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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무리 Dec 25. 2015

외롭고, 가난하고, 잔인하고, 그리고 짧은 인생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 나쁜 나라 바꾸기 상상 #3

#0 사회가 소위 ‘헬조선’이라는 좌절에 휩싸이기 전에도 현실은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점이 있다면, 당시에는 우리나라를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안에서 희망이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진보세력이 정권을 잡았을 때에는 정책의 준비가 부족했다는‘무능함’에 대한 비판과 반성의 목소리가 커지며, 대안의 구체적 실천방안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다. 이제 논의에서 단순 비판은 무책임한 것이 되었고, 대안적 방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했다.  그중 큰 지지를 얻은 것이 사회적 경제라는 대안이었다. 그러나 '나쁜 나라 바꾸기 상상 #2'라는 글에서 한병철 교수의 비판에 시각을 함께하며 그 한계를 이야기한 바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이 글에서 대안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며 ‘책임감 있는’ 마무리를 하고자 한다.


                            

       #1 온고지신이란 말처럼, 앞일을 가늠하기 위해 우선 지난 일을 되돌아보자. 근대(modern)라는 시대는 혁명적인 전환이 이루어진 시대였다. 처음으로 지배자를 바꾸는 것을 넘어 지배자를 없애기 위한 역사가 쓰였다. 만인이 인간의 이름으로 국가에 저항해 권력으로부터 자유롭고, 인간으로서 평등한 세상을 만들고자 하였다. ‘인간 위에 인간 없고, 인간 아래 인간 없다’는 말은 단순히 신분질서를 폐지하는 것을 넘어, 자신을 지배하는 억압적 권력을 허용하지 않는 저항적인 자유(liberty)를 추구하는 표현이었다. 


이러한 시대에 자본주의에 맹렬히 저항한 것 또한, 인간을 억압하는 시장의 권력으로부터의 자유를 추구한 것이었다. 좌파들이 보기에 새로운 시대는 시민혁명을 통해 인간평등의 가치를 드높였음에도, 시장권력이 계급을 나누고 인간을 지배하고 있었다. 자본주의의 시장질서는 또 다른 지배체계였으며, 지배자였다.


들라크루아 -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2 한편, 새로이 권좌를 차지한 자본주의라는 지배체계는 시민혁명이부순 구체제의 폐허로부터 자라난 것이었다. 과거의 사람들은 사회에 소속된 부분으로서 살아갔다. 그들은 땅에 소속되어 살아갔고, 전통 질서에 따라 부여된 역할을 수행했으며, 자신을  갈고닦아 도덕에 맞추어 갔다. 그러나 근대의 혁명의 시기에 이르러 사회의 질서와 지배로부터 ‘개인’이 해방되어야 한다는 유래 없는 생각이 퍼져나갔다. 그리고 사회의 굴레를 부수어 ‘개인(individual)’을 만들어내었다. 


전통사회의 땅과 질서로부터 벗어난 ‘개인’들은 도시로 가, 노동시장을 이루었다. 전통의 사람들은 사회의 일부라 계약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사회에 계약되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맺는 것은 자본가들이 원하는 자유로운 시장 계약일 수 없었다. 이를테면, 남북전쟁 시기 미국의 남부에선 백인 농장주들이 흑인들을 노예로 소유하고 있었다. 흑인들이 노예로 속박되어 있는 동안, 그들은 노동시장에 유입될 수없었다. 북부의 승리로 그들이 해방된 후에야, 그들은 일자리를 찾아 노동시장을 헤매는 노동자, 혹은 예비노동자가 되었다.


                                           



다시 말해, 개인은 전통 질서의 파괴를 통해 생겨났다. 이는 단순한 전통사회의 파괴를 통해서도 이루어졌다.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을 보면 아프리카인들을 노동자로 만들기 위해 그들의 주식이던 바나나 나무를 없애버리는 서구의 모습이 나온다. 전통사회의 생활기반을 파괴함으로써 사람들을 뿔뿔이 흩어, 임금노동에 매달려 살아가도록 만든 것이다. 이는 아프리카와 같은 식민지뿐만 아니라 유럽 본토에서도 일어난 일이었다. 역사수업에서 수도 없이 들어왔던 ‘엔클로저’는 영국에서 양모생산을 위해 전통 농촌 사회를 파괴한 일이었다. 이로 인해 영국의 많은 농민들이 전통적인 삶의 기반을 잃어야 했다. ‘악마의 맷돌’이라는 표현은 이와 같은 근대 전환기의 파괴적인 모습을 빗댄 말이었다.


#3 사회로부터 동떨어진 개인이란 것을 누구도 본 적이 없다. 그것은 상상의 존재다. 인간은 누구나 가족으로부터 태어나, 사회 속에서 자라난다. 사회학에선 성숙한 어른으로 자라나는 것을 ‘사회화’라고 이야기한다. 인간은 실로 사회적인 동물이다. 그러나 근대의 학자들이 개인과 사회의 관계에서 고민한 것은 상상적 차원의 문제였다. 본질적인 문제를 떠올려 보았을 때, 개인이 사회에 복종해야 하는 논리적 이유가 무엇인가? 그러니까 사회의 권력은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가? 


리바이어던



       그중 홉스의 생각에 따르자면 개인만이 뿔뿔이 흩어져 있는 (자연의) 상태는 서로가 서로를 위협하는 끔찍한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인생은 외롭고, 가난하고, 더럽고, 잔인하고, 그리고 짧다.’ 홉스는 그 비참함을 해결하기 위한 길로 사회의 계약을 이야기한다. 개개인이 모여 ‘리바이어던’이라는 강력한 존재를 이루어내는 것이다. 리바이어던은 구성원들이 서로 합의한 ‘인공의 존재’이다. 합의된 질서의 보호를 받음으로써 각각의 사람들은 개인 사이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다. 개인의 자유를 진실로 누리기 위해선 오히려 전체 속의 개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정당한 전체 권력 속의 개인이. 단순하게 말해서, 리바이어던이란 구성원으로부터 정당함을 인정받은 사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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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부자 되세요”라는 인사를  주고받는 우리는 다 함께 부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것은 경쟁의 승자를 일컫는 말이다. 따라서 그 인사말은 인사인 동시에 선전포고일  수밖에 없다. 모두가 스스로의 경영자가 된 오늘날, 사람들은 자기계발의 경쟁으로 자신이라는 상품의 우월함을 경쟁한다. 우월한 상품, 우월한 계발자, 우월한 경영자, 부자가 되기 위해서. 이제, 사회는 시장이 되고, 시장은 파편화된 개인들로 구성된다. 혹은 거꾸로, 파편화된 개인들이 시장을 이루고, 시장이 부재한 사회를 대체한다. 


그리고 그러한 사회, 혹은 시장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이 현실을 지옥이라 부른다. 홉스의 상상처럼 이러한 인생은 ‘외롭고, 가난하고, 더럽고, 잔인하고, 그리고 짧았다.’ 사람들은 고독사하고, 과로사하고, 괴물이 되어갔으며, 자살했다.  

 홉스의 해결책은 하나의 길을 비추어준다. 사회를 구성하고, 공존을 위해 합의한 법으로 서로를 보호하는 것. 과거와 다른 새 시대, 즉, 근대라 불리는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내었던 것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두 가지 혁명이었다. 한 혁명은 권력을 부수어 개인을 만들어내었고, 다른 하나는 개인을 시장의 권력 아래 굴복시켰다. 우리의 대안은 민주주의 혁명의 길을 한발 더 나아가는 것이어야 한다. 사회의 보호 없이 개인은 힘 있는 자들의 권력 앞에서 무력하다. 우리가 개인으로  존중받게 해줄 사회의 구성이 필요하다. 홉스가 말한 국가의 구성은 어떤 사회에서는 이루어졌다. 그러나 현재 한국 사회를 사는 우리는 어떠한가? 어떤 국가가 좋은 국가인가 하는 계약적 상황을 다시 생각하면서 시민들이 현실을 비판하며 대안을 구성할 이유가 충분할 정도의 나쁜 나라에 살고 있지 않은지 생각할 일이다.


                                                                                                                                     by 한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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