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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수민 라이트랩 Jul 24. 2024

비 오는 날의 빛,
그 아름다움과 위로에 대하여

고요하고 차분한 빛 속에서 찾아보는 일상 속 빛의 아름다움과 위로



긴 장마가 시작되었다. 매일같이 이어지는 비는 우리의 마음을 축축하게 만들고, 때로는 어둡게 물들인다. 그러나 이 흐리고 비 오는 날씨 속에서도 우리는 특별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아니, 오히려 비 오는 날이어야만 느낄 수 있는 빛의 색과 아름다움이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비 오는 날이면 맑은 날의 밝고 따뜻한 빛을 그리워하곤 한다. 맑은날은 태양이 하늘에서 강하고 방향성을 가진 빛을 비추며, 이러한 직사광과 푸른 천공광이 조화를 이루어 세상 모든 색상이 더욱 생동감 있게 보인다. 직사광은 높은 강도로 붉은색과 노란색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고, 청공광은 하늘의 푸른빛을 강조하여 우리의 시야를 더욱 다채롭게 한다. 이와 같은 날씨는 우리의 기분을 밝고 활기차게 만들어 준다. 음악으로 비유하면 신나는 팝음악 같달까.



하지만 비 오는 날의 빛은 맑은 날의 빛과 여러 가지로 다르다. 흐리고 비 오는 날의 하늘은 구름과 수증기가 태양광을 산란시키면서, 부드럽고 은은한 빛을 만들어낸다. 이 빛은 낮은 색온도로 인해 차분하고 고요한 느낌을 줍니다. 파란색 필터 같이 태양빛의 푸른색을 일부 걸러 하늘에 수놓았던 맑은 날과 달리, 두터운 수증기 입자는 모든 빛을 산란한다. 그래서 흰색 혹은 회색 계열의 하늘로 보인다. 



그런 회색빛 하늘 아래에서 물체들은 은은한 톤을 띠며, 세상은 마치 그림 속의 한 장면처럼 부드럽고 고요하게 변한다. 대비는 낮아지고 색감도 차분해진다. 노란 직사광이 사라진 세상은 청색과 녹색의 새로운 빛깔을 느끼게끔 해준다. 그리고 공기 중 퍼진 수증기 입자는 온 세상을 필터를 씌운 것 같은 독특한 빛의 분위기를 만든다. 그 빛은 우리에게 차분함과 평온함을 선사하며 비 오는 날만 마주할 수 있는 세상을 새로운 빛의 모습을 만든다.



Saul Leiter



비가 내리는 동안, 우리는 공기 중 물방울이라는 필터가 만들어내는 미묘한 회색빛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이 필터는 자연과 사물의 독특한 색감을 더욱 부각하며, 비 오는 날만의 특별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비 오는 날은 많은 화가와 사진작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여러 명작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바닥에 반사된 빛도 비 오는 날의 장면을 만드는 또 하나의 요소다. 건조한 날에는 빛을 흡수하고 산란시키기만 했던 바닥이, 비를 만나 반사하면서 주변의 나무와 건물, 그리고 하늘까지 반사시키며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물에 젖은 바닥 위에서 마치 거울처럼 비치는 또 다른 세상을 마주하게 된다. 이러한 반사는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장면으로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선사한다. 



 비 오는 날에는 빛의 조도가 낮아지고, 명암의 대비가 줄어든다. 이는 우리의 눈이 더 부드럽고 확산된 빛을 경험하게 만들어 준다. 강한 대비와 선명한 대비 대신, 온화하게 빛나고, 서로가 어우러지고, 물방울의 움직임, 고임, 파동 등과 어우러져 미처 예상치 못한 다채로운 변화와 모습으로 우리에게 보여진다. 이는 마치 한곡의 재즈앨범 같다.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의 앨범 "Kind of Blue"을 듣다보면 그 변화와 아름다움(이름마저 Kind of Blue라니)이 비오는 날의 빛의 모습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Miles Davis의 앨범 < Kind of Blue >



또한 한 방향의 강한 빛이 아니라 온 하늘에서 고르게 비추는 빛이기 때문에 그림자가 사라진다. 때문에 비 오는 날의 빛은 강한 대비와 화사함이 없을지 몰라도, 태양의 직사광 속 그늘에 가려져 미처 보지 못했던 낮고 깊은 곳까지 볼 수 있게 해 준다. 세상이 보다 고르게 빛나는 날은 맑은 날이 아니라 비 오고 흐린 날이다.



세상이 보다 고르게 빛나는 날은 맑은 날이 아니라 비 오고 흐린 날이다.




이러한 빛 속에서 우리는 평소에는 지나치기 쉬운 작은 디테일들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빗방울이 나뭇잎에 떨어져 반짝이는 모습이나, 빗물이 고여 생긴 작은 웅덩이 속 반사된 풍경들은 비 오는 날에만 볼 수 있는 소중한 장면들 말이다. 비 오는 날은 우리에게 차분히 주변을 돌아보며, 세상을 새롭게 인식하는 기회를 선물한다.



한편으로는 기후변화와 함께 큰 비가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들도 잦아지고 있다. 아무리 비 오는 날의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빗줄기가 굵어지기 시작하면 빛을 감상하기보다 걱정부터 앞서는 이유다. 우리가 경험하지 긴 장마 기간 동안 비가 많이 내리, 큰 비가 짧은 시간에 내려 어려운 상황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 은은한 빛이 세상 모든 곳에 고르게 퍼지는 것처럼, 우리도 사회의 낮고 깊은 곳까지 관심을 기울이며, 주변의 소외된 이들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기쁨만이 우리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슬픔과 불안이라는 감정조차도 우리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소중한 것이라는 어떤 이야기처럼, 올해 장마 기간에도 모두가 안전하게 이 시기를 잘 보내기를, 일상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이 시간을 통해 일어나기를 바라본다. 



모두가 이 장마를 잘 이겨내고, 전보다 밝은 마음으로 다시 맑은 하늘을 맞이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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