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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무리 Dec 30. 2015

원피스, 스타크래프트에도 정치가 있다고?

문화의 정치성: 좋은 감성이 만드는 좋은 정치 chapter. 1

 0. 아파서 청춘인 게 아니라, 정치를 몰라서 아픈 거다


 “아, 나 정치에 관심 없어. 정치 솔직히 나랑 상관없는 거 같고, 알아보려고 해도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 그런 거 몰라도 잘 살 수 있잖아.” 이제는 클리셰가 돼버린 정치에 대한 이 말들은 진부하다 못해 심지어는 잘 읽히지도 않는다. 비단 청년들, 청소년들뿐만이 아니라 기성세대에도 이런 정치적 무관심, 탈정치적 태도는 흔하게 발견된다. 정치적 참여가 높은 세대라고 해서 그들이 제도 정치 전반에 대해 명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참여하고 있다고는 보장할 수 없다. 우리 할아버지는 전라도가 싫기 때문에 새누리당을 찍는다. 이 엄청난 논리 비약을 과연 제대로 된 정치참여라고 부를 수 있을까. 정치란 그런 것이라고, 권력자의 통치이며 내가 싫어하는 세력과 싸우는 것이라고 할아버지는 삶을 통해 배워왔는지 모른다. 물론 할아버지에게도 자세한 정치 이야기는 머리 아픈 이야기다. 그냥 새누리당 알아서 잘 싸워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다들 그렇다. 각 세대들 모두 그 세대만의 이유로 정치를 어려워한다. 그래서 우리 모두 합창하듯 계속 클리셰를 중얼거리는지도 모르겠다. 아, 정치, 그것은 너무나도 멀다. 어렵고, 필요 없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우리는 아프다고 말한다, 모두. 헬조선을 입에 달고 산다. 아파서 청춘이라고 넘기면 되는 일일까? 많은 사람들이 그런 류의 책을 마구 쏟아냈지만, 사실 상식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라면 아프면 병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난 이 글을 보는 여러분들에 그  제안드리고 싶다. “정치를 이해하자.” 아파서 청춘인 게 아니라, 정치를 몰라서 아픈 거다. 그러나 우리가 앞으로 이해할 정치는 기존의 어른들이 권력 잡고 싸우던 그런 치졸한 싸움에 관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정치가 살짝 골치 아플 수는 있어도 절대 멀리 있지 않다. 정치의 장은 그냥 매 순간마다 발생한다. 우리가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정치는 어디에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를 이해하지 않으면, 우린 그냥 계속 아픈 환자일 것이고, 때로는 누군가의 아픔에 대한 방관자 밖에는 될 수 없다. 세상 그 모든 정치 중에 가장 중요한 게 우리 보통 사람들의 삶 정치다. 이 삶 정치에 기반하여 과연 어떻게 해야 좋은 삶을 만들 수 있을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먼저 이렇게 반박하고 싶은 욕구가 들지도 모른다. “잉? 정치가 어디에나 있다니!” 하며 이런 반응이 나올 수도 있겠다. “내 페이트짱은 정치와는 관련이 없어!” 그러나 과연 귀엽고 아기자기한 애니메이션이라고 해서 탈정치적일까? 미안하지만 탈정치적인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큰 거짓말이 정치적 중립이다. 그냥 어떤 입장에 선다는 것 자체가 정치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태는 정반대로 흘러가야 맞다. 정말 페이트짱을 사랑한다면, 그녀의 삶이 전하는 정치적 가치를 이해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내가 소비하는 문화에는 정치성이 없을 것만 같이 느껴지지만, 사실 문화야말로 정치적 사고의 결과물이라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겠다. 문화는 삶의 형식이며, 기반이다. 정치가 제도 정치뿐만 아니라 더 넓은 삶 정치로 이해한다면 문화 어디에나 정치성이 포함돼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래서 정말 우리가 쉽게 접하는 문화에도 실제로 정치성이 내포되어 있는지 간단히 두 가지 사례를 들어 살펴볼까 한다. 이왕이면 쓰는 사람도 좋고, 아는 사람도 많은 작품 두 개를 뽑아봤다. 원피스와 스타크래프트! 이 유명한 작품들의 정치성은 과연 무엇일까? 함께 살펴보자.(* 주의: 이 글에는 작품 스토리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원피스 루피해적단과 다양한 캐릭터들


 1. 원피스: 자유인들의 진실과 자유, 사랑과 우정을 향한 혁명


 원피스는 주인공들과 워낙 대립하는 관계가 많아 그 의미를 일일이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거시적으로 보면 해적(자유인)-혁명군(혁명세력)과 해군본부(세계 정부)-천룡인(귀족)의 대립으로 구도가 잡혀있다고 볼 수 있다. 혁명세력부터 살펴보자면, 원피스 세계관에서는 역사에 기록으로 남지 않은 잃어버린 100년의 시간이 존재한다. 전모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잃어버린 100년 이후에 세계 정부가 등장했으며 천룡인이라는 귀족이 탄생하여 우월한 계급을 형성되었다. 세계 정부는 이 잃어버린 100년이 적혀 있는 르네 포네그리프(진실이 적혀 있는 돌)에 대한 연구를 금지했다. 그러나 이 잃어버린 시대를 연구하던 연구자들이 있다. 진실을 탐구하는 것을 부족의 목표로 삼은 그 마을에서 태어난 것이 주인공 무리 중 한 명인 ‘니코 로빈’이다. 이 연구자들은 금지된 연구를 진행했다는 이유로 세계 정부에 의해 말살되며 로빈만이 유일한 생존자가 되어 정부의 추적을 따돌리며 살아간다. 이러한 비밀-비리 투성이의 정부에 저항하는 혁명군이 있다. 혁명군은 곳곳에서 정부에 저항하면 진실을 고발하려고 노력한다. 이 두 가지 맥락은 인간의 진실과 자유에 대한 열망을 보여준다. 아마 원피스가 결론에 가까워질수록 잃어버린 100년의 역사가 드러나고, 혁명군의 끝이 어떠할지 드러날 것이다. 국가 권력이 역사를 독점하려고 하고, 거짓말들을 일삼는 현실의 정치인들이 생각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해적(자유인)은 굉장히 다양한 성격의 그룹이 있다. 크게 파괴적이고 지배욕이 넘치는 그룹과 서로 우정을 쌓고 사랑하며 연대하는 그룹으로 나뉠 수 있다. 주인공 루피는 후자의 그룹이다. 루피와 그 동료들은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하여, 진정한 사랑과 우정에 대하여 우리에게 깊은 메시지들을 전달한다. 타인을 지배하고 파괴하려는 욕망을 가진 악당들은 루피 해적단과의 싸움으로 교화되거나, 와해된다. 구도는 권선징악이지만, 악당들도 삶의 맥락이 존재하고 작가는 그 맥락을 충분히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다. 왜 이런 노력을 하냐고? 원피스 작가 에이치로 오다가 언젠가 인터뷰에서 말했듯이, 그는 청년들에게 사랑과 우정, 용기를 심어주기 위해 원피스를 그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세상에 이해하지 못할 절대악은 없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어쨌든 루피 해적단이든 악당들이든 모두 자유를 갈망하는 존재들이다. 루피의 명대사가 있다면 단연 이것일 것이다. “나는 영웅이 되고 싶지 않아. 나는 누군가를 지배하려고 해적을 하는 것이 아니야. 그냥 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하고 싶을 뿐이야. 그게 해적이잖아?” 루피는 지배하는 관계를 지양한다. 그는 친구들을 마음껏 사랑하며 본인이 살고 싶은 방향으로 거침없이 나아가는 캐릭터다.


 진실과 자유, 사랑과 우정이라는 테마를 바탕으로 원피스는 독자로 하여금 저항의 의미를 생각해보게끔 만들며,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한다. 우월한 종족(천룡인)이 존재하는가? 그것은 온당한가? 국가와 정부는 항상 옳은가? 반드시 국가의 통제 하에서만 생명체들이 어우러져 살 수 있는가? 이 질문들에 대해, 작가는 사랑과 우정으로 부조리와 싸우고 세상을 변화시키라는 명확한 해답을 던진다.


아르타니스와 델람 지도자들


 2. 스타크래프트: 전체주의와 파시즘을 넘어선 환대와 민주주의의 리더십


 스타크래프트 2 <공허의 유산>, ‘프로토스’ 이야기를 중심으로 그 정치적 지향성에 대해서 썰을 풀어보자. 여러 부족으로 분열된 프로토스는 아르타니스를 중심으로 델람이라는 통합 회의를 구성하여 다시 연합한다. 프로토스의 부족은 대표적으로 칼라이와 네라짐을 뽑을 수 있다. 칼라이는 ‘칼라’라는 정신을 연결하는 거대한 힘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부족이고, 네라짐은 이러한 통합된 힘에 대하여 저항하고 자유의 사회를 구성하기 위하여 칼라를 끊고 떨어져 나온 부족이다. 이 두 부족 모두 생명의 기원인 젤나가를 모신다. 델람은 이렇게 나눠진 부족의 연합이다.


 여기서 ‘칼라’는 파시즘에 대한 이야기다. 파시즘이란 대중적 열망을 기반으로 어떤 중심적이고 통합된 힘으로 정치하고자 하는 성향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파시즘이라고 하면 부정적인 것으로 여겨지지만(실제 역사적으로 파시즘이 질 좋은 정치를 낳은 경우는 별로 없다), 이것을 효율적인 힘이라고 생각하면 거대하고 압도적인 힘을 중심으로 사회를 이끌어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일 수도 있다. 칼라이들은 바로 그 점을 믿고 칼라의 힘을 이용하는 자들이다. 기억을 공유하고, 역사를 계승하며, 한 마음 한 뜻으로 움직이는 공동체. 얼마나 이상적인가! 그러나 통합된 힘이 악한 목적을 가진 자에게 이용당한다면 그것은 그것 자체로 사회에 엄청난 위협이 될 수 있다. 타락한 젤나가 아몬은 바로 이 점을 이용해서 칼라를 지배하고, 칼라이들을 이용하여 군대를 형성한다. 결국 아르타니스를 중심으로 한 델람은 이 칼라의 힘을 자발적으로 끊게 된다. 파시즘은 대중적 열망의 표출이지만, 이것이 전체주의적 권력에게 포섭된다면 정치는 끊임없이 타락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시가 나치다. 네라짐은 이런 타락한 칼라를 경계해왔던 것이다.


 아르타니스는 칼라에 종속되어 있을 때도 부족들을 델람으로 연합시키기 위하여 차이를 환대하고, 끊임없이 대화하며 그의 가치를 설득해왔다. 그리고 본인이 아몬에게 이용당하여 친구 제라툴을 잃은 후에는 스스로 칼라를 끊어버리고 다른 프로토스에게 끊임없이 칼라의 위험을 역설하며 그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함을 주장한다. 이것은 프로토스가 파시즘과 전체주의를 극복하여 환대와 민주주의의 리더십(또는 팔로워십)으로 이행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아르타니스는 부족과 종족(테란, 저그 등) 간의 차이를 인정하고, 종족 간의 우열관계를 타파해야 한다는 탈종족(민족·인종)주의적인 정책을 펼치기도 한다. 그리고 아르타니스와 동지들은 이러한 다원주의적인 사상을 바탕으로 프로토스 사회를 재건한다. <공허의 유산>은 한 정치적 지도자의 단순한 성공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까지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3. 문화에는 세계에 대한 정치적 메시지가 숨겨져 있다


 자, 지금까지 우리에게 친숙한 원피스와 스타크래프트에도 어떤 정치적 지향성이 들어있다는 점을 분석해보았다. 이런 식의 사고가 낯선가? 또는 흥미로운가? 원피스와 스타크래프트는 정말 수많은 예시 중에 하나이다. 어떤 문화에도 자세히 살펴보면 정치적인 지향성이 숨겨져 있다. 문화는 그 사회의 욕망들을 반영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는 삶 어디에서든, 문화 어디에서든 존재한다. 정치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전반에 관한 것이다. 단지 문화를 일회성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숙고하고 성찰한다면 우리의 삶 정치에 나침반이 되어줄 수 있다. 이렇게 정치는 멀리 있지 않고 우리의 바로 옆에 존재하는 문화 속에서 이미 녹아들어가 있다.


별 의미 없이 껴놓은 귀염둥이 루다



                                                                                                                                  by 심기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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