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건축을 통해 자연과 단절되는 역설
커튼이 드리운 어두운 방 침대 위, 알람이 울린다. 스마트폰 디지털 시계를 확인하고서 침대에서 일어난다. 잠옷바람으로 방문을 열고 거실의 조명을 켠다. 냉장고를 열어 찬 물을 꺼내어 마신다. 바깥 기온과 날씨를 확인하기 위해 다시 스마트폰을 꺼내어 든다. 예상기온을 고려해 옷을 꺼내 입지만 현관문을 나서며 예상과는 다른 감촉의 날씨에 다른 옷을 입을걸 하며 오늘도 후회한다. 추운(혹은 더운) 바깥 활동도 잠시,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해 이내 냉난방이 되 건물에 도착한다.
대학원을 시작하고 들었던 첫 학기 수업 중 '건축에너지성능평가'라는 과목이 있었다. 말 그대로 건축물의 에너지 소비량을 측정하고 관리하는 방법에 대한 내용이었다. 열역학, 습공기학, 열전달부터 침기와 난방부하 등 어렵고 복잡한 주제들은 디자인 전공자인 나에게 어렵게 느껴졌지만, 첫 학기의 열정으로 이를 열심히 따라갔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성적은 A+를 받았다!)
그리고 강의의 후반부에는 가장 관심있던 태양과 건축물 에너지와의 관계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 이 역시 태양 상수, 방위각, 고도, 입사각, 차양 등 흥미롭지만 한 층 더 머리 아픈 개념들이 등장했다. 하지만 그 중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열전달 계수라 불리는 U-지수였다. 이는 쉽게 말하면 대상에서 열손실이 얼마나 일어나는지를 나타내며, 수치가 낮을수록 단열 성능이 좋음을 의미한다.
건축의 단열성능 발전은 눈에 띈다. 예를 들어, 30년 전 콘크리트 벽의 U지수가 1.5였던 것이 최근 0.2 정도로 대폭 낮아져 열손실이 크 줄었다. 더 드라마틱한 것은 창이다. '열도둑'이나 다름없던 U지수 5.0이 훌쩍 넘는 과거의 창호는 이중/삼중 유리창과 각종 기술로 현재는 최고 0.5까지 낮아졌다. 덕분에 지금의 창은 과거 왠만한 콘크리트벽보다 단열성능이 좋으며, 그런 덕분에 우리는 쾌적하게 큰 창을 내고도 열손실을 최소화 할 수 있다.(안타깝지만 사계절의 기온변화가 큰 우리나라의 창틀이 두껍고 못생긴 이유도 여기에 기인한다.)
덕분에 우리는 갈수록 좋은 단열의 집에서 살아간다. 냉방도 난방도 효율이 높아진다. 우리는 이렇게 에너지 효율이 높은 건축물을 '친환경 건축'이라고 부른다. 여기에 방수, 방음, 공조 등 다양한 설비의 기술들이 더해지며 현대의 안전하고 아늑한 건축물이 만들어진다. 눈, 비, 바람과 기온, 습도, 빛과 자외선을 잘 차단해 외부 환경을 잘 차단한 건물이 이 시대의 인정받는 현대화되고 좋은 건물이다. 그렇게 우리는 안정적이며 제어 가능하고 친환경적인 건물에 살아가면서 역설적으로 자연과 단절된다.
그렇게 우리는 안정적이며 제어 가능하고 친환경적인 건물에 살아가면서 역설적으로 자연과 단절된다.
우리가 연휴와 휴가 때 기어이 자연으로 떠나는 이유, 춥고 덥고 습하고 어둡고 밝고 불편하지만 멀리 캠핑을 떠나 온전히 자연에서 시간을 보내고자 하는 이유도, 아마 우리가 점점 더 철저히 자연과 차단되는 공간 경험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두꺼운 콘크리트와 단열재로 만들어진 자연과의 벽을 얇은 섬유 한 장으로 줄였을 때 느끼는 해방감은, 사람들로 하여금 수많은 불편함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기후위기의 시대, 앞으로도 건축은 더욱 변화하는 자연 환경과의 단절을 목표로 발전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얻는 안전만큼 우리가 잃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고, 이 시대에 부족한 경험을 채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대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러한 방향에서 앞으로의 '빛'은 어떤 방향을 가지게 될 것인가 역시 지금의 나에게 중요한 부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