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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 Apr 13. 2022

내가 없는 너는,  이제야 모든 게 다 완벽해.

ep103. 10cm - perfect

고모가 돌아가셨다. 여든두 살. 요즘으로는 돌아가시기엔 조금 이르신 나이라 생각되지만 평소 지병이 있으셨고, 15년 동안 병마와 싸우다 운명을 달리하셨다. 고모의 고향인 경북 안동에서 장례가 치러졌고, 회사 규장 상 고모상은 휴가를 받지 못해 부모님 두 분만 다녀오셨다. 장례를 다녀온 아버지는 본인 수첩에 고모의 제사일을 볼펜으로 꾹꾹 눌러 적으셨다.


고모. 고모는 사실 조금 먼 친척일 수 있지만, 우리 고모는 친할머니보다 각별하고 고마운 분이시다. 막내 남동생인 아버지를 가장 먼저 챙겨주신 분이자, 조카인 나와 남동생을 지극히 챙겨주셨기 때문이다. 특히 아버지에겐 친엄마와 같은 존재 셔서 아버지의 슬픔이 더 컸다. 어머니에게 듣자 하니, 장지로 떠나는 순간 아버지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셨다고 들었다. 단 한 번도 두 아들 앞에서 눈물 보인 적 없던 아버지도 고모 앞에선 아이일 뿐이셨다.


아버지는 9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고, 할머니는 아버지를 낳고 여섯 달만에 돌아가셨다. 갓 태어난 여섯 달된 아버지는 분유도 없던 시절, 젖동냥을 하며 생명을 연장하셨다. 그 어린 아버지를 안고 젖동냥을 다녔던 분이 고모였고, 아버지에겐 친엄마와 다를 바 없었다.


그 이후에도, 고모는 아버지가 어려움을 겪진 않을지 모든 방면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다. 집을 이사할 땐 이사비에 보태라며 돈을 보내주셨고, 김장철엔 직접 담근 김치와 젓갈을, 명절엔 고기와 나물반찬 등을 택배로 보내주셨다. 단 한 번도 참기름과 고추장을 산 적 없을 정도로 생필품을 끊임없이 보내주셨다. 고모의 친 딸과 아들이 질투를 할 만큼. 고모에게 아버지는 평생 여섯 달 짜리 젖동냥이 필요한 남동생이자, 아기였다.


내가 대학에 입학했을 땐 학비 지원을 해주셨고, 입버릇처럼 내가 결혼하는 건 꼭 보고 죽겠다고 말씀하셨다. 업어 키운 남동생이 결혼해 낳은 조카는 얼마나 어여쁘셨을까. 단지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예쁨을 받고, 세상의 어려움 중 일부를 겪지 않았다. 고모 덕분에. 하지만 결혼하는 모습을 보시겠다던 고모의 말씀은 결국 나로 인해 지키지 못했다.


그런 고모가 돌아가시니, 정말로 꽤나 슬펐다. 자주 찾아뵙지 못했던 죄송스러움이 가장 컸고, 아무런 이유 없이 사랑해주신 존재가 사라졌다는 슬픔이 그다음이었다. 나아가 어른을 어려워하는 성격에 살갑게 대하지도, 표현하지도 못했다. 온 우주와 과학이 죽음은 곧 다른 탄생의 기반이라 설명 한 들, 소중한 사람과의 이별은 어떤 논리로도 설명될 수 없다. 그리고 어설프게도, 축구하러 가는 차 안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이 노래에 눈물이 뚝뚝 흘러버렸다.


https://youtu.be/ApyPa5k1jT0

쓰잘데 없는 나를 제때 버리질 않았으니까
멀쩡한 너의 모든 게 엉망이 됐지
내가 없는 너는 이제야 모든 게 다 완벽해
내가 눈치가 빨랐다면 좀 나았을 텐데
(중략)
너를 생각하는 이 밤이 더럽게 구차해서
유치한 말을 밤새워 중얼거렸지
내가 없는 너는 아무리 생각해도 완벽해
내가 눈치가 빨랐다면 좀 나았을 텐데
어제는 아름답고, 오늘은 지옥 같아


축구를 하러 가는 길에 눈물이 나다니, 나참. 나조차도 모를 만큼 고모는 큰 존재였던 것 같다. 어제는 아름답고 오늘 이후론 지옥 같다는 말, 쓰잘데 없는 조카와 아버지를 버리지 않아 엉망이 된 고모의 삶. 받은 것의 십 분의 일도 갚지 못했지만, 더 이상 고모를 찾아 뵐 수 없게 된 지금을 이 노래가 눈물샘을 깊게 찔렀던 것 같다.


살아계실 때 잘하라는 말. 듣고도 참 많이 지킬 수 없어 생긴 문장일까. 딱 한 번 생전의 고모를 마주한다면, 우리 아버지 살아있게 해 주셔서 감사드린다고, 제겐 고모가 할머니였고, 제가 가장 존경하는 어른이었다고 말씀 꼭 드리고 싶었는데.  황망하고도 또 죄송스러워지는 밤.


그날, 하늘의 별이 된 수많은 생명들이 있겠지만 우리 가족에게 3월 19일은 고모를 위한 날로 기억될 것이다. 이 작은 나의 공간 속에서 고모를 추모하며. 감사합니다, 평생 잊지 않을게요. 평안히 잠드시기를.



'수요일의 플레이리스트(줄여서 수플레)'는 다섯 명의 브런치 작가가 매주 수요일마다 본인의 에세이가 담긴 음악을 소개하는 읽고 쓰는 라디오입니다. 잠들기 전 이름 모를 누군가가 추천해주는 노래를 듣고 싶으셨던 분들, 즐겨 듣는 노래에 다른 누군가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궁금해본 적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매주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주시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음악에 조예가 깊거나 전문적으로 음악에 대해서 잘 아는 '음. 잘. 알'들은 아닙니다. 그저 음악을 좋아하고 혼자만 듣기엔 아까운 나의 플레이리스트를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들일 뿐이죠. 비가 오는 날엔 비 오는 날 듣기 좋은 음악을, 너무 추워서 어딘가에 숨고 싶을 땐 숨어 듣기 좋은 음악을 한 편의 글과 함께 나눠보려고 합니다. 글에 담긴 노래를 들으며 천천히 읽어 내려가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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