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무리 Dec 25. 2015

사생팬과 팬 사이

청소년 문화가 담고 있는 팬덤 문화 들여다보기 2

사생팬과 팬의 경계


'팬덤이란 무엇인가?'라는 글에서 설명했던 바와 같이, 팬덤 문화는 사회의 편협한 시선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며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팬덤 문화는 음지 문화라는 편견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신이 팬이라는 ‘커밍아웃’을 하지 못하고 몰래 활동하거나, ‘팬클럽 활동’을 과거의 흑역사로 치부해버리는 시각 등이 팬덤 문화의 선입견을 방증하고 있다. 팬덤의 규모가 결코 줄어들지 않고, 청소년이 흔히 경험하는 일반적인 팬 문화가 여전히 색안경을 통해 비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 배경에는 ‘사생팬’이라는 논란을 몰고 다니는 고질적인 집단이 자리하고 있다.


사랑인가, 집착인가.


누군가를 뜨겁게 사랑해본 적이 있는가. 열정을 다해 사랑을 바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맹목적인 헌신이 되기 위해서는, 사실 엄청난 감정노동이 요구된다. 그리고 이 맹목적인 헌신은 더 나아가 스스로의 삶을 좀먹는 어두운 그림자로 변질되어버리곤 한다. '열정(passion)'이란 '수동적(passive)'이라는 말과 어원이 같아 '무언가에 사로잡인 상태'를 뜻한다. 내가 주체가 아니라 그것이 나를 조종하는 상태인 것이다.  그 단적인 예가 바로 사생팬이다. 사실 사생팬을 팬덤 문화의 한 예로 들기엔 조심스러운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 사생팬과 팬은 엄연히 다른 개념이며 그에 따른 구분을 확실히 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생팬이 팬덤 문화에서 파생되었다고는 하지만, 이는 변질되고 왜곡된 개념이다. 사생팬을 굳이 정의하자면, 특정 연예인의 사생활, 일거수일투족까지 알아내기 위해 밤낮없이 해당 연예인의 일상생활을 쫓아다니며 생활하는 극성팬을 지칭한 표현이다.


 사실 팬들 입장에서 ‘사생팬’이라는 단어는, ‘팬’이라는 글자가 붙는 것 조차도 용납할 수 없는 스토커일 뿐이다. 팬들과 사생팬이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스타들의 사생활 존중이다. 이 한 몸 바쳐 1분 1초도 놓치지 않고 스타들을 따라다니는 사생팬은 스타들의 사생활을 캐내기 위해 존재한다. 그들의 목적은 공식적인 스타들의 스케줄이 아니다. 사석에서의 내 가수의 모습, 숙소에서 쉬고 있는 내 가수, 다른 사람을 만나는 지극히 사적인 내 가수의 생활을 관찰하고 지켜본다. 문제는 그들의 행동이 단지 지켜보고 관찰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스타들의 사생활 전부를 들여다보며 스타들의 목을 죄고, 심지어는 생명의 위협을 가하기까지, 그들의 만행은 ‘인기 스타’라는 이유로 스타들이 모든 것을 감내하기엔 너무 버겁기만 하다.


과거 팬덤 문화가 등장하기 시작한 그 시점부터 사생팬이라는 이슈는 빠지지 않는 논란거리였다. 사생팬은 1998년 이전까지 인기스타의 유명세를 과시하는 정도의 의미였지만, 1998년 ‘산울림’의 멤버인 김창완이 자신을 11년간 스토킹한 사람의 존재를 공표하고 법적인 처벌을 요구하는 일이 벌어져 사회 전반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다. 그 전까지는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사생팬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던 탓에 사생팬으로 인해 피해를 본 스타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함구하고 있었지만, 김창완을 계기로 그동안 사생팬에 의해 고통받아왔던 많은 스타들의 고백이 전파를 타게 되어 이는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각인시키게 되었다. 이후 사생팬을 스토커로 간주하여 스토커에 대한 법률이 만들어졌고, ‘사생팬’은 대중문화의 암적인 존재로 낙인찍혔다. 이를 통해 사생팬의 만행들이 좀 잠잠해지나 싶었다. 그런데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고화질의  디지털카메라가 보급되어 생계형 파파라치들이 판을 치게 되었고,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되면서 정보에 대한 공유가 비교적 쉬워지기 시작하는데, 이는 사생팬의 활동에 불을 지피는 역할을 하게 된다. 디지털 기술이라는 무기를 장착한 사생팬의 만행은 점점 과열되었고 2000년대 말에 들어서 활성화된 SNS를 통해 그들의 네트워크와 인증문화는 더욱더 입지를 공고히 해나가게 된다. 팬덤의 입장에서 사생팬은 범죄자이지만 종종 팬덤 사이에서는 사생팬이 인증하는 자신들의 가수의 사생활을 하나의 ‘정보’로 받아들여, 일반 팬들이 얻지 못하는 가수에 대한 희귀한 정보를 준다는 이유로 사생팬을 칭송하고 영웅처럼 모시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문제는 사생팬 활동이 결코 ‘정보’가 아닌, 범죄의 총집합체라는 것이다.


이들의 행동력은 날이 갈수록 도를 넘어 안드로메다로 간 지 오래이다.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엽기적인 행동들이 가수에 대한 ‘사랑’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 하에 벌어지고 있다. 수많은 아이돌들이 도를 넘어선 사생팬들의 집착과 혈투하고 있다. 이들은 학업과 생계도 내팽개치고, 오로지 스타들의 사생활을 집요하게 따라다니며 그들에게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위협을 가하고 있다.


(순서대로) 지코 트위터, 정용화 트위터, 지드래곤 트위터 캡처



지난 8월 아이돌 그룹 블락비의 멤버 지코는 SNS에 사생팬들에게 일침을 가했다.


“누누이 얘기했습니다. 개인적인 공간을 침해하는 행위는 절 학대하는 거나 다름 없습니다. 절대 팬 사랑이 아니예요.”


H.O.T 멤버였던 토니안 또한 과거 방송에서 사생팬에 대한 일화를 언급한 적이 있다. 과거 H.O.T숙소에서 팬들이 현관문 렌즈를 깨고 멤버들이 집에서 옷을 벗거나 샤워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며, 하루는 밖에 팬들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현관문 렌즈로 밖을 보는데 투명해야 할 렌즈가 검은색이었고, 그것은 숙소 안을 지켜보던 팬의 눈동자였다는 것.


동방신기의 최강창민과 유노윤호는 과거한 예능프로그램에서 휴대폰으로 장난전화가 너무 많이 와서 번호를 바꿨더니 바꾼지 5분 만에 ‘번호 바꿨네요’라는 문자가 왔고, 다시 한 번 번호를 바꾸자 ‘자주 바꾸는 건 안  좋아요’라고 문자가 왔다며, 어느 날은 숙소에만 있는 물건을 찍은 사진을 문자로 받은 적이 있었다는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MBC 세상보기 시시각각(2012.3.14). MBC 교양프로그램에서는연예인 사생팬 문제를 다루기도 하였다.



이 밖에도 JYJ 멤버 김재중이 숙소에서 자고 있을 때 사생팬들이 다가와 키스를 시도하기도 하고, 멤버 김준수는 사생팬들이 자신의 얼굴을 보기 위해 일부러 사생택시로 접촉사고를 내기도 했고, 차에 도청장치를 붙여 차 안에서 멤버들이 나누는 대화를 몰래 녹음한 사생팬도 있다는 충격적인 일화를 방송에서 털어놓은 적이 있다.

또한, 사생팬 악행에 그 피해가 정점을 찍고 있는 인기 아이돌 엑소 또한 엽기적인 방법으로 다양한 피해를 입은 사례가 인터넷 수면에 떠오르고 있다. 2013년 아이돌 그룹 ‘엑소’의 멤버 백현의 친형의 결혼식에 사생팬들이 난입해 결혼식이 난장판이 된 일화는 SNS를 타고 빠르게 퍼져  기사화되어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뿐만 아니라 엑소의 숙소에 생리혈을 모아 배송한 이야기는 이미 유명한 일화이다. 멤버들의 속옷을 몰래 훔쳐 한 커뮤니티에서 판매한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으며,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고, 혈서까지 쓰는 등그 만행이 상상을 초월하는 경악할 만한 수준에 다다르고 있다.


Youtube NocutView 사생팬과 사생택시의 한 장면


 사생활동이라는 것이 밤낮없이 스타들을 감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생팬에게 가장 큰 걸림돌은 경제적 부담이다. 10대의 사생팬들은 경제적 여건이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에 부모님께 받은 용돈 등을 모아 사생팬을 전문으로 태우는 ‘사생택시’에 쏟아붓는다. 기본적으로 사생택시는 일반택시와 달리, 스타들의 차를 위험하게 뒤쫓는 대신 일반 택시의 2~3배 정도의 요금을 요구한다. 때문에 이러한 비용을 충당하기 버거운 10대들은 부모님에게 끊임없이 돈을 요구하며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작년 9월 엑소의 한 사생팬이 구속되었다. 죄목은 사기와 횡령. 사생활동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고가의 카메라 장비를 대여점에서 빌린 뒤 잠적하고, 인터넷 사이트 ‘중고나라’에서 DSLR을 판매한다는 글을 게시한 뒤 구매자의 입금 확인 후 잠적을 했다. 노트북, DSLR 카메라, 렌즈 등 횡령한 물건값이  1천100만 원에 달했고, 수차례에 걸쳐 470여만 원을 챙긴 21살의 이 사생팬은 “엑소를 따라다니려면 돈이 필요했다”고 진술했으며 결국 구속되었다. 이처럼 사생팬의 활동은 단지 팬덤 문화에서 비롯된 사례를 넘어서 사회적으로 다양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자신의 오빠를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싶어 하는 마음이, 타인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을 뛰어넘어, 스스로의 삶마저 갉아먹게 된 것이다.


사생팬의 심리가 궁금하다


사생팬 활동을 하는 심리에는 우선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관심종자병’이  한몫을 하는 듯하다. 또한, 사생팬들이 인증하는 가수의 은밀한 사생활들은 팬층을 자극시키기에 충분하기에 이러한 행동을 인터넷 상에 올려 팬들에게 과시하려는 심리가 분명 존재한다. 또한 남들이 함부로 할 수 없는 행동을 나는  한다는 보여주기 식의 행위를 통해 청소년들이 주로 활동하는 팬덤 사이에서 자신을 신격화시키고 추앙받고 싶어 하는 영웅심리 등이 뒤섞여 ‘사생팬 활동’이라는 범죄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범죄행위를 그들은 스타에 대한 ‘사랑’을 무기로 합리화하며 죄책감 없이 행하고 있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오빠에게 조금이라도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비뚤어진 사랑은, 애정을 넘어 범죄를 저지르는 행위로 치닫고 있다.


사생팬은 결코 팬의 범주 안에서 생각할 수 없다. 사생팬이라는 단어의 ‘팬’ 조차 거북해하는 팬덤은 사생팬을 ‘사생범’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대중의 사랑을 받는 것이 직업인 연예인에게 팬심에서 비롯된 순수한 사랑은 삶의 의미를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값진 선물이지만, 그 선물이 과해지면, 주는 사람이 아무리 사랑이라고 우겨도 일방적이고 왜곡된 추태일 뿐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by 손혜원

작가의 이전글 팬덤이란 무엇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