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분노 중, 과연 세상은 움직일 것인가?
2010년쯤, 우리 사회에서 유행한 키워드는 바로 ‘힐링’과 ‘위로’였다. TV에서는 ‘힐링캠프’라는 이름의 예능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었고, SNS 타임라인은 모두 일상을 떠나 잠시 여행을 떠나는 것도 모두 ‘힐링’하기 위해서라고 들끓었다. 청춘을 위한 ‘위로’ 콘서트 등도 자주 열렸으며 김난도의 <아프니까 청춘이다> 책도 누적 판매부수 300만 부를 넘고 799쇄를 찍는 등의 기록을 세웠다. 당시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은 시대적 흐름에 부합했고, 당시 청춘이 원하는 위로였다. 이 책이 발간된 당시 20대는 기성세대들이 20대 시절에 민주화 운동까지 나섰던 것과 달리 체제 순응적이고 의욕이 없으며 패기도 없다는 인식 속에서 비난을 받고 있었다. 취업은 힘들고 사회는 갈수록 어려워지는 현실과 사회로부터 받는 비난 속에서, 따뜻한 말을 건네며 위로해주고 힐링해주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청춘들에게 위로가 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 속에서 힘든 사회와 현실을 벗어나 ‘힐링’ 하며 ‘위로’를 받자는 담론은 사회적으로 유행하게 된다. 각종 자기 계발서들이 쏟아졌고 ‘청춘’이라는 이름을 달고 수많은 책과 문화적 콘텐츠들이 쏟아지게 되었다.
기성세대나 신문이나 각종 미디어에서 자주 듣는 말이 있었다. 청춘은 누구나 아픈 것인데 요즘 젊은이들은 도전을 하지 않고 패기가 없다고. 또한 눈을 낮춰 중소기업을 보게 되면 수많은 취업의 기회는 열려 있는데 모두 높아진 눈 때문에 대기업을 바라보니 취업이 되지 않는 것이라는 말. 사실 나만해도 처음엔 모든 것이 도전의식과 패기가 부족한 개인의 문제인 줄 알았다. 청춘 시절은 넘어져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요즘 20대들은 너무 안일한 것이 아닐까 하며 스스로 채찍질도 해보고 ‘힐링’ 담론에 젖어 위로도 받았다. 그러나 청춘을 비판하기에는, 청춘이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기에는 이 사회의 땅바닥은 너무도 메마르다. 과거에는 패기를 가지고 도전했다가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던 사회였지만, 현재는 그렇지 않다. 한번 도태되면 다시 일어나기 어려운 사회 구조이다. 과거에는 학생 운동을 해도, 대학시절에 무슨 행동을 하며 도전을 해도 대학을 나오면 거의 모두 취업을 할 수 있었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며 몇몇 교수님들의 미안하다는 사과를 대학을 다니면서 여러 차례 받은 맥락도 이와 같았으리라.
시간이 흐르고 이러한 답답한 현실 속에서 현실을 회피하면서 일시적인 위로만 주는 ‘힐링’ 메시지는 더 이상 사람들을 사로잡지 못하게 된다. 한동안 엄청난 주목을 끌었던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말은 ‘아프면 환자지 무슨 청춘이야’라는 말로 바뀌어 사람들의 공감을 얻게 된다. 사회적 불평과 불만을 느끼지 못하게 하고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바꾸는 알맹이 없는 ‘위로’와 ‘힐링’ 담론의 허구성이 사회적으로 퍼지게 된 것이다. 청춘은 분노한다. 근본적인 사회구조의 개혁이나 해결 없는 알맹이 없는 ‘힐링’과 ‘위로’는 필요 없다고.
2015년 대한민국은 반복되는 국가적 위기로부터 혼란을 겪고 있다. 세월호 사건이나 메르스 사건처럼 대형 사고가 1년 사이에 연달아 일어났지만 국가의 위기관리 시스템은 여전히 부재했다. 국민에게 문제가 생겨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자신의 목숨은 자기가 알아서 챙겨야 하는 국가가 대한민국이라는 묘사가 사회적으로 유행한다.
청년실업 역시 갈수록 심각해지는 상황이다. 이제 청년세대는 ‘88만 원 세대’, ‘3포 세대’를 넘어 ‘N포세대’라는 용어로 묘사된다. 취업준비생들의 애환이 담긴 신조어도 등장한다. 서류전형에서 조차 빠르게 탈락했다는 ‘광탈’, 인문계 졸업생들은 더욱 취업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문과라서 죄송하다는 ‘문송합니다’, 인문계 졸업생의 90%는 논다는 ‘인구론’까지.
“생존을 결정하는 것은 전두엽 색깔이 아닌 수저 색깔이군요.”
2015년 12월 18일 자살한 서울대 학생의 유서에서는 2015년 대한민국을 강타한 새로운 자조적인 사회 담론인 ‘수저론’이 언급되어 있다. 수저론은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 불평등한 사회 구조를 보여주는 하나의 자조적인 표현이자 유행어이다. 부의 대물림 현상과 사회적 불평등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상황에서 일명 부모를 잘 만난 ‘금수저’들은 다시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다른 ‘금수저’를 낳게 된다는 것이다. 수저론에서는 부모의 재산과 사회적 지위에 따라 금·은·동·흙·똥수저까지 나뉘게 된다. 수저론의 핵심은 부모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 아니라, 한번 흙수저는 영원히 흙수저로 남을 수밖에 없고 벗어나기 매우 어려운 우리 사회의 빈부격차 문제와 계층 문제를 꼬집었다는 것에 있다.
‘수저론’ 이외에도 사이버 공간에서 유행하는 2015년 신조어로는 ‘헬조선’이라는 말도 꼽을 수 있다. 한국의 옛 명칭인 ‘조선’에 지옥이라는 뜻의 영어 접두어 헬(Hell)을 붙인 합성어로 ‘지옥 같은 한국’이라는 표현이다. ‘헬한국’도 아닌 ‘헬조선’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적 부의 대물림이 거의 제도화되었기 때문에 조선시대로 퇴행하고 있다는 풍자가 담긴 것이다. 각종 ‘갑을관계’와 ‘갑질 논란’이 대두되는 사회적 배경 속에서 한국은 살기 어렵고 돈이 생기면 당장 이민 가야 하는 나라로 그려지게 된다.
2015년 대한민국은 분노 중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대중은 더 이상 과거의 일시적 ‘힐링’ 담론에 공감하지 못한다. 알맹이 없는 위로를 주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를 타고 대책 없고 무책임한 ‘힐링’ 담론은 줄어들고 대신 대중이 가진 ‘분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동력으로 삼는 것이 대중문화 콘텐츠의 중심으로 떠오르게 된다.
2015년 여름, 한국 영화의 여름 기대작들인 <암살>과 <베테랑>이 연이어 관객 수 1000만을 돌파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스타 감독과 화려한 톱스타 배우들이 출연하였기에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할지도 모르나, 유명한 감독과 스타마케팅을 해도 모든 영화가 1000만 관객을 돌파하는 것이 아니기에 좀 더 다른 시각의 접근이 필요하다.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였으며 아베의 망언이 화제가 되고 있고, ‘땅콩 회항’, ‘갑질’ 등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영화 그 이상의 메시지가 시원한 액션과 맞물리면서 시너지 효과를 내었다는 것이 문화평론가들이 분석이다. 대중의 ‘분노’는 ‘분노를 바탕으로 한 콘텐츠’ 위에서 그 분노를 속 시원하게 긁어주고 카타르시스 효과를 보여주는 대중문화의 장면에 열광하는 모습으로 표출된다. 과거의 답답한 현실을 가리고 일시적인 처방만 안겨주었던 ‘힐링’ 담론은 부조리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분노’하게 만드는 콘텐츠로 바뀌어 대중문화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이렇게 현실과 사회의 부조리를 파헤치며 울분과 분노를 동력으로 삼는 ‘분노’ 콘텐츠는 각종 드라마와 영화로 들어오게 된다. 2012년 억울하게 딸을 잃은 형사의 복수극인 드라마 <추적자>를 시작으로 2014년 드라마 <미생>, 2015년 영화 <암살>, <베테랑>, <내부자들>,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송곳>, <리멤버> 까지. 브라운관과 스크린은 우리 사회를 그리는 자화상이 되었고 각종 사회의 부조리함이 그려지게 된다. SBS의 시사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 역시 각종 사회문제를 추적하고 고발해 많은 시청자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역시 그알’이라는 반응을 얻고 있다. 이 모든 콘텐츠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현실을 포착하고 부조리함을 고발해 우리의 ‘분노’를 건드리고 있으며 우리는 이에 반응하고 있는 것이다.
각종 문화콘텐츠는 우리의 사회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자화상이다. 이러한 콘텐츠를 이끌어가는 동력이 ‘분노’로 뒤덮이고 있는 것은 어쩌면 매우 슬픈 일이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중이 대중문화가 제공하는 환상적 현실 속으로 도피하면서 적극적인 사유를 하지 못하게 된다는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대중문화 비판론’, ‘문화산업론’의 적용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측면에서 단순한 사회 가림막으로 작용하던 ‘힐링’ 담론이 ‘분노’ 담론으로 넘어왔다는 것은 매우 유의미한 일이다. 사회적 분노가 표출된 ‘분노’는 과연 대한민국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인가? 그 중요한 시점에 우리는 지금 서 있다.
by 박효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