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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수민 라이트랩 Nov 11. 2021

퇴사, 브런치 그리고 책을 내기까지 (1)

출간을 앞두고 그동안을 돌아보며 쓰는 글


2019년 가을,


막상 퇴사를 하니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전 직장은 이전에 시장이 없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스타트업이었다. 때문에 내 경력을 오롯이 인정받으며 관련 분야로의 이직은 어렵다고 봐야 했다. 6개월 정도 쉬기로 마음먹었지만 무엇을 하며 쉴지, 쉬고 나서는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망망대해 위 배 한 척의 상황이었지만 바람을 이용할 돛대도, 저을 노도 없는 기분이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찾기 위해 흔히 말하는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부터 생각해 봤다. 하지만 딱히 생각나지 않았다.


당시 나는 이전 회사에 올인한 뒤 모든 것이 소진되어 나 자신이 누군지 돌아보기 어려운 상태였다. 그렇다고 나 자신이 어느 한 가지에 엄청 몰입해 내 영역을 만드는, 소위 덕질하는 타입이 아니기도 했다. 적당히 좋아하는 몇 가지 것들로는 나를 설명할 뾰족한 무언가가 되지 못했다. 모든 것을 올인했던 회사를 그만두고, 이렇다 할 취미를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30대가 끝나가고 있었지만, 딱히 ‘나’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무언가 해야 했다.



쉬는 동안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글을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정확히는 블로그라도 시작하자는 마음이었던 듯하다. 어떤 글을 올려야 하나 고민했다. 그러다 결혼식을 30일 남겨두고 매일 썼던 연애부터 결혼까지의 이야기가 그간 가장 재미있게 쓴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이 위주였던 콘텐츠였기에 카카오 브런치를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브런치는 사전심사에 통과해야만 글을 쓸 수 있는 시스템이다. 나는 D-30중 세 개의 글을 차곡차곡 다듬어 작가 신청을 했다. 하지만 똑 떨어졌다. 제목과 내용을 다듬어 다시 도전했다. 역시 실패. 글을 써야겠다는 의욕이 팍 꺾였다. 그렇기 내 브런치 도전기는 끝나는 듯했다.



하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당시에 그 글로 탈락을 했던 것이, 지금의 나에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트레바리 독서모임을 시작했다. 그전까지 문외한이었던 투자에 대한 시야를 넓히고 싶어 워런 버핏, 레이 달리오, 나심 탈레브, 존 템플턴 등 투자 구루들의 책을 읽는 모임을 골랐다. 그땐 이 모임이, 이때 만난 사람들이 나에게 그토록 많은 영향을 주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첫 모임에서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 난감했다. 직장도, 직업도 딱히 없으니 날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어느덧 내 소개 차례가 되었다. 나는 쓰읍 한번 숨을 고르고, 소개의 첫마디를 이렇게 떼었다.



저는 빛을 좋아하는 조수민이라고 합니다.



변화의 시기(라고 쓰고 방황의 시기라 읽는다) 오면 누구나 스스로에게 해보는 뻔하고도 중요한 질문이 있다. 바로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이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은 무엇일까? 하지만 이 질문에 대답하는 것을 쉽지 않다. 더군다나 앞서 말했듯 나는 모든 것에 뜨겁기보다는 미지근한 편에 가까웠다. 호불호가 명확한 편이 아니었기에 내 인생을 끌고 나갈 만큼의 에너지를 가진, 강력하게 좋아할 정도의 ‘무엇’을 떠올리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질문을 조금 바꾸니 힌트가 하나 보였다. “내가 견디지 못할 만큼 싫어하는 것은 무엇인가.” 명확하지 못한 호불호 중에 유난히도 삐죽 튀어나와 있는 불호. 나는 집에 푸른빛이 도는 주광색 조명을 사용하는 것을 지극히도 싫었다. 반대로 조명이 잘되어 있는 곳을 매우 선호하는 사람이었다.



맞다. 나는 늘 빛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 이유는 나의 첫 직장, 조명설계사무소에서 만난 ‘빛’이라는 존재 때문이었다. 집에 와 작고 오래된 몰스킨 노트를 꺼냈다. 벌써 10년도 더 된 노트였다. 조명설계회사를 다니던 시절 빛을 포함해 생각했던 것들을 여기에 적어놓곤 했었다. 우리나라에서 첫 번째 생긴 조명설계 전문회사. 첫 사회생활이라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빛이라는 존재의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공원, 교량, 지하철, 아파트 등 다양한 조명설계를 하며 실력을 쌓아나갔다.



빛을 계속 파다 보니 깨달아지는 한 가지 사실이 있었다. 결국 우리가 눈으로 보는 모든 것은 공간이나 사물 이전에 ‘빛’이라는 사실이었다. 당시 알게 된 사실들, 나의 생각들을 조그만 노트 한 권에 가득 채웠다. 그리고 12년이 지난 어느 날, 나는 드디어 이 노트를 사용할 때가 되었음을 서서히 느낄 수 있었다.






조명설계사무소를 다니며 깨달은 빛에 대한 나의 생각들을 듣고 대중이 재미있어할 것이라는 생각을 그전까지는 딱히 해본 적이 없었다. 나 혼자만 좋아하는 이야기라 생각했다. 또는 건축이나 공간 디자인 전공자나 이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어야 그나마 흥미를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독서모임에서 내가 나눈 빛 이야기에 잠시나마 반짝이던 사람들의 눈빛을 되새기며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혹시 이 이야기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 가질 만한 이야기인 것은 아닐까? 그날 밤, 나는 집에 와서 바로 컴퓨터를 켜고 10년도 더 된 오래 전의 노트를 펼쳤다. 이미 두 번이나 뺀 지(?)를 맞은 브런치에 빛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오래전부터 생각하고 메모했던 이야기들이었다.



열심히 정리해 글 두 편을 써서 작가 신청을 했다. 세 편을 꽉꽉 채워도 두 번이나 떨어졌던 심사를 단 두 편의 글로 한 번에 합격을 했다. 그렇게 내 삶을 바꾼 브런치 <조군의 빛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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