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혼합하여 더욱 풍성해지는 우리의 세상
문제를 하나 풀어보자.
Q1. 왼쪽 두 개의 동그라미를 물감의 색이라 할 때,
두 색이 혼합된 결과의 색으로 맞는 것끼리 서로 이어 보세요.
미술학원을 다닐 당시, 처음 수채화를 배울 때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색을 섞는 일이었다. 어렸을 적 사용하던 크레파스는 주어진 색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12색보다는 24색, 36색의 크레파스가 보다 색이 풍성한 그림을 만든다는 것은 상식과 같았다. 하지만 수채화는 조금 달랐다. 주어진 물감 그대로의 색뿐만 아니라, 색을 섞어서 그림을 그리는 방식을 사용하기 때문에 색의 혼합에 따라 그림의 풍성함이 달라졌다.
처음에는 하얀 도화지와 팔레트 위에 펼쳐진 여러 가지 물감을 바라보며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우선 팔레트에 있는 물감들을 하나씩 도화지 위에 칠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이어 두세 가지 물감을 섞어가며 어떤 색이 나오는지 감을 잡았다. 어떤 조합은 예측이 어렵지 않았지만, 의외의 색이 만들어지는 조합도 존재했다. 네 가지가 넘어가니 이내 갈색 또는 검정에 가까운 탁한 색에 다다르는 것을 확인했다. 이는 섞을수록 검은색에 가까워지는 감산 혼합의 특징이다.
색을 혼합하는 방법을 익히고 나서, 이제는 어떤 색을 칠할 수 있는가는 이제 단순히 팔레트 위의 물감색에 한정되지 않게 되었다. 여러 물감 중 어떤 것끼리 섞을 것인지, 비율을 어떻게 할 것인지, 물의 양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따라 조그만 팔레트 위에서 무한대에 가까운 색이 탄생한다. 인류 역사 속 아름다운 색감을 뽐내는 그림을 그린 수많은 예술가들도 모두 처음에는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쳤으리라.
여러 물감 중 어떤 것끼리 섞을 것인지, 비율을 어떻게 할 것인지, 물의 양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따라 조그만 팔레트 위에서 무한대에 가까운 색이 탄생한다.
뉴턴이 창 틈으로 들어온 빛줄기를 프리즘으로 쪼개어 여러 가지 색의 빛으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 이후, 우리는 태양이 발산하는 하얀색의 빛이 사실은 수많은 색의 혼합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뒤로 수많은 기술의 발전을 통해 이제는 물감이 아니라 색이 있는 빛을 통해 세상의 모습과 색을 표현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럴 수 있는 이유의 중심에는 ‘빛의 색 혼합’이 있다. 그렇다면 이 빛의 색 혼합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Q2. 왼쪽 두 개의 동그라미를 빛의 색이라 할 때,
두 색이 혼합된 결과의 색으로 맞는 것끼리 서로 이어 보세요.
아마도 앞의 문제보다는 상대적으로 어려웠을 것이다. 빛의 색 혼합은 우리가 익숙하게 아는 물감의 혼합 규칙인 감산 혼합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섞을수록 밝아지는 가산 혼합은 아직 컬러 조명이 이제 막 우리 삶에 들어오기 시작한 단계임을 증명하듯 낯선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삶 속엔 이미 아주 많은 부분에서 이러한 색 조합을 사용한 기술들이 사용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이제는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다양한 디스플레이가 이러한 빛의 조합을 이용해 만들어진다. 물론 디스플레이가 개발되기 전에도 빛의 색을 만드는 방법은 존재했다. 형형색색의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백색의 빛이 아름다운 색상을 내는 것처럼, 무대조명은 필름을 활용하여 색을 냈다. 또한 발광체와 화면을 구성하는 부분이 분리된 LCD와 같은 기술이 디스플레이의 기술로 먼저 사용되었다. 이후 LED 기술의 개발로 이제는 발광체 자체가 다양한 빛을 만들어내는 진정한 컬러 디스플레이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물론 LED 기술에서 빛의 색 혼합도 나름의 단계를 거치며 발전했다. 크레파스 종류의 단색만을 사용하던 시절처럼, LED도 처음에는 광원이 내는 빛 그대로를 사용했다. 이는 색 조합 기술의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빛의 기본 색 RGB 중 하나인 파란색 광원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초기에는 먼저 개발된 초록색과 빨간색, 노란색 LED는 신호등과 같이 단색이 필요한 곳에서 사용되었다. 혹은 파란색을 제외한 나머지 LED로 전광판과 같은 초기 디스플레이 기기들이 만들어졌다.
이후 마지막으로 파란색 LED가 개발되었다. 이 LED는 우리 생활의 큰 변화를 바꿀 중요한 발명이었다. 이는 광원의 색 종류가 한 가지 늘어났다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빛의 3 원색이 완성되었다는 것은 색 조합을 통해 거의 모든 색이 표현 가능한 시대가 열렸음을 의미했다. 결국 이 파란색 LED를 개발한 세 명의 과학자는 2014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빛의 3 원색이 완성되었다는 것은 색 조합을 통해
거의 모든 색이 표현 가능한 시대가 열렸음을 의미한다.
색의 혼합을 이용한 컬러 조명은 이제 수많은 영역에서 사용되고 있다. 크고 작은 디스플레이는 물론이고, 건축물의 입면을 빛으로 수놓는 미디어 파사드, 밤의 도시와 건축물, 교량과 탑, 자연의 모습을 새롭게 보이도록 만드는 경관조명, 색으로 보다 명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사인 조명, 집안을 새로운 이벤트 공간으로 바꿔주는 가정용 컬러 조명에 이르기까지 ‘빛을 섞는다.’라는 개념은 인공조명의 역할과 범위를 큰 폭으로 확장시켰다.
어느덧 우리 삶에 다양한 색의 조명이 자연스러운 모습이 되어가고 있다. 물론 이제 막 시작된 기술이기에, 조화롭고 아름다운 모습을 만들기보다 색을 단순히 뽐내는데 급급한 사례들도 보이곤 한다. 하지만 처음에 단순히 여러 크레파스를 사용하는데 그쳤던 어린 시절을 지나야 조화와 아름다움을 위해 색을 사용하는 시기가 도래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마치 처음 물감을 이리저리 섞기 시작해 결국에는 멋진 작품을 만들어내는 화가처럼, 빛의 색을 혼합하는 것에 익숙하고 즐거워지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어떨까. 결국에는 우리들의 삶 곳곳에 빛으로 만든 새로운 시대의 멋진 작품들이 채워지지 않을까. 빛의 색이 가진 가능성은 이제 출발점에 서 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