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의 숨

by 민매미

폭력의 무게를 재는 저울이 있다면 내가 당한 폭력의 무게는 얼마였을까.

불행 중 다행으로 나의 몸 어딘가를 망가뜨렸던 폭력은 아니었지만, 서너 달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는 이유 없는 정신적 폭력에 무차별적으로 시달려야 했다. 아니, 어쩌면 육체적 폭력도 당했는지도 모른다. 뒤통수가 뚫릴 것만 같은 입에 담지도 못할 쌍욕으로 시종일관 나를 막대하는 것들로 인해 뇌가 늘 뜨거웠으니.

또, 내 소중한 물건들을 대놓고 망가뜨리는 것도 육체적 폭력에 포함된다면 나는 육체와 정신이 모두 폭력에 물든 셈이었다. 하지만 내 몸에 손을 대는 존재는 없었다. 그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삶에 대한 절박함과 분노가 살아남아 꿈틀거렸던 탓이었을까. 어쩌다 나의 눈과 마주친 존재들이 뒷걸음치는 모양새를 발견하기도 했다.


그래도 보복이 두려운 건 예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일 거다. 그것은 나를 도우려는 친구까지도 위협하는 행위였다. 왕따를 돕다가 되려 따돌림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우려, 걱정, 불안. 그 모든 부정적 감정들은 나를 단절된 시공간에 가두고 철저한 외톨이로 완성시키기에 충분한 요소들이었다.

그래도 이따금씩 존재했다, 나를 도와주려는 친구가. 그렇지만 다른 아이들의 기세에 눌려 결국 등을 돌릴 뿐이었다. 그러나 그 나비 같은 작은 날갯짓이 난 참 고마웠다. 비록 가랑비에 찢어져버린 날개였지만 그 고마운 존재의 작은 날갯짓을 느낄 때마다 나를 감싸고 있는 공기들이 환기되는 걸 느꼈다.






복수를 꿈꿨다.

누구나 하는 흔해 빠진 복수를.


나의 첫 복수는 슬프도록 아름다웠다. 학생의 머리에서 나왔다기엔 극도로 잔혹하고 위험한 복수들이 하루종일 뇌 속에서 넘실댔다. 그리고 그 복수를 이루는 날에는 내가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닐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나는 복수를 꿈꿔야 했다. 완벽한 복수를 구상해 실현하는 것으로 삶의 의미를 찾아내고 있었다.


일단, 예리한 도구를 이용해 나를 배신하고 이간질한 P의 몸에 큰 상처를 내어 서서히 말려 죽이고, 따돌림의 정도에 따라 가해자들의 순위를 매겨 이마에 조각조각 새겨 넣은 다음,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기억들을 하나하나 끄집어내어 고막이 찢어질 정도로 귓가에 외쳐 상기시켜 주며, 폭력의 횟수만큼 손가락- 발가락을 잘근잘근 씹어내 불에 살라버리는 복수로써 차근차근 갚아가기로 했다. 그토록 강력한 분노와 희열에 휩싸인 복수를.

누구라도 내 입장이 되면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을 거야.

이 복수는 인과응보의 당연한 결과 값이니, 그들이 온전히 감당해야 해.

그렇게 해서 내가 죽여버린 사람의 숫자는 꽤 많았다. 거의 학급 전체를 몰살시킬 정도의 충분한 분노였다. 그들을 죽음의 지옥으로 빠뜨린 것은 당연한 이치, 마땅한 결과였다.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그동안 내가 겪어온 모든 괴로움의 시간들을 모두 다 되돌려주는 것. 악마 같은 너희들도 철저히 겪어봐야 하며, 차라리 죽고 싶을 만큼 더욱더 고통스러워야 한다는 것.

그렇게 공상의 세계에서만, 나는 차근차근 실행에 옮길 뿐이었다.



다시 복수를 꿈꿨다.

누구도 생각 못할 품격 있는 복수를.


직업소명에 따라 학생이 할 수 있는 학생다운 복수를 해야 했다. 합법적이고 젠틀한 방법으로, 악을 선으로 갚아야겠다는 종교적 신념이 가미된 복수를 다시 꿈꿨다. 아파트 옥상 위에서 한 발을 난간에 걸치고 다른 발을 올리지 못하게 만들었던 그 따뜻한 기도의 손이 내 손을 잡아주고 있었다.


그때부터였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공부에 불이 붙기 시작한 것이.

내 공부의 목적은 하나였다.

월등한 성적으로 가해자들을 짓누르는 복수를 하는 것.


중학교 3년 내내 통틀어 손꼽힐 정도의 화력으로 공부했다. 나는 생존을 위해 공부를 했다. 내가 그들보다 공부라도 잘해야 더 이상 나를 무시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인간은 비교의 동물이니, 본인이 괴롭히는 존재보다 자신이 모자라다고 느끼면 되려 겁이 날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우매한 존재들은 명철한 사람 앞에선 움츠려 들기 마련이기에. 그런 존재가 되고자, 절대평가로 이뤄낸 상대평가를 나는 이끌어내야만 했다.


공부의 칼을 품은 뒤로는 나를 향해 욕하든말든 무반응으로 대응했다. 어차피 쉬는 시간에도 나와 놀아줄 친구는 없었으므로 책과 친구가 되는 건 쉬운 일이었다. 책은 가장 정직하면서도 똑똑한 친구가 되어주었다. 비록 교과서라는 딱딱한 친구였지만, 선생님이 그 친구 이야기를 많이 해준 덕에 점차 친해지게 되었다.

덕분에 기말고사에서 큰 성과를 이뤘다.

전교 4%라는 백분율로 난생처음 보는 전교 석차를 얻게 되었다.

반에서 애매한 포지션의 성적을 가지고 있던 나의 성공적인 복수였다. 이를 악물고 해낸 자신이 너무 대견하게 느껴졌다. 나만의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의도한 바가 제대로 먹힌 것 같았다. 가해자들도 적잖이 놀란 눈치였고, 기말고사 성적표가 나온 뒤로는 나를 향해 쌍욕 하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토록 꿈꿨던 복수가 온전한 모양을 되찾은 것이다!






가장 환멸을 느꼈던 존재는 담임선생이었다.


두더지 같은 짧은 숏커트에 티셔츠 옷깃을 바짝 세워 올려 입는 것이 취향이던, 유난히 반짝이는 은색 귀걸이, 다소 과한 붉은 립스틱의 옹졸한 입술. 담임은 나에게 학교생활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에 대한 그 어떤 질문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가 직접 나를 학급 서기로 지명하고, 매일 아침 교무실에서 출석부를 가져와 교탁 위에 올려놓는 역할을 시켰을 때도, 본인이 필요할 때마다 반장과 부반장 대신 나를 불러내어 이것저것 잔심부름을 시켜댔을 때도 그녀는, 단 한 번도 나의 안부를 묻지 않았다. 때문에 반장과 부반장은 선생이 나를 편애한다는 오해를 하여 더욱더 나를 미워했다.


처음엔 심증만 가득했다. 담임이 아직 상황을 모르는 건가 싶어 스승을 의심하지 않기로 여러 번 다짐을 거듭했다. 담임까지 알게 되면 내 처지가 너무 비참할 것 같아 차라리 잘 된 거라며 애써 위로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1학기와는 확연히 달라진 내 표정과 행동을 전혀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참으로 이상했다.


그러다 그 애매한 심증은 졸업식날이 되어서야 완전한 확신으로 바뀌었다.

기말고사 성적표로 복수도 성공했고, 이제 하루만 버티면 모든 것이 끝나는 날이었다. 모든 폭력으로부터 해방되는 자유의 날, 졸업식. 그런데 그 소중한 하루를 담임이 망쳐버린 것이다. 하필 졸업식 전날, 각자 앉고 싶은 친구와 앉으라며 담임이 자리변경을 먼저 제안한 것이다.


덕분에 남녀 학생들이 두 분단으로 나눠 앉았고, 나는 여학생들 쪽엔 앉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내 졸업식 자리는 남학생들 사이였고, 나는 뜬금없이 여자 혼자 앉아있는 모양새로 졸업식을 치르게 되었다.


졸업식날 내 동생은 왜 남자애들 사이에 혼자 앉아있는 거냐며 내게 물었다. 동생의 질문은 졸업식에 온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묻는 압박질문 같이 느껴졌다. 제발 그 질문만은 들리지 않길 바랐는데, 난 정말 딱 죽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너무 창피하고 괴로웠다. 졸업식을 기념하기 위해 찍어대는 사진들은 마치 고문을 받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졸업식날까지도 유치하고 졸렬한 따돌림은 계속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담임선생도 가해자 중 한 사람으로 서있었다.

애써 불편한 표정을 감추고 졸업식을 꾸역꾸역 마치고 교실을 나서려는데 부모님이 담임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밝은 표정으로 감사 인사를 건네는 나의 부모님에게 담임은 무언가를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고, 이윽고 돌아선 부모님의 안색은 참으로 묘했다. 어둠이 짙게 깔린 기쁨 속 슬픔이랄까...


찝찝한 마음으로 비로소 학교를 빠져나와 식사자리에서 듣게 된 엄마의 첫마디.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니. 담임선생님이 말하더라. 네가 교우관계가 좋지 않다고."

"...."

"왜 말 안 했어? 엄마 속상하게."

"말했어 엄마, 그날 유서에."

라고 하마터면 말할 뻔했다. 그 기쁜 졸업식 날 축하 밥이 안 넘어갈 줄이야...


내가 기억하는 중학교 3학년 담임선생은 참 형편없는 구제불능 어른이었다. 선생님이라고 부르기도 싫은 우둔하고 미련한 존재. 모두가 기쁜 날에 구태여 부모님의 마음을 후벼 팠던 마지막 가해자. 고등학교에 가면 이 지긋지긋한 얼굴들을 안 봐도 된다는 희망을 품고 견뎌낸 노력의 시간들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린 파괴자.


내 편에 서주진 못하더라도,

적어도 중재자의 역할은 해줄 줄 알았던 그녀는 그저 폭력의 방관자일 뿐이었다.






나는 폭력이라는 바다에서

몇 미터 수심 아래로 빠져있었던 것일까.


오늘도 난,

죽지 못해 살고 있는 영혼들을 향해

심연 속에서 공기방울 같은 숨을 내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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