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푸르트 조명 박람회 리뷰 / 조명의 미래 (2)
이번 박람회에서 유심히 본 것 중 하나는 '광원 일체화'된 조명기구의 비중이었다. 디자인관에서 전시된 제품들 중 열의 아홉은 비규격 광원을 사용한 조명들이었다.
LED 사용은 조명 사용 전반의 많은 것들을 바꾸어 왔다. 조명 제품 디자인에 있어서 큰 변화는 맞춤형 광원 설계가 용이해졌다는 것이다. 이전의 조명기구는 규격 램프를 중심으로 설계되었다. 크기와 형태별로 다양한(하지만 제한된) 규격이 있고, 제품별로 적합한 규격의 램프를 사용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효율적인 크기와 형식의 새로운 규격들이 나왔지만 e27 에디슨 전구처럼 초기 규격을 오랫동안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LED가 가지고 온 큰 변화 중에 하나는 '램프의 탈규격화'이다. 반도체 기반의 광원은 이전 램프에 비해 상대적으로 누구나 만들 수 있고 또 원하는 대로 배치할 수 있다. 조명기구 제조사들은 램프의 규격이라는 제한을 벗어나 원하는 대로 램프를 설계해 맞춤형 램프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 인해 얻게 된 첫 번째 장점은 우선 조명기구의 형태와 크기가 다양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LED는 면발광에 유리한 이점을 가지고 있는데, 작은 램프에서 나오는 빛을 넓은 면에 고르게 퍼트리는 디퓨저의 기술에 애썼던 이전과 달리 LED는 작은 광원을 고르고 넓게 배치할 수 있기에 원하는 형태와 크기, 심지어 곡면에도 손쉽게 사용되었다. 각 조명에 맞는 최적화된 광원을 쓸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또한 크기 제한 없는 소형 조명, 길이 제한 없는 라인조명 등 규격에서 벗어나 할 수 있는 새로운 제조환경이 열렸다. 그렇게 시장엔 수많은 광원 일체형 제품이 나오게 되었다.
또 다른 장점은 어떤 것이 있을까? 조명기구 제조사의 입장을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면, 그들이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이점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광원을 함께 다루고 판매해 단가를 높일 수 있다. LED 이전의 조명 견적은 조명기구 견적+램프 견적이었다. 조명기구 제조사는 램프는 별도로 구매해 제공하거나, 아예 조명기구만 납품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램프를 일체화시킨 조명들은 램프까지 조명기구의 가격에 포함되어 판매할 수 있게 되니 제품 자체의 단가와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제조사 입장에서 중요한 점은 바로 '카피 제품'의 제조 허들을 높인다는 것이다. 조명은 불법 복제, 즉 카피 제품이 정말 많은 분야다. 2000년대 초반 조명 박람회 어떤 부스에서는 아시아계 관람객의 DSLR을 집어던진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이전까지 조명은 금속, 유리, 등 기본적인 제조기술만 갖추면 규격 램프를 사용해 카피 제품을 만들기가 쉬웠다. 물론 좋은 제품의 높은 제품 퀄리티를 따라가는 것은 어렵다 하더라도 턱없이 낮은 카피 제품의 가격을 무시할 수 있는 조명 제조사들을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램프 일체형 방식은 카피의 허들을 높였다. 같은 소켓과 램프를 사용하면 되었던 예전과는 다르게 광원과 기판, 광학렌즈로 무장된(?) 기술을 모두 구현하며 카피를 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카피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조명기구 제조사들은 맞춤형 LED 조명에 힘을 실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소위 잘 나가는 대형 제조사 위주로 훨씬 더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맞춤형 LED, 광원 일체화 조명을 지속가능성 측면에서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전의 조명기구는 램프를 교체하면 오랫동안 사용이 가능했다. 또한 램프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보다 나은 효율과 수명을 적용하거나 원하는 광량과 색온도를 조절하여 사용할 수 있는 방안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의 맞춤형 LED는 램프 교체가 어렵거나 불가능하다. 설령 교체한다 해도 사용자가 직접 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교체에 많은 비용과 시간이 걸린다. 결국 램프의 수명이 다하는 순간, 조명기구까지 폐기, 교체할 확률이 높다. 이는 에너지 사용과 지속가능성의 측면에서 매우 불리한 요소다. 단지 효율 높은 LED로 교체했다고 지속가능성을 논하기에는 오히려 낮아진 ‘지속가능성’의 요소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고 생각된다. 그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LED의 수명이 매우 길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LED 수명보다 더 짧은 SMPS(안정기)의 수명으로 인한 문제 고려한다면 '교체형 광원’은 분명 조명의 지속가능성에서 반드시 생각해 보아야 하는 문제다.
LED의 장점인 ‘맞춤형 광원’이라는 요소가 잘 쓰일 수 있는 분야는 분명히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제조사의 이익을 위해, 혹은 카피 제품을 막기 위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 모든 제품까지 맞춤형 광원으로 제작된다면 결국 LED가 가져다준 효율보다 더 큰 환경적인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 생각한다. 규격화된 램프의 사용으로 교체를 용이하도록 만들고 사용자마다 자신이 원하는 스펙의 램프를 사용할 수 있게 만든다면 우리가 조명기구를 만듦에 있어 사용되는 쓰레기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여기엔 LED라는 광원의 특징과 이 시대의 사용성에 맞는 새로운 규격의 개발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저마다의 이권이 달려 규격과 표준의 문제는 늘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럼에도 힘이 있는 누군가(그것이 국가든, 협회든, 기업이든)가 이를 이끌어 조명 사용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보다 깊고 진지하게 임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나의 잘 만들어진 좋은 규격이, 우리 환경을 지키는 중요한 요소가 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