행기를 탄 적이 있었지만, 탑승 불가는 처음 겪어보는 일이었다. 버젓이 돈을 내고 항공권을 구입했고, 한국에 돌아가 해야 할 일들이 많았기에 이건 말이 안 된다고 항의했다. 하지만 그런 우리에게 항공사의 담당자는 자리가 없다며, 내일 비행기를 타고 돌아가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나는 너무 화가 났고 아내는 속상함에 울먹였다. 귀국을 위한 당일의 다른 비행기도 없었으며, 이미 늦은 시간이라 공항에는 사람도 얼마 남아있지 않았다. 그렇게 짐까지 공항에 묶인 채 우린 택시를 타고 항공사에서 제공해주는 암스테르담 외곽의 호텔로 이동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린 평생 잊지 못할 아름답고 환상적인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택시가 달리는 곳은 시내와 공항 사이 인적이 드문 동네의 한적한 밤길이었다. 우울한 마음에 창밖을 무심히 보던 차에 갑자기 창 밖에 아름다운 장면이 펼쳐졌다. 길 옆으로 지나가는 암스테르담 외곽의 자그마한 집에서 새어 나오는 빛이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달리는 택시 위에서 우리는 순간순간 지나가는 창문 속 집 안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따사로운 불빛 아래 소파와 카펫, 테이블과 아름다운 꽃이 꽂힌 화병, 피아노 옆의 화분들 그리고 그 안에서 아늑한 저녁의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마치 필름처럼 지나갔다. 그리고 그 따스한 빛은 집과 도로 사이 놓인 작은 네덜란드의 수로에 담긴 물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며 빛나고 있었다.


 

건물에서 새어 나오는 빛은 마을과 도시의 등불이 된다.  (Photo by Martin Woortman on Unsplash)



우리 부부는 조금 전까지 억울하고 황당하고 화나고 어이없는 상황은 잊은 채 그 아름답고 따뜻한 장면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아쉬운 마음에 뒤를 돌아 저 멀리 지나간 집들을 바라보니 창문에서 흘러나온 불빛들과 수로의 물빛과 작은 가로등 불빛이 모여 마을 전체가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이후로 이 광경은 태어나 가장 인상적인 순간으로 손에 꼽는 기억이 되었다.




건물에서 새어 나오는 빛은 마을과 도시의 등불이 된다.



우리가 사는 공간의 빛은 우리 공간을 비추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조명이 공간의 빛이 되어준다면, 각자의 집에서 새어 나오는 빛은 우리가 사는 마을과 도시의 등불이 된다. 저마다 사는 모습대로 불이 켜져 있기도, 꺼져있기도 하다. 각기 다른 색의 빛이 각기 다른 밝기로 자유롭게 빛나는 창은 주거를 목적으로 한 건물의 특징이다. 또한 이러한 건물의 빛은 높이에 따라, 도로의 넓이에 따라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다양한 빛을 품은 건물이 모여있는 언덕은 동네를 밝히는 하나의 등불처럼 보이곤 한다. 늦은 시간까지 밝게 빛나는 상업시설의 밝은 빛은 밤의 활력을 보여주며, 저마다 봐주길 바라며 빛나는 간판들은 건물 속 공간의 용도를 짐작하는 것을 넘어 때로는 그 자체로 거리를 밝히는 조명이 된다. 






얼마 전 산책을 하다 동네에 새로 지은 아파트의 점등식을 보게 되었다. 한 집도 빠짐없이 아파트의 모든 불이 켜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신선한 경험이었다. 탈휴먼스케일과 기계적 반복이 주는 압박감 역시 대단했지만, 밤에도 낮을 사는 것 같은 밝고 하얀 실내조명은 마치 이 시대 우리의 삶을 보여주는 초대형 현대미술작품 같아 보이기까지 했다. 해가 지고 이 땅의 자유로운 생명 모두가 휴식에 들어갔을 시기, 밝은 조명 아래서  끝없이 생육을 강요당하는 LED 농장 속 식물들이 생각나는 것은 과도한 확장일까. 



직선으로 만들어놓은 강이 구불구불한 제 모습을 되찾고, 파내어버린 섬에 다시 흙이 쌓이고 초록빛 나무가 자라는 것처럼, 차갑고 딱딱하게만 보이던 그곳 역시 입주가 시작되고 사람이 들어와 살면서 사람의 따뜻함이 베이기 시작했다. 기계적인 반복은 그 속에 각자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주기에 따라 각기 다른 시간 불이 들어오고 꺼졌으며, 저마다 다른 밝기와 색상의 빛으로 채워가며 사람 사는 곳의 온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연말에 이따금씩 창문 안쪽에서 반짝거리는 크리스마스트리의 불빛을 발견할 때면 그 모습을 보고 기뻐할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라 미소가 지어지곤 한다.



치열한 직종이 모여있는 업무 지대와 고시촌이 모여있는 골목에는 늦은 시간까지 쉬이 불이 꺼지지 않는다. 24시간 치열한 낮을 살아가는 병원 응급실의 하얀 불빛은 마치 올림픽의 성화처럼 도시 속 우리의 삶이 멈추지 않는 한 끊임없이 밝게 빛나고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휴식과 여유를 상징하는 호텔은 늦게까지 짙은 오렌지색 불빛을 은은하게 퍼트린다. 높은 빌딩 꼭대기 깜빡거리는 빨간색 항공등과, 건물 외벽을 비추는 각종 조명은 도시의 높이를 가늠케 한다. 



(Photo by GWAN-WOO PARK on Unsplash)



저 멀리 번쩍이는 오색 불빛은 술과 유흥의 공간들이 모여있음을 예상케 하며, 다가올 새벽일을 위해 일찌감치 어둠 속으로 스며드는 농어촌 지역의 불빛들도 있을 것이다. 또 그러한 도시와 마을 사이를 연결하는 도로와 교량들을 밝히는 불빛, 그 위로 오가는 자동차들의 불빛이 합쳐져 우리가 살아가는 밤의 모습을 만들어낸다. 이렇듯 우리가 머무는 공간의 빛은 단순히 그 공간에만 머물지 않는다. 창이 모여 건물이 되고, 건물이 모여 마을이 되어 밤의 모습을 만든다. 그렇게 각각의 창은 마을과 도시의 등불이 되어 그곳에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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