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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수민 라이트랩 Nov 21. 2021

퇴사, 브런치 그리고 책을 내기까지 (2)

출간을 앞두고 그동안을 돌아보며 쓰는 글


대학시절, '말과 글'이라는 교양수업에서 처음으로 글쓰기 과제가 주어졌다. 입시 때도 논술이 없었고, 일기는 초등학교 이후 써본 적이 없던 나에게 글쓰기는 새로운 미션이었다. 나는 전공 시간에 발표나 말하기를 곧잘 하는 타입이었다. 그래서 글쓰기도 크게 어렵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말로 하던 생각 전달의 행위를 글로만 하면 되는 것이니까.



그렇게 주어진 주제로 생애 첫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생각을 글로 쓴다는 일이 좀처럼 쉽지 않았다. 절반도 채우지 못한 채 여태 쓴 글을 읽어본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단어, 문장, 문체, 전달력 뭐 하나 빠지는 것 없이 어설프다 못해 엉망진창이었다. 태어나서 그 정도로 엉망인 글은 읽어본 적이 없었다. 
결국 난 서랍 속에서 오래된 녹음기를 꺼내어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 목소리를 녹음했다. 그리고 녹음한 파일을 글로 옮겨 적는 방식으로 겨우 과제를 마무리했다. 물론 겨우 마무리를 했을 뿐 나의 글은 여전히 형편없었다. 비참했던 내 인생 첫 번째 글쓰기 경험이었다.



비참했던 내 인생 첫 번째 글쓰기 경험이었다.



어렸을 적엔 책을 좋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중고등학교를 지나며 입시와 함께 멀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쓴다는 것은 늘 멋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책을 읽는 것과 상관없이 서점은 나에게 늘 영감을 주는 공간이었다. 
글과 책에 환상을 가지고 있었던 만큼, 나는 나의 글이 상상 이상으로 엉망이라는 사실에 충격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이가 없는데) 써보지도 않았으면서 당시의 나는 자신이 글을 잘 쓸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감사한 것은 글을 잘 쓸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한 당시의 나 자신이었다.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이 중요했던 디자인과의 학생이었지만, 왠지 글쓰기는 평생 따라다닐 중요한 능력이라 생각했다. 결국 발표도, 보고서도, 업무를 위한 이메일도, 계약서도 모두 최종적으로는 글로 정리되니까. 그렇게 기회가 되면 글 쓰는 연습을 해야겠다 마음먹었다.



대단한 연습은 아니었다. 노트에, SNS에 쓰는 짧은 글부터 좀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나눴던 대화중 인상적인 부분을 글로 정리하거나, 내 생각을 교회 주보에 조그맣게 싣기도 했다. 글을 잘 쓰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글쓰기의 놀라운 비밀을 알아냈다. 
야마구치 다쿠로의 책 제목인 <결국 글은 쓰는 것이 아니라 다듬는 것입니다>. 제목을 처음 보고 ‘그래 맞아’라며 깊은 공감에 미간을 찌푸렸던 생각이 난다. 글은 절대 한 번에 완성될 수 없다. 다듬는 시간이 글을 쓰는 시간보다 더 오래 걸리는 것이 대부분이다. 실시간 전달되는 말과 가장 다른 특징이기도 하다. 고치고 고치고 고쳐야 그나마 '글'이라 할 수 있는 결과물이 나온다.



나는 처음에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겪은 초기 글쓰기의 어려움은 한 번에 괜찮은 글을 써내갈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글은 쓰는 것이 아니라 다듬는 것이었다. 그 어떤 다이아몬드도 처음부터 보석 모양으로 캐지지 않는다. 수많은 연마 과정을 거쳐 보석이 되듯 글도 원석 상태의 생각의 나열을 수없이 다듬어 ‘글’로 만드는 과정이 필요했다. 이 단순한 사실 하나를 깨닫게 된 후 글쓰기의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글쓰기를 좋아했지만 아직 내 블로그 한 번 만들어 본 적이 없었다. 교회 주보에 실었던 칼럼을 제외하고는 긴 글을 제대로 써본 적도 없었다. 글쓰기는 많이 서툴렀지만 한 가지 자신감은 있었다. 바로 빛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 
업계(?)에서는 한 걸음 떨어져 있었지만, 조명은 언제나 나의 관심사였다. 늘 조명기구에 관심이 있었고, 새로운 책과 글들이 나오면 꼭 찾아보곤 했다. 분명 멋진 조명설계를 할 수 있는 디자이너는 있었지만 아쉽게도 대중이 읽고 빛에 대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글을 쓰는 사람은 없었다. 딱딱한 전공서나 어딘가 거리감이 있는 번역서에서 벗어난 빛에 대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드디어 내게 생긴 것이다.



그래서 글쓰기가 너무나 즐거웠다. 그렇게 한참을 빛을 이야기하는 글쓰기에 빠져있었다. 그동안 차곡차곡 담고 있었던 내 머릿속 빛에 대한 이야기들을 글이라는 도구로 풀어내기 시작했다. 
그동안 하고 싶은 이야기를 꾹꾹 눌러쓴, 발행 버튼을 누르기 전 수십 번을 읽고 고쳐 쓴 글을 올렸다. 사진도, 제목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 브런치의 ‘작가’라는 타이틀이 올리는 글 하나하나에 진심을 담게 만들었다.



그런 나의 글이 이따금씩 브런치의 메인에 올라오곤 했다. 사람들이 읽고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달았다. 이런 관점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고, 새롭다는 반응들과 함께 조금씩 구독자 수도 늘어갔다. 
그러다 다음과 카카오 메인에 글이 실리기 시작했다. 그중에 “동쪽 창 앞에는 무엇을 두는 것이 좋을까”라는 글이 오랜 시간 동안 포털에 걸리며 수많은 사람들이 읽기 시작했다. 1000, 2000, 5000, 10000… 올라가는 조회수와 반응에 그날 나의 스마트폰과 가슴은 하루 종일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아무것도 나를 표현할 수 없던 시기, 글은 나를 세상에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글을 쓰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올라온 브런치의 공지 하나가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매해 열리는 브런치 공모전 소식이었다. 일정 양식을 갖춰 응모하고, 그중 10명 안에 들면 상금도 주고 국내 유명 출판사에서 책을 내주는 공모전이었다. 공모전을 보며 처음으로 생각해보았다.



나도 책을 낼 수 있지 않을까?



공모전까지 남은 기간은 3주. 여기에 내 힘을 다해 보기로 했다. 매일 스터디 카페에 자리를 잡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전에 무엇보다 중요한 일을 해야만 했다. 바로 목차를 짜는 일이었다. 
생각의 파편들이 하나의 책이 되려면 무엇보다도 목차가 필요했다. 블로그와 책의 가장 큰 차이점이기도 하다. 나의 이야기들을 몇 가지의 축으로, 하나의 흐름으로 묶는 일. 쉬운 듯 하지만 생각보다 어려웠던 이 작업은 돌이켜보면 실제 글을 써 내려가는 것보다 중요한 과정이었다. 목차 세우기는 그래서 결국 내 글이 향해 가는 곳이 어디인지, 이 글과 책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를 알려주는 과정과 같았다.



긴 고민과 수정 끝에 빛을 바라보는 네 가지 줄기가 세워졌다. 빛의 특성, 빛과 사람, 빛과 공간, 빛과 사회. 네 가지 관점에서 빛은 어떤 존재이며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담는가를 고민하게 되었고 그에 해당하는 소제목들을 꾸려 나갔다. 글은 아직 비어있지만 완성된 목차를 보니 제법 ‘책’ 같아 보였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내가 보기에도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이러다 나 정말 공모전에 당선되는 거 아니야? 책 대박 나는 거 아니야? 하는 기대감에 부풀었고 열심히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공모전에 원고를 제출하고 발표를 기다리는 한 달여의 시간은 나에겐 너무나 길고 길었다. 당장 나를 표현할 유일한 수단이 글이었기 때문에 사실 모든 것을 이 공모전에 걸고 있었다. 발표일은 한참 남았지만 수시로 홈페이지에 들어가 공지 이곳저곳을 들쑤쎠보곤 했다. 드디어 발표가 이루어진 12월 연말의 어느 자락. 드륵드륵 마우스 휠 소리가 방 안을 채웠지만 더 이상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드르륵드르륵. 몇 번을 확인해봤지만 내 이름과 작품은 수상 명단에 없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전까지 책이 될 만한 글 한 번 써본 적 없고 블로그 하나 만들어본 적이 없었으면서 한 번에 큰 공모전에 당선되어 책을 낼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 것이 문제였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브런치 글은 내 모든 것이었기에, 내 역량을 올인했기에 실망과 아쉬움은 생각보다 크게 다가왔다. 처음 계획한 휴식의 기간도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그런 와중 내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고 생각한 큰 도전에 실패했다.



공모전은 아쉽게 끝났지만 돌이켜보니 나에겐 소중한 십여 개의 글과, 내가 봐도 매력적인 목차가 남게 되었다. 공모전이 아니었다면 어영부영 몇 달이 걸려도 하기 어려웠을 일을 단 3주 만에 하게 된 것이다. 이 이야기는 마무리 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도전을 여기서 끝내지 않겠다고도 생각했다. 더 잘 써서 출판사에 투고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제는 정말 나 스스로 글을 써야 할 시기가 되었다. 처음에는 메모장에 적힌 과거의 생각들을 써 왔지만 그것이 바닥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이제부터는 자료를 찾아보고 공부를 해서 글을 써야 했다. 많은 자료들을 접하니 글도 다채로워지고, 이전의 글들도 더욱 탄탄하게 정비되기 시작했다.



이런 과정이 지속되다 보니 어느덧 앎의 즐거움, 생각하기의 즐거움, 글쓰기의 즐거움의 단계에 접어들었다. 전혀 관련 없을 것 같던 내용들이 빛이라는 주제로 관통하여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 경험은 그 어떤 게임이나 활동보다 내게 짜릿함을 안겨주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쌓아가며 출판사에 투고를 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이렇게 다양한 출판사가 있는지 미처 몰랐다. 수많은 출판사 중 내가 희망하는 십여 곳에 투고 메일을 보내봤지만, 별다른 답이 오지 않았다. 시간은 흘러가고 나는 조금씩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내의 출장차 함께 내려갔던 부산에서 차를 타고 올라오는 길, 보고 있던 스마트폰 내비게이션 화면 구석에 메일 알람과 ‘제안’이라는 글자가 슬쩍 지나가는 것을 발견했다. 아내에게 메일을 읽어달라고 부탁했고 이내 그것이 어느 출판사의 출간 제의 메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운전대를 잡고 있어 몸은 가만히 있었지만 맘 속에선 폭죽을 터트리고 공중제비를 뛰며 소리를 질렀다. 이름 모를 작은 출판사에서 온 출간제의. 비록 내가 원했던 출판사는 아니었지만 내 글을 먼저 알아봐 주고 연락을 해준 것에 감사했다. 합정의 어느 카페에서 만난 편집장님은 내 빛 이야기를 잘 이해하고 계셨다.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큰 수정 없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책을 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2020년 2월의 어느 날, 난 그렇게 내 평생 최초로 ‘출간 계약’을 하게 되었다.



출간 계약을 마쳤지만 아직 원고를 다 쓰려면 시간이 꽤 필요했다. 빠르지는 않아도 꾸준히 원고를 채워나갔다. 진짜 책을 내는 작가가 된다는 생각에 설렘으로 가득했다. 앞으로는 모든 것이 행복하기만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편집장님과 연락이 잘 되지 않기 시작했다. 무언가 불안했지만 연락을 기다리는 것 말고는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랜만에 편집장님께 온 연락은 날 또 한 번 깊은 실망과 고민에 빠지게 만들었다.



코로나로 인해 출판사에 어려움이 생겼고, (내막은 자세히 알 수 없지만) 결국 편집장님이 해고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내 글을 알아봐 주고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책을 이끌어주시기로 했던 편집장님이었다. 출판사는 미안함을 전하며 프리랜서의 관계로라도 기존의 편집장님과 책을 내길 원했다. 하지만 해고한 편집장님과 출판사 사이에서 책이 제대로 나올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럼에도 나에게 온 이 쉽지 않은 기회를 잡아 우선 책을 낼 것인가, 아니면 원고를 들고 맨바닥부터 다시 시작할 것인가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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