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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무리 Dec 30. 2015

타자화된 여성과 연대

유럽에서 보낸 어느 날의 상념 2

0. 유럽에서의 어느 날



나는 감사하게도 이번 여름의 대부분을 유럽에서 보냈다. 유러피언의 마음을 많이 느끼고 체험하려 노력했지만 끝끝내 어려운 것이 있었다. 유럽연합으로서의 연대감이었다. 


그리스 사태가 발생하고 Claire와 Goslar의 한 바에서 텔레비전을 보게 되었다. 마침 프랑스 수상이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유럽 국가의 국민으로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었더니, 프랑스에서도 태도가 많이 나뉘지만 반대하는 사람은 30% 정도뿐인 것 같다 대답하였다. 클레어도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지원에 동의하였다. 아직 학생이면서도 그들에게서 많은 책임감과 연대감을 느낀다고 말하는 클레어가 신기해 한참을 멍하게 쳐다보았다.  


또한 Fabian과도 지도를 보며 그리스 이야기를 했다. 세금이 40%에 육박하는 독일에 사는 사람임에도 파비엔은 무조건적 동의를 했다. 우리는 연합이고 어려움은 함께 나눠야 해. 쉽게 말해 우리가 친구야, 네가 지금 돈이 한 푼도 없어, 그렇다고 꺼져  새끼야!라고 한다면? 우리 관계는 이대로 끝나는 거야! 하고 상세한 예시도 들어주었다. 


그러나 어떠한 연합도 없는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독립적 개인으로서의 국가가 아니라 연합으로서의 국가관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또 언제 경제를 회복할 수 있는지 혹은 회복할 수나 있는지가 불확실한데 언제까지 지원을 하는 건데? 네 세금의 대부분이 그곳에 쓰이고 있어.


그래도 단호한 독일인은 끝까지 단호했다. 우린 세계대전으로 모든 나라를 망쳤고, 그것에 대한 반성과 책임감을 느껴. 우리가 국가 사이의 관계에서 낮은 자세로 임해야 하는 건 당연한 거야. 그리고 가장 큰 지원을 하고 있는 우리가 지원을 끊는다면 곤경에 처하는 것은 국회의원과 같은 높은 사람이 아니라 일반 대중이야. 그들을 방관할 순 없어.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주변국은 money-friends일 뿐인 국가의 국민도 연대의 기본을 맛보게 되었지만, 여전히 체감이 쉽사리 되지는 않는다.


1. 붉은 버스와 각성


이토록 매정한 나에게도 약한 부분은 있다. 아무래도 국가 간의 연대보다 가깝게 다가오는 여성으로서의 연대이다. 


나는 버스나 지하철에서 핑크 좌석을 볼 때 그 자리는 되도록이면 앉지 않는다. 당연한 권리이지만 혹시나 머쓱할 초기 임산부를 위해서, 그리고 앞으로 태어날 아기를 위해서 나 혼자만 일어서면 되는 걸. 또한 우리끼리의 약속처럼 좌석버스를 탈 때도 되도록이면 여자분 옆을 노린다. 다른 이를 잠정적 범죄자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그 편이 신경 쓸 일이 훨씬 적어 편하기 때문이다. 치마를 매만질 필요도 없고 약간의 쩍벌도 용인된다. 혹 가까이 앉은 여자분이 피곤에 지쳐 치대더라도 어깨를 내어준다. 나도 매우 높은 확률로 그럴 수 있기 때문에 미리 선의를 베풀면 나중에 이런 친절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팍팍한 세상에서 우리끼리라도 조금씩 배려하는 게 좋잖아. 


되돌아보면 나는 여성인권에 관심은 있었지만 의견을 내고 문제를 삼기보단 개인적 차원에서 서로 의지하는 정도였던 것 같다. 



오늘 집에 오는 버스에 치한이 있었다. 한 여자분이 울먹이며 소리를 치셨고, 근처의 다른 여자분이 곧바로 신고를 했다. 우리는 즉각 몸을 꼿꼿이 세우고 긴장 속에 경찰차가 오길 기다렸다. 고속도로 한복판에 멈춰 선 우리는 혹시나 욕설이나 고성이 오갈까 신경을 곤두세웠다. 20분 정도 기다리자 경찰이 도착하여 그 아저씨를 연행하고 피해자와 신고자를 모시고 갔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오히려 경찰이 더 빨리 출동해주셨음 하는 마음이 들었다. 피해여성분이 저런 사람과 함께 있는 시간이 얼마나 괴로울지 감히 상상도 안 되었다. 얼마나  놀라셨을지, 물이라도 한 잔 쥐어주고 싶은 맘이었다. 


경찰이 다녀간 후에야 난 ‘분노한 미어캣’ 모드에서 벗어나 등을 자리에 붙일 수 있었다. 멀미가 심해 평소 버스만 타면 잠에 빠져 드는 내가 집에 오는 내내 뜬 눈으로 시간을 보냈다. 아니, 뜨거운 쇠를 삼킨 듯 속이 울컥해서 강제로 음악을 들어야 했다. 나에게 일어난 일은 아니지만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고, 범행의 대상이 된 이유는 단지 여자이기 때문, 약자이기 때문임을 다시 한 번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나도 배우고 깨닫고 목소리를 내어야겠다. 


2. 지금, 여기: ‘한국’에서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일 


2015년 대한민국의 여성인권의 현실은 여성을 향한 차별과 혐오, 비하가 만연하다. 아직 여성의 평균 월급이 남성보다 훨씬 적으며, 고위직이나 간부직에서 여성을 찾아보기 힘든 ‘유리천장’이 여전히 존재한다. 비정규직의 성별을 따졌을 때도 70%가 여성이라는 점은 바로 여성이 ‘제 2의 성’으로 살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남양과 같은 회사에선 정규직 여성이 결혼을 하면 비정규직으로 전락하고, 그마저도 임신을 하면 해고하곤 했다. 이런 고용 관행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있었다는 점이 충격적이다. 


각종 포털 사이트의 기사의 베스트 댓글에 ‘삼일한 (여자는 3일에 1번씩 때려야 한다.)’와 같은 폭력적인 언행이 올라와 있으며, 이는 여성 혐오를 부추기고 혐오 범죄를 당연시하고 있기에 심각한 문제이다. 그리고 댓글뿐만 아니라 미디어는 기사 자체를 ‘OO녀’,  ‘OO맘’과 같은 방식으로 여성임을 나타내는 단어로 이름 붙여 관심을 촉구하는 방식으로 사용한다. 심지어 사건의 피해자에게 이러한 단어를 붙이기도 한다. ‘벽돌남, 벽돌 사건’이 아닌 ‘캣맘 사건’이 대표적이다. 기자가 먼저 판을 깔아줬으니, 네티즌들은 그에 장단을 맞춰 놀아나는 것은 당연하다. 


여성을 성적 도구 혹은 성폭행의 대상으로 비하하는 게시물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실례로 국내 최대의 남성잡지 ‘맥심’에서는 표지에 여성을 납치해 트렁크에 실은 사진을 ‘매력적인 나쁜 남자’의 모델로서 사용하였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여성들은 부당한 물리적 폭력과 언어와 시선을 통한 정신적 폭력, 사회적 압박 또한 받고 있다. 철저히 ‘타자화’된 여성은 2등 시민, 제 2의 성으로 살아가게 된다. 


3. 타자화된 여성


여성의 타자화는 그 역사가 깊다. 근대 혁명 이후로 여성에 대한 서양철학의 기본 골조는 “여성은 날 때부터 남성에 비해 신체적으로 약할뿐더러 이성적인 사유 능력도 떨어진다‘는 것이다. 심지어 프랑스 법은 개인은 모두 자유롭고 여성도 자유로운 개인으로 인정할 수 있지만 법적인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여성은 남성과의 관계에서 상대적인 위치, 즉 타자로의 위치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었다. 


타자화의 대표적인 전략 중 하나인 숭배하기는 특정 집단 안에 속하는 사람들을 지나치게 숭고하게 생각하고, 숭고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를 구별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숭고함의 기준은 객관성을 상실한 것이며, 때문에 대부분의 타자화된 집단이 비난을 받게 된다. 이러한 프레임 속에서 여성은 성녀 혹은 창녀로 낙인찍혀 불필요한 고통을 받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에게 씌우는 ‘된장녀’ 프레임이 잦아드나 했더니 이제는 ‘김치녀’와 ‘개념녀’로 여성을 분류하기 시작하였다. ‘김치녀’는 크게는 명품을 소비하거나 작게는 유명 커피숍에서 ‘분에 넘치는’ 소비를 하는 여성을 말한다. 다른 것이 아닌 김치가 붙은 이유도 한국 여자는 모두 그렇다는 대전제를 깔고 있기에 가능하다. 이에 반해 ‘개념녀’란 ‘탈김치녀’라고 불리기도 하며 그들의 기준에 통과한 여성으로서 가부장적 사회구조에 반기를 들지 않고, 가사노동과 육아에서도 당연히 더 많은 몫을 해내야 한다.


이러한 기준을 통과하는 한국 여성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당연히 해당되는 여성이 적을  수밖에. 그래서 그들은 ‘갓양녀 (갓+서양 여성)’, ‘사스가 스시녀 (역시 + 일본 여성)’과 같이 가치를 높여 부를 때 쓰는 ‘갓’, ‘사스가’ 등을 붙여 또 다른 숭배의 대상을 찾기도 한다. 물론 타국 여성에 대한 이미지도 그들이 만들어낸 이미지, 허상이다. 


4. 연대의 힘


여성학의 기본서라고 여겨지는 <제 2의 성>을 출판한 보부아르는 남자들 사이에서 분산되어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우리’라고 할 수 있는 연대가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가족제도와 결혼제도에 매인 여성들이 아버지, 남편, 아들, 오빠를 벗어나 다른 여성과 더 가까운 연대의식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 여성의 변화가 늦어지는 이유 중에 하나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면 보부아르의 분석과 제안은 지금도 의미가 있다. 전통 역사의 보편주의적 거대담론 체제 아래 도저히 나올 수 없었던 다양한 목소리들이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한다. 



학내에서 처음으로 ‘여성주의’ 교지가 나왔다. 각 단과대마다 배치되어 있던 교지는 며칠 만에 텅텅 비어서 사라졌다. 여성문제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나뿐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교지를 찬찬히 읽으며 지금의 여성으로서의 위치가 어떻게 존재하고, 어떤 상황에 있는지 알고, 그것을 위해서 내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이 무엇이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다. 나는 여성의 권익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나 정치인에게 작지만 후원을 할 생각이다. 정치적으로 어떠한 의제가 설정하고, 진행되는지 관심을 기울여 나의 이익이 반영될 수 있도록 말이다. 함께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약자의 무기는 연대이다. 특히나 내가 약자일 때, 이유 없이 범죄의 대상이 될 때, 개인이 개별적으로 항의해 이겨내기엔 너무 큰 산이 있을 때. 손잡자, 우리. 


모든 이들이 편안하고 행복한 삶이 되기를. 또 그러한 세상이 오길. 


*참고자료

인권이 던진 질문들: 혐오가 확산되는 한국 사회, 명숙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2015.12.17.

[김선우의 빨강] 벗, 힘내요!, 김선우, 2014.09.30

서양의 고전을 읽는다, 제2의 성 –여성이라는 타자-, 시몬 드 보부아르. 

동국대학교 여성주의 교지 오프너 [OPEN HER].

이미지 자료 : Rain room.

http://www.sharonsalzberg.com/realhappinessblogidp28-day-meditation-challenge-day-19-rain/


                                                                                                                                       by 혜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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