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를 알면 달라졌을까

by 민매미

세상에서 제일 친한 친구가 우리 집에서 내 돈을 가져간 다음날 아침. 어제보단 바람이 선선해진 것 외엔 더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었다. 아, 물론 놀란 마음이야 밤새도록 있었지만 그녀가 돈을 가져간 것은 마땅한 이유가 있을 거라며 자라나는 생각을 정리하기 바빴다.


내 목적은 하나였다. 그녀가 친구의 돈을 훔쳐간 이유. 그것도 촌각을 다투며 책상 위 푼돈을 가져가게 된 황급한 사유를 나는 무척이나 알고 싶어졌다. 뭘 훔치는 것에 무슨 대단한 이유가 있겠냐만은, 그래도 친구네 집에 처음 놀러 와서 돈을 훔쳐가야 할 만큼 특별한 이유가 있었는지가 궁금했다. 어차피 그녀가 훔쳐간 오천 원은 어제 함께 뱃속에 집어넣었던 떡볶이들이 되어버렸고, 이제와 돈을 되찾기보단 훔쳐간 이유를 찾는 것이 중요했다.


일단의 작전은, 학교에 가서 그녀의 눈을 보고 차분히 이야기를 시작해 보는 것. 사람의 눈을 보면 어느 정도 답이 나온다고 했으니, 서로 눈을 마주 보고 대화를 하다 보면 친구 P의 눈동자에 감춰진 무언가를 발견해 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녀의 눈에 담긴 감정이 당당함인지, 불안함인지, 미안함인지, 죄책감인지.. 그게 뭐가 됐든 그 눈에서 이유를 찾을 수만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고 생각했다.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자리에 앉으며 그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P는 옆자리에 앉은 조용한 성격의 J에게 무언가를 부지런히 말하고 있었다. 그 옆엔 말 많은 S가 귀를 한껏 쫑긋거리고 둘의 얘기를 듣고 있었다.

여느 때와 같이 인사하려고 손을 드는 순간 나와 P는 눈이 마주쳤고, 그녀의 눈동자들은 갈 곳을 잃은 채로 휙 시선을 피해버렸다. J와 S의 눈빛도 다를 바 없었다. 셋이서 나를 바라보는 눈빛은 이미 싸늘할 대로 싸늘했다.


난 직감했다. 오늘은 어제와 다른 하루가 시작되었음을. 그들의 대화는 어느덧 끝나 있었고, 그 누구도 나에게 말을 하진 않았지만 눈빛 하나만으로도 모든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이제 두 번 다시는 친구들과 어울릴 수 없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눈빛은 우리 반 여학생들 전체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시간차로 속속들이 멀어지는 아이들의 눈빛을 느꼈다. 나 몰래 뒤에서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빠른 속도로 어떠한 말이 퍼져나가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눈치챘다. 그리고 그 직감은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확신이 되었다.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들고 말없이 그 애들 앞으로 다가갔을 때 그들은 나를 빤히 쳐다봤다. '어서 와, 반가워'가 아닌, '니가 뭔데 여기를 앉아.'라는 눈빛으로. 왜 그러는 건지 물어봤어야 하는데 물어보지를 못했다. 물어보면 더 멀어질 것만 같아서. 도대체 뭐 때문에 갑자기 나를 멀리하는 건지, 무슨 오해가 있는 거냐고도 전혀 물어볼 기회나 용기도 없이 빠르게 빠르게 그들과 나는 멀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이틀이 일주일이 되고.. 일주일이 한 달이 지났을 때, 나는 이미 모든 아이들과 멀어져 있었다. 한 반에 있던 오십 명 모두가, 여학생뿐 아니라 남학생들도 모두 나를 멀리했다.

그렇다. 나는 영문도 모르고 왕따가 되었다. 다행히 전교생 왕따는 아니었다. 아직까지는 반에서만 왕따인 '반따'였다. 그건 참 다행인 일이었다. 다행히 다른 반에도 친구가 있었기에 슬프진 않았다. 뭐, 지들이 오해가 있다면 언젠가는 풀리겠지라고 스스로를 위로했고, 다른 반 친구가 반갑게 맞아줘서 함께 점심 도시락을 먹었다.


하지만 그것 역시 오래가지 않았다. 반과 반 사이에도 연결점은 존재했고, 그 연결점들엔 발이 달려서 곳곳에 우리 반에 왕따가 있음을 전달하고 있었다. 지가 왜 왕따를 당하는지도 모르고 당하는, 이유를 모르는 왕따. 아무리 생각해도 참 어이가 없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너무 유약하고 너무 바보등신 같았기에 그저 친구들이 언젠가는 마음을 열고, 오해를 풀고 다가와줄 것이라고만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다른 반에도 내가 왕따라는 소문이 점차 퍼지다 보니, 더 이상 다른 반 친구 L에게도 부담을 주고 싶진 않았다. L은 괜찮다고 했지만, 괜히 나 때문에 그 친구마저 따돌림을 받는다면 너무나도 미안하고 슬퍼질 것 같았다. 그래서 오늘부터는 다른 반 친구랑 먹겠다고 하면서 도시락을 들고 학교 운동장 스탠드에 가서 혼자 앉았다.

이젠 제법 차가워진 바람을 맞으면서 엄마가 싸준 보온 도시락을 꺼내먹었다. 반찬들이 가을바람에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차가운 반찬들은 견딜만했지만, 얼어붙어버린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다.


그렇게 서러운 점심을 먹고 다시 교실로 돌아갔을 때, 나는 내 책상 위를 보고 너무나도 소름이 끼쳐 구역질을 할 뻔했다.

누군가 칠판지우개로 내 책상을 마구 두들겨 분필가루로 도배를 해놓고, 의자 위로 책상을 밀어뜨렸는지 책상 서랍에 가지런히 넣어두었던 교과서들은 두서없이 바닥에 쏟아져 있었다. 가방 걸쇠에 잘 걸려있던 가방도 활짝 열려있는 상태였고, 내 모든 소지품들이 분필가루들로 뭉개짐을 당해져 있었다.

그렇게 분필가루로 도배된 책상 위에는 '미친년아 꺼져!'라는 손가락으로 쓴 글자가 선명했고, 교실 앞 칠판에도 나를 향한 욕설과 저주들이 가득 적혀 있었다. 누가 봐도 한 두 명이 한 짓거리는 아니었다. 내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이렇게라도 분통해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여러 명이 모여 작당해 만들어 놓은 덫이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무엇이 그들을 괴물로 만들었을까. P는 도대체 애들에게 무슨 얘기를 했길래 이렇게 나를 고통 속으로 빠뜨리게 된 걸까. 차라리 이유라도 말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두 달 넘게 지속된 이유 모를 정신적 폭력은 사람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애써 태연한 척해보려고 했지만, 솔직히 참 쉽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지옥처럼 느껴졌고 견디기 힘들었다. 그냥 누구라도 붙잡고 왜 왕따를 시키는 건지 그 이유를 물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 질문을 하는 순간, 분노의 감정이 상승곡선을 타고 이제는 걷잡을 수 없이 나를 향한 육체적 폭력이 시작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여럿이서 하는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되면서 내가 왜 왕따를 당하는 것인지 비로소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P는 반 아이들에게 내가 하지 않은 말들을 이간질처럼 쏟아냈고, 아이들은 그대로 그 말을 믿으면서 나를 미워하게 된 것이었다.

P가 이루고자 하는 목적은 단 하나였다. P가 우리 집에서 내 돈을 훔쳤다는 사실을 내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 그 철저한 목적 하나를 가지고 나의 인간관계에 차단벽을 쌓아둔 것이었다. 철저한 자기 방어의 결과. 그 결과에 나는 인격적으로 몰살당했고, 모든 생명력을 잃었다.


속에선 눈물이 나고 천불이 났지만, 정말 아무렇지 않은 듯 '니들이 아무리 나를 괴롭혀봤자 나는 아무렇지 않아'라는 명확한 태도를 보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했다. 가방과 책상에 잔뜩 앉은 분필 가루를 덤덤하게 털어내고, 쏟아져 널브러진 교과서들을 서랍 안에 다시 정돈하고, 다시 내 소중한 책상과 의자를 고쳐 세워 앉는 것으로 나만의 1인 시위는 끝이 났다. 그렇게 하면 포기를 할 줄 알고 더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를 했다.


그러나 그런 나의 행동이 더 자극이 되었는지, 그다음부턴 대놓고 내 뒤에서 쌍욕을 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나를 자극하고 싶어 하는지는 머리 뒤에서 들려오는 온갖 욕들을 들으면 그 혀의 수준을 알 수 있었다. 입에 담을 수 없는 욕들이 수업시간에도 내 뒤통수를 갈겼지만, 나는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어찌 보면 그 무모하고 무례한 행동들에 일일이 반응할 기력조차 없었고, 어서 빨리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기만을 바랄 뿐이었을지도..


하루하루가 무척 서럽고 또 서러웠지만 어디에도 내 마음을 터놓을 사람이 없었다. 학교에서는 아무도 믿을 수가 없었다. 어떤 말을 했을 때 어떤 파장이 일어날지는 전혀 예측을 할 수가 없었기에. 말은 또 말을 낳고, 오해를 낳고, 불신과 미움을 낳을 것만 같아서. 입을 닫고 귀를 닫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가족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심지어 엄마에게도 말할 수가 없었다. 얼마나 속상해할지가 눈에 뻔히 보였고, 내가 왜 왕따를 당하는지에 대해서 이유를 말하고 싶지 않았기에.. 답이 없는 답안지를 엄마에게 보여줄 순 없었다.




유서를 썼다.


도무지 선생님도 도와줄 수 없다고 깨달았을 때, 나는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떨어지는 것으로 짧은 생을 마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두쪽 정도의 유서를 적어두고선 모두가 잠든 새벽에 위층을 향해 올라가 난간 앞에 섰다. 막상 10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너무나도 아찔한데, 내일 또다시 마주할 아침을 생각하니 더더욱 아찔했다. 내일도 또 해가 뜬다는 사실은 나를 너무 겁나게 만들었다.


복도식 아파트 난간에는 다행히 발을 걸칠 만한 기다란 구멍이 있었기에 한 발을 거기 얹고, 다른 발을 옮겨 무게중심을 이동시킨다면 나의 자살 계획은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는 것이었다. 이제 딱 한 두 발만 내딛으면 된다. 모든 것을 끝낼 수 있다.


한 발을 얹고,

생각했다.


지나온 모든 시간들.

후회 없이 살았고,
후회 없이 갈 것이다.


나름의 최선을 다 했기에

나름의 이유가 있다.


순간,

엄마의 얼굴이 아른거린다.


두 손을 꼭 모으고

딸을 위해 기도하는 엄마의 모습.


오랫동안 그 모습이 눈앞에서 둥둥거렸다.


스스로 삶을 포기하려는 순간,

모태에서부터 비롯된 절명의 비명이 온몸을 진동시켰다.

그 진동에

그동안 쌓였던 눈물이 우수수 쏟아졌다.


나는 한참이 지나서야

그 난간에서 손을 뗄 수 있었다.


내 방 책상 위 고이 올려두었던 유서를

박박 찢어 휴지통에 깊숙히 감췄다.


모든 것을 초월한 눈빛으로

준비 없이 겨울을 마주한 사슴처럼-


그렇게 밤새,

우두커니

방 안에 홀로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