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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수민 라이트랩 Nov 21. 2021

퇴사, 브런치 그리고 책을 내기까지 (3)

출간을 앞두고 그동안을 돌아보며 쓰는 글


작가가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는 ‘투고’를 통해 책이 나오는 경우는 생각보다 매우 드물다. 출판사 대부분의 책은 기획서로 출간 일정이 짜여있다. 아주 간혹 투고를 통한 원고가 나올 뿐이다. 그나마 작가가 인플루언서 거나, 분야가 트렌트를 타고 있어 판매 루트가 확실한 경우에는 투고의 가능성이 있지만 유명하지 않은 사람의, 그것도 첫 책이 투고를 통해 만들어지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이야기는 예전부터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겨우 맞이한 출간 계약을 놓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 이 기회로 더 크고 좋은 출판사와 책을 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으려니와 다시 시작한다면 6개월이 될지 1년이 될지 5년이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주변의 의견도 많이 갈렸다. 취업을 하지 않은지 이미 꽤 되었기 때문에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다.



퇴사 시점 이후 가장 깊고 많은 고민을 한 시간이었다. 지인 중 책 또는 출판사와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결론은 그것이 작던 크던 출판사에 의지하려는 마음을 최소화하고, 결국 내 글과 내 힘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글’이고, 그 글을 쓰는 사람은 ‘나’니까. 글이 좋다면, 내가 더 힘을 키운다면 내 책을 낼 출판사는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기존 출판사와는 계약해지를 결정했다. 그리고 다시 망망대해로 배를 띄웠다.



나는 기존 출판사와는 계약해지를 결정했다.
그리고 다시 망망대해로 배를 띄웠다.







이번엔 제대로 투고를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면서 100개의 출판사 리스트를 만들었다. 그리고 희망하는 순서대로 마음속 등급과 순위를 매겨 1-100번 까지 번호를 부여했다. 1주 간격으로 10군데씩, 10주 동안 투고를 할 예정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가장 하고 싶은 출판사 순서대로 투고를 해야 했다. 100개의 출판사 중 1번은 을유문화사였다. 첫 번째 투고 때부터도 늘 꿈꾸던 곳이었다. 1945년 을유년에 설립된 출판사로, 이곳에서 나온 유현준 건축가의 책들을 보며, 아 나도 조명이라는 분야에서 이런 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전 출판사와 협의 때도 참고서적은 유현준 건축가의 <공간이 만든 공간>이었다. 을유문화사의 색깔, 방향, 디자인 모두 너무 좋았다. 이곳에서 책을 낸다면 더 바랄 게 없다고 생각했다. 20번대 출판사 투고를 채 마치기도 전이었던 어느 날, 전화가 왔다. 바로 을유문화사였다. 2주 정도 원고 검토를 해보고 싶다고 하였다. 세상에. 입이 바싹바싹 말라가는 참으로 긴 2주였다. 햇살이 거실 가득히 들어온 2020년 가을 어느 날, 드디어 을유문화사로부터 전화를 받았고, 나는 밝은 거실에서 혼자 소리 없이 춤을 추었다.






빛 이야기가 쌓여가면서 한편으로는 새로운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처음은 필립스 라이팅이었다. 조명기구의 외형이 아닌, 좋은 빛에 대한 인식이 늘어나는 것을 바랄 기업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조명설계사무소에서 근무할 시절부터 손에 꼽을 정도로 좋아했던 브랜드이기도 했다. 인맥도, 알고 있는 이메일 하나 없는지라 소비자 게시판부터 링크드인을 통해 여러 담당자에게 메일을 보내고, 심지어 네덜란드 본사까지 메일을 보내 결국 연락이 닿았고 그때부터 꾸준히 글과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다.



한국 조명 ICT연구원의 강의도, 대우건설의 푸르지오 프로젝트도 모두 시작은 ‘글’이었다. 오래된 회사의 업력도, 화려한 최근 포트폴리오도 없는 나였지만 ‘글’은 그 모든 것을 뛰어넘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여러 사람에게 직접 전달해 주었고, 인맥도 회사도 없는 내게 ‘일’을 만들어 주기 시작했다. 
오히려 글로부터 시작한 메시지이기에 새로울 수 있었고 기존의 교육이나 회사들이 할 수 없는, 혹은 하지 않았던 포지션으로 날 이끌고 갔다. 형태가 아닌, 글을 기반으로 디자인에 접근하는 사람이었기에, 디자이너보다 작가로 불렸고 형태보다 스토리에 프로젝트의 종심이 맞춰졌다. 그렇게 ‘글’은 내가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나에게 멋진 ‘일’들을 만들어주었다.






사진은 셔터가 눌린 순간의 빛을 기록한 흔적이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사진들을 사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눈으로 보는 ‘빛’에 대한 글이었기에, 사진은 이야기 속 빛에 대한 공감을 일으키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렇다고 아무 사진이나 쓸 수는 없었다. 우선 인터넷의 사진들은 저작권을 해결하는 문제가 쉽지 않았고, 내가 의도하는 방식으로 빛을 제대로 담은 사진을 찾는 더욱 쉽지 않았다. 그렇기에 내가 직접 보고 느끼고 남긴 사진들을 최대한 사용하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보고 느낀 아름답고 매력적인 수많은 빛들을 글을 읽는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런 상황에 아내는 나에게 큰 도움을 준 존재다. 신혼여행부터 함께한 여행마다 아내는 멋진 사진들을 남기곤 했다. 같은 공간과 시간에 사진을 담아도 아내의 사진은 늘 한 끗씩 달랐다. 수년 전부터 찍은 사진들을 다시 하나하나 넘기며 나의 빛 이야기에 하나씩 빛을 기록한 흔적들이 담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야기와 사진들은 원고 속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2020년 겨울, 출간 계약을 하면서 들었던 아쉬운 소식이 있었다. 이미 2021년의 출간 계획이 모두 짜여 내 책은 햇수로 2년이 지나 2022년 봄에나 나올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내가 그때까지 프리랜서 작가와 디자이너만으로 버틸 수 있을까도 고민이었다. 하지만 이미 짜여 있는 계획, 을유문화사라는 나에게 너무 소중한 기회를 바꿀 수는 없었다. 아주 적은 확률의 한 가지 희망이 있다면, 2021년 계획된 책 중 일정이 연기되는 경우였다. 그렇다면 먼저 2022년 책 일정과 조절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내 계획은 가능한 빠르게 원고를 마무리하는 것이었다. 잘 일어나지 않는다는 그 작은 경우의 수에 희망을 걸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힘찬 다짐과는 다르게 원고를 완성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선 원고에 ‘완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는가가 의문이었다. 어디까지 써야 하고 어디까지 고쳐야 하는지 도무지 감이 서질 않았다. ‘책’이라는 완성형의 기준으로 내 원고는 부족해 보이는 것, 고치고 싶은 것 천지였다. 아무 제한 없이 쓰고 고치다 보면 5년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원고는 완성하는 게 아니라 포기하는 거라고 했던가. 공유 오피스를 잡고 내가 할 후 있는 최선을 다해 보기로 했다. 계약 후 3개월 안에 끝내기로 마음먹었던 내 목표는 4개월이 되고 6개월이 되다 결국 여름의 입구에서 겨우 마무리되었다. 원고를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편집장님께 전화를 받았다. 출간이 올해로 당겨질 것이라는 연락이었다. 내 원고가 일정에 비해 빨리 도착했고, 올해 말 출간 예정이었던 다른 작가분과 일정 조율이 있었다고 했다. 나에겐 너무나도 반가운 소식이었다. 편집장님과의 연락이 점차 잦아지니 이제야 조금씩 책을 낸다는 게 실감이 났다.






나의 담당 편집자는 다름 아닌 을유문화사의 편집장님이었다. 편집자분들이 계시지만, 편집장님도 직접 일 년의 몇 권의 책을 직접 담당하신다고 하셨다. 그리고 편집장님은 다름 아닌 유현준 건축가의 책을 담당하신 분이기도 했다. 편집 디자인도 유현준 건축가의 책을 맡으셨던 실장님이 담당하실 예정이라고 했다. 유현준 건축가의 책을 보며 책을 쓰고 싶다는 꿈을 꾸었던 나로선 모든 것이 꿈만 같은 일이었다. 
히말라야를 오르는 건 산악인이지만, 셰르파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사실상 셰르파는 도움을 주는 존재라기보다 함께 산을 오르는 동반자다. 처음 오르는 높은 산 앞에서 긴장하고 있는 나에게, 오랜 기간 수많은 책을 만들어온 멋진 분들이 함께한다는 사실은 나에겐 더없는 감사기도 제목이었다. '나만 잘하면 된다.'라는 말을 수없이 되뇌며 책을 만드는 작업에 들어갔다.



원고는 교정 차수에 따라 1교, 2교, 3교... 순으로 나뉜다. 1교는 문서 파일 그대로를 가지고 진행하며, 2 교부터는 조판(원고를 디자인된 책의 형태로 옮김)된 상태로 출력하여 진행한다. 물론 나는 이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처음 1교를 진행할 때, 나는 전문가가 내 글을 꼼꼼히 검토하고 교정한다는 생각에 벌거벗은 것 마냥 너무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내 원고에 대한 자신감이 넘쳤을 때와는 전혀 다른 마음 상태였다. 다시 검토해보니 원고가 별로라며 계약을 철회하면 어떡하지나, 완전 싹 뜯어고쳐야겠다는 대답이 오면 어쩌나, 글이 엉망이라 다 고쳐야 한다고 결국 내년으로 미뤄지면 어떡하지 하는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빛 이야기에는 자신감이 있었지만 '글쓰기'는 여전히 초보와 다름없었던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다행히 걱정했던 것만큼의 큰 수술(?)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짠 목차도 전체적인 글의 흐름도 쭉 가지고 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교정은 거기서부터 시작이었다. 들어갈 이미지의 저작권을 확인하고 요청하고 교체하고 구입하는 것부터 시작해 모든 글의 순서, 문장, 표현, 단어 하나까지 세심하게 다듬어지고 만져졌다. 어느덧 신선하지만 거칠었던 빛 이야기라는 원고는 부드럽고 세심하게 다듬어진 하나의 책으로 완성되어갔다. 






만약 평생 얼굴을 보고 동행할 사람의 이름과 얼굴을 결혼식 직전에 알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책을 만나는 기분이 딱 그러했다. 평생 나와 함께하게 될 책의 이름과 표지는 가장 늦게 정해진다. 2년간 펜팔만 해오던 상대의 이름과 얼굴을 드디어 알게 된 것이다. 1차 투고 때 원고 제목은 ‘더 나은 삶을 위한 빛 이야기’였다. 2차 투고 때의 이름은 ‘결국, 눈으로 보는 모든 것은 빛이다’였다. 하지만 두 가지 모두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담겨 있을지 몰라도, 간결하고 함축적인 제목이 되진 못했다. 그래서 계약을 하면서 편집장님이 제안해주신 가제가 있었다. 스쳐갈 제목이라 생각했지만, 책 작업을 하면서 보면 볼수록 그 이상의 제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정에서 수많은 후보가 나왔지만, 결국 처음의 가제가 책의 이름이 되었다. 제목은 <빛의 얼굴들>, 부제로 ‘빛을 조명하는 네 가지 인문적 시선’이라는 멋진 문구가 추가되었다.



표지를 정하는 것도 역시 제목만큼이나 설레고도 어려운 과정이었다. 을유문화사다운 무게감 있고 차분한 시안이 여럿 오갔지만 의외로 최종적으로 정해진 안은 책에 들어간 사진 중 손에 꼽을 만큼 좋아하는 사진이 들어가게 되었다. (물론 이 역시 아내의 작품이다) 인문, 과학, 디자인을 넘나듦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접할 수 있는 책의 방향에 어울리는 표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출간을 불과 2주 정도 앞두고서, 마지막으로 제목과 표지가 결정되었다. 평생 함께할 내 책의 모습을 드디어 만나게 된 것이다.






주요 교정 일정이 아니더라도 편집장님께는 수시로 카톡이 왔다. 계속 검토하고 확인하고 수정하고를 반복했지만, 새로운 교정 거리는 끝도 없이 나왔다. 나 역시 원고를 보다 편집장님께 고치고 싶은 부분, 보완하고 싶은 부분을 말씀드렸다. 일부는 편집장님의 의견이, 일부는 내 의견이 반영되며 마치 핑퐁과 같은 과정을 통해 원고는 점차 완성되어 갔다.



“작가가 글을 쓰는데 책을 낼 때 왜 편집자가 필요해?”라고 누가 묻는다면 지금의 나는 3시간도 이야기할 수 있다. 글을 작가 혼자 쓸 수 있을지 몰라도 책은 그렇지 않다. 긴 호흡으로 엮인 한 권의 책이 최소 수천 권 이상의 ‘책’으로 종이에 인쇄되어 독자에게 읽히기 위해서는 수많은 과정이 필요하다. 그 과정 가운데 편집자는 탐험가가 되어 좋은 글과 작가를 찾아내기도 하고, 안내자가 되어 방향을 제시하기도 하며, 팀이 되어 작가와 함께 고민하고 동행하기도 한다. 또 
한편으로는 철저하게 독자와 대중의 입장에서 미처 작가가 보지 못한 부분을 찾아내고 풀어내기도 하며, 바른 표현과 문법, 좋은 단어와 문장을 끊임없이 연구하여 작가가 의도한 바가 독자에게 바르고 원활하게 전달되기에 힘쓴다. 그 외에도 책이 나오기 위해 작가가 미처 알지도 못하는 수많은 일들을 관리하고 진행하기에 작가는 자신의 글을 한 권의 책으로 받아 들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멋진 출판사와 편집자를 만나 다듬고 다듬어진 내 글과 사진은 드디어 책으로 만들어졌다. 마지막까지 손을 보고 마감을 하고 인쇄소로 모든 파일이 넘어가게 되었다. 내 책을 손으로 만져보게 될 날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2019년 가을, 브런치에 첫 글을 올렸다. 약 1년 후인 2020년 11월 을유문화사와 출간 계약을 맺었고, 그리고 그로부터 1년이 지난 2021년 11월 드디어 책이 나오게 되었다.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후 2년은 그렇게 나에게 큰 삶의 변화를 가져왔다. 그간의 생각과 시간이 응축된 책을 이제 곧 만난다. 교정작업 중 편집장님이 하신 말씀이 있다. "첫 책은 첫 아이 같죠." 맞다. 마치 아이가 태어나는 것처럼 책에 모든 정성을 쏟아 왔다. 하지만 정작 아이가 태어난다는 것이 무엇인지 감도 잡지 못했던 출산 전의 모습처럼 지금의 나도 그렇다. 엄청난 설렘 가운데 있지만 정작 책이 나온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아직 다 감을 잡지 못하고 있다.



이제 시작일 것이다. 생각이 글이 되고 글이 책이 됨으로 인해 일어나는 일들 말이다. 지금까지 책은 세상 혼자 내는 것처럼 31일간 떨었던 나의 유난을 받아주셨던 모든 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책이 나오기 전 나의 생각과 마음을 바쁘다는 이유로 기록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될 것 같았다. 긴 여정을 거쳐 세상에 나오는 책을 만날 내일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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