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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무리 Dec 30. 2015

식물을 기른다는 것은

유럽에서 보낸 어느 날의 상념 1

나의 지붕이 누군가의 집이 된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간 스톡홀름의 <Moderna Museet>에 적혀있던 말이다. 나의 지붕이 누군가의 집이 된다니? 현대인만 느낄 수 있는 고통이라는 층간 소음을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남들보다 높은 곳에 사는 옥탑 방을 말하는 것인가? 나는 입장로에 서서 잠시 동안 고민했었다. 


스톡홀름의 농업 전시


알고 보니 이 전시는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도심 생태계를 꿈꾸며 기획된 도심농업전시였다. 들어가자마자 도심 속 지붕에 벌집을 들여 양봉을 하는 과정을 담은 동영상이 나왔다. 사실 꿀을 얻는 결과가 아니라 도시에서도 농업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 전시였다. 이렇게 얻은 꿀을 판매하여 도심에 숲을 조성하고, 이렇게 조성된 숲에서 벌들이 꿀을 모아 오면 다시 채밀해서 판매하는 선순환을 만들 수 있다. 


인간과 자연이 함께 하는 것, 그 밸런스가 맞는 것만큼 정서에  도움되는 일이 없는 것 같다. 시민들 모두가 원한다면 자연에 기여하는 일에 참여할 수 있고, 더구나 자신의 집에서부터 형성된 자연은 더욱이 의미가 깊다. 


베를린 정원 겸 농장

누구나 식물을 재배할 수 있도록


이번 여름 베를린에서 어쩌다 보니 10일 정도를 머물렀다. 머물던 숙소 근처에 공원이 있었는데, 공원 한편에는 작은 정원 겸 농장도 있었다. 요즘 베를린은 소규모 농장을 육성하는 중이라는데, 누구든 식물을 재배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 포인트였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자신의 공간을 배정받아, 전문 농사꾼이 아니라도 식물을 재배해본다. 


전문 농사꾼이 아닌 일반인에게 처음 움을 틔워, 햇볕과 수분을 먹고 자라 꽃을 틔우고 열매를 맺는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만족감과 성취감을 선물할 것이다. 여기에서 특별히 성취감이란 단어를 쓴 이유는  있다. 어디선가 애정은 귀찮음을 수반하는 일도 귀찮지 않은 마냥 하는 것이란 소릴 들었다. 사실 식물을 기르는 것만큼 귀찮은 일도 없다. 어릴 적 부모님과 주말농장을 일구며 몸으로 배운 경험적 지식이었다. 한 주만 건너뛰어도 다음 주엔 잡초가 무성히 피어나 있었고, 햇볕이나 수분에도 민감해 걸핏하면 뿌리가 썩거나 또 말라 잎이 노오란 빛을 띠곤 했다. 기껏 길러봐야  사 먹는 것의 절반 크기 정도의 작은 호박  정도밖에 수확을 못했다. 들인 노력에 비해 수확물의 크기는 가성비로 보았을 땐 빵점이다. 그럼에도 부모님이 어린 우리를 어르고 달래가며 열매를 맺게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부모님은 우리가 애정을 바탕으로 한 책임감을 배우길 바라셨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전부 노력으로 얻은 성취감인 것이다. 


반려식물과 살아가기 


베를린 풍경


베를린에선 현지인의 집에서 신세를 지면서 문화 교류를 하는 카우치서핑을 했다. 카우치서핑을 하면서 알게 된 Fabian과 Jonas는 식물에 일가견이 있었다. 파비엔은 하와이의 한 농장에서 farmer로 일한 적이 있었고, 요나스는 새로 키우는 토피어리 사진을 보여주기도 하고 함께 분재에 대한 생각을 나누기도 했다. 그 쉽다는 허브와 선인장도 죽인 경험이 있는 나는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독특한 점은 둘 다 단순히 식물을 사서 물을 주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적합한 식물을 고민해 들여오고, 관련 책도 읽어가며 공부하고 끊임없이 닦고 케어하며 돌본다는 점이었다. 이 과정이 마치 반려동물을 들이는 과정과 비슷하다고 여겨졌다.


식물을 기른다는 것 또한 한 생물을 책임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자기 의사표현이 가능한 동물과 달리 식물은 기껏해야 잎의 색상과 푸석거림 정도로 자신의 건강과 행복을 표현한다. 내가 허브와 선인장을 잃은 것처럼, 반려인과 커뮤니케이션이 안 될 경우 몇 번의 신호를 주다간 픽 생명력을 다 한다.  


그렇다 보니 식물을 기르는 것은 보다 많은, 보다 섬세한 책임감을 보여야 한다. 실제로 호스트인 파비엔의 집에는 9년 된 식물이 있었는데, 이사를 여러 번 다니면서도 계속 함께 하다 보니 반려동물과 같은, 반려식물이 되었다고 한다. 특히나 부모로부터 사회로 독립을 하면서 들인 식물이라 자신에게 의미가 깊어 보였다. 이것이 파비엔이 가진 애정을 바탕으로 한 책임감이겠지. 


이 날을 포함해 파비엔의 집에서 머물 때 식물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이 때문인지 화분을 가꾸고 꽃을 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마음에 드는 화분을 가꿔봐야지.  


답정너의 고뇌


한국에 가면 식물을  키워야지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나에게 적합한 식물을 찾기가 어려웠다. 일단 내 방에는 볕이 들지 않고, 창문도 없다. 식물을 기르기에 최악의 조건이다. 또 나의 지난 경험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물을 자주 주거나 많이 가꿔야 하는 식물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할 것 같다. 식물을 기르는 지인인 박 농부, 조 농부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했지만 글쎄, 답변이 마음에 쏙 들지는 않더라. 그래, 나는 답정너였다.


또 한 편으론 내가 식물을 기를 준비가 되긴 하였나 하고 고민하게 되었다. 사실 식물을 기르기도 전에 들여오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양재 꽃시장을 가봐야지! 했던 결심은 몇 주 내내 지켜지지 않았다. 나의 귀찮음이 새로움에 대한 애정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근처 꽃집들을 살펴보긴 했는데, 한 번 들이면 오래도록 기르고 싶은 마음인데 그럴 만한 ‘내’ 화분은 보이지 않았다. 결국 화분을 들이지 못 했다.


실수는 해도 포기는 하지 말자


오빠 식물



이렇게 근 몇 주를 그냥 보냈는데, 반신욕을 하면서 슬쩍 옆을 봤더니 오빠가 (용케) 취업을 하면서 받아온 식물이 보였다. 회사에 입사할 때 신입사원들에게 자신의 좌우명을 가져오라고 했다더라. 오빠는 '실수는 해도 포기는 하지 말자'.를 가져갔다. 그렇게 오빠의 좌우명이 오빠의 식물에 새겨졌다. 자라나는 식물처럼 발전하는 신입사원이 되길 바랐다.


딱히 관리를 열심히 해주는 것도 아니고 그저 물만 주었을 뿐인데 초록 잎이 반짝이는 모습을 보니 신기하기도, 대견하기도 하다.  좋은 말을  먹고살아서이지 이 화분은 새내기 신입사원이던 오빠가 3년 차 직장인이 될 때까지 잘 버텨내고 있다. 오빠와 우스갯소리로 자라나는 것이 아니라 버터내고 있는 모습이 비슷하다 말했다. 어쩌면 이 식물이 오빠의 회사 생활과 운명을 비슷하게 할 것도 같다. 묘한 마음에 반신욕을 끝낼 때까지 그 식물을 빤히 쳐다보곤 했다.


반신욕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요즘 반신욕을  종종 하고 있다. 원래부터 좋아하긴 했지만 여행을 다녀온 뒤로 더 자주 하게 되었다. 43일간의 여행 동안 호스텔과 산장, 친구 집 자취방을 전전했던 나에게 욕조란 꿈의 공간 같았다. 터벅터벅 쪼리를 신고 다니다 보니 발끝이 무뎌지곤 했는데, 발을 담가 불릴 공간도 없다는 것은 퍽 퍽퍽한 일이었다. 따스운 물에 몸을 절반을 잠기어 따뜻한 기운을 쪼옥 빨아들이고 나면 몸도 마음도 편안했다. 운동 하나 하지 않고 온 몸에 땀이 나는 것도 손 안 대고 코 푸는 것 같아 좋기도 하고. 


반신욕을 하면서 하는 일은 다양하다. 가장 평범하게는 웹툰을 보거나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는 것부터 노래를 들으면서 흥얼거리거나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아, 요 전엔 시를 읽어보았는데 그것도 좋았다. 오늘은 노래를 들으면서 눈을 감았다  떴다 하면서 '그' 식물을 보곤 했다.


그리고 번뜩 내가 이렇게 망설이는 것은 내가 아직 내 화분을 기를 준비가 안 되었기 때문이라 깨달았다. 아직 여행의 여독에서 빠져나가지 못한 상태였고, 최근에 오래 만나던 연인과 헤어져 마음도 불안정했다. 식물을 기를 환경도 준비되지 않았고. 나의 생활패턴이나 습관도 '책임감 있는 반려식물 라이프'와는 어느 하나 가까운 것이 없었다. 


내가 충분한 준비가 되고, 맘에 쏘옥 드는 식물을 찾을 때까진 반신욕을 하면서 이 식물을 보곤 해야겠다. 그때쯤이면 내 맘도 편안히 잠잠해지겠지. 식물을 들여와 기른다는 것은 그때가 적기일 것 같다.


                                                                                                                                 by 혜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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