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대로 그림 감상하기 (1)
다양한 그림 전시회가 열리는 요즘, 우리는 어떤 식으로 그림을 바라봐야 할까? 이에 대한 고민의 결과로 이런 글을 작성하게 되었다. 내 마음대로 그림 감상하기! 일반적으로 그림은 다른 분야의 문화들과 달리 작가의 결과물을 감상한다. 물론 최근에 들어서는 그림과 퍼포먼스를 조화시킨 드로잉 퍼포먼스나 페인팅 퍼포먼스 등이 나오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림이란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대의 드로잉 퍼포먼스나 페인팅 퍼포먼스 등은 한쪽으로 제쳐두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그림에 대해서 다루어 보자 한다. 우선 가장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모나리자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루브르 박물관으로 옮겨지기 전까지 나폴레옹이 침실에 걸어두었다고도 하고, 심지어 우리나라에서는 가수 조용필이 노래의 소재로까지 사용한 모나리자! 모나리자는 왜 이렇게 인기가 많은 것일까? 우선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저 여성이 누구인지, 미술사적으로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모나리자의 ‘모나’는 이탈리아어로 부인, 영어로 하면 Mrs.를 가리킨다. 그녀는 피렌체의 부유한 상인인 조콘다의 부인일 뿐,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은 아니라고 한다. 비록 중요한 인물은 아니지만 현대까지도 누구나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이 그림은 전성기 르네상스 회화의 가장 중요한 초상화라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모나리자의 머리 뒤를 소실점으로 잡고, 모든 선들이 이 소실점을 중심으로 뻗어있는 원근법을 사용했고, 중세시대에는 볼 수 없었던 삼각 구도가 안정적으로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또한 일반적인 초상화와 달리 배경에 풍경화를 넣어 새로운 시도를 하였으며, 공기 원근법(채도를 통해 원근감을 느끼게 하는 기법)을 통해 배경을 그려 모델과 배경이 거리감을 가질 수 있도록 표현했다.
그리고 모나리자의 명성에 대한 다른 의견으로 눈썹이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또한 다음 문단에 나올 신비로운 미소는, 바로 눈썹이 없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에 대해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실수로 그리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고, 그 당시에는 눈썹이 없는 것이 미의 기준이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와 반대로 최초의 멀티 스펙트럼 카메라의 창시자인 파스칼 코테는 모나리자를 적외선 촬영한 결과 모나리자의 눈썹은 원래 있었고, 후에 관리 소홀로 인해 없어졌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다루고자 하는 부분은 모나리자의 미소이다. 자연스러운 웃음을 원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악사와 광대 등을 불러들여 모나리자를 즐겁게 하였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이런 노력의 결과 탄생한 것이 모나리자의 신비한 미소이다. E.H. 곰브리치는 이를 “애매하고 다면적인 웃음”이라고 평가했으며, 조르조 바사리는 “이 여인의 미소는 지상의 여인이 아니라 하늘의 여인이 지어낸 미소 같군요. 붓으로 그려낸 그림이 아니라 피와 살로 빚어낸 창조물로 보입니다.”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유럽 여행 때 루브르 박물관에 가게 되었는데, 루브르 박물관에 가기 전부터 여러 여행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모두 ‘루브르 박물관이 열리자마자 모나리자를 가서 봐야지, 조금이라도 늦게 들어가면 모나리자가 아닌 사람들에 둘러싸인 모나리자를 볼 수 있다’고 말했었다. 그리고 이러한 조언을 받아들여 박물관이 열리는 시간에 맞춰 들어갔는데, 넓은 루브르 박물관에 들어가자마자 우선 악명이 높은 모나리자부터 찾았다. 다행히 사람들이 많이 없어서 수월하게 볼 수 있었던 모나리자! 그렇지만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는 생각보다 훨씬 작았고, 멀었으며 또한 엄숙한 경계 속에서 감상할 수 있었다. 모나리자에만 두 명의 경비원이 지키고 있었는데, 이는 거의 두, 세 전시실에 한 경비원이 있는 상황에 비하자면 정말 호화스러운 조건이었다. 우선 멀어서 자세히 볼 수도 없고, 모나리자의 신비스러운 미소가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들을 보는 미소 같아서 화가 나기도 했다. 과거에 모나리자에게 돌을 던진 사람이 있던데 그 사람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됐다. 후에 루브르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그래도 모나리자에게 명성을 회복할 기회를 주고자 다시 한 번 찾아갔지만 모나리자는커녕 사람들의 머리들이 모나리자를 에워싸고 있었다. 힘들게 측면까지 들어가 모나리자와 다시 대화를 해보고자 시도했지만 모나리자는 원숭이를 보는 미소와 함께 본인을 바라보았고, 그것이 우리의 마지막 추억이다.
분명히 미술사적으로는 큰 의의가 있는데 왜 많은 사람들은 느끼지 못하는 걸까? 파리 여행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모나리자에 대해서 얘기해보니 공통적으로 ‘왜 그렇게 모나리자가 유명한지 모르겠다.’, ‘사람들이 왜 모나리자를 보고 싶어서 그렇게 모여 있는지 이해를 못하겠다.’ 등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다. 필자도 ‘음 분위기가 신비롭긴 한데 왜 그렇게 유명한지는 이해를 못하겠다.’는 입장이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모나리자를 보기 위해 모나리자를 둘러싼 사람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제부터 모나리자를 본인의 마음대로 하나하나 뜯어보기로 하자!
우선 눈썹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그림을 정말 현실처럼 세밀하게 그렸다는 명성을 지닌 인물이다. 그런데 왜 모나리자에게는 눈썹이 없을까? 해부학에도 관심이 많았던 그가 눈썹을 빼먹고 그린다니! 그건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당시에 눈썹이 없는 것이 미의 기준이었다는 주장에 설득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다른 작품들의 여성들을 살펴보면 모두 옅지만 눈썹들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마리아 그림뿐만 아니라 다른 여성을 그린 그림에서도 눈썹이 발견된다. 따라서 당시에 눈썹이 없는 것이 유행이었다면 다른 그림에서도 발견되어야 할 텐데 그의 다른 작품에서 발견되지 않으므로 이와 같은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마지막으로 모나리자의 눈썹을 원래 있었다는 파스칼 코테의 의견이 가장 그럴 듯하다고 생각된다. 현실을 똑같이 묘사하는 데에 재주가 있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모나리자의 눈썹을 그리는 것을 잊었을 리가 없고, 방금 살펴보았듯이 눈썹이 없는 것이 미의 기준이었다는 점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다른 작품들을 통해 사실일 가능성이 매우 낮아졌다. 그리고 현대에 가장 객관적이면서 타당하다고 여겨지는 과학을 통해 살펴본 결과, 모나리자의 눈썹은 원래는 있었지만 후에 어떤 이유에서인지 사라졌다고 보는 편이 가장 그럴 듯한 결론일 것이다.
미술사적인 관점에서 모나리자는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중세 기독교 미술의 신을 위한 엄숙하고 딱딱한 분위기에서, 르네상스 시대의 사람을 위한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분위기로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본인이 생각하기엔 이러한 점에서 모나리자가 그렇게 높은 명성을 가진 이유라고 생각한다. 중세시대의 그림들의 특징 중 우선 소재를 살펴보자. 중세시대의 소재는 성서의 내용이었다. 신을 위한 시대라고 여겨지는 만큼 그림의 주제들도 신과 관련된, 특히 기독교와 관련되어야 했었다. 그리고 당시 중세시대는 생활이 힘들었던 만큼, 예술을 즐길만한 여유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따라서 여유분의 재산을 가지고 있던 기독교에서 당시의 문화를 주도했다. 신과 관련된 성서와 관련되었기 때문에 중세의 그림은 딱딱하며 엄숙하다. 특히 얼굴을 보면 이러한 점이 잘 나타나 있는데, 여러 내용 중 수태고지(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예수를 잉태했다고 알려주는 장면)를 그린 그림들만을 살펴보아도 잉태한 사실을 안 마리아가 깜짝 놀라는 장면인데도 오히려 표정은 온화하기만 하다. 성서에 나온 이러한 인물들은 성스러운 인물임으로 일반적인 사람들과 달라야 한다는 이유 때문에 중세시대의 그림들의 성스러운 인물들은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르네상스가 되면서 중세 기독교의 권위는 떨어지고 인간의 지위가 올라가게 된다. 신이 아닌 인간에 집중한 결과, 감정이 얼굴에 드러나 다양한 표정을 가지고 있는 인간들을 그리기 시작한다.
사람이 가진 얼굴의 표정에 변화에 관심을 가지고 그린 그림, 그것이 바로 모나리자가 아닐까?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이미 여러 표정을 가지고 있는 인물을 그림에서 보아왔다. 그러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살던 시대는 이제 막 신에게서 인간에게로 관점이 옮겨지고 있었고, 그림도 이 또한 마찬가지였다. 현재의 우리가 보기엔 모나리자의 미소는 매우 어색하게 느껴진다. 마치 웃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표정도 아닌 표정. 이것이 바로 중세 기독교 시대의 그림에서 인간 중심의 르네상스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표정인 것이다!
모나리자를 아무런 맥락 없이 보게 된다면 우리는 모나리자의 기분 나쁜 웃음만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전 시대인 중세시대와 르네상스 시대를 알고 보게 된다면 우리는 그녀의 신비한 미소에 쉽게 매료될 수 있을 것이다! 모나리자의 미소에 빠지기 위하여 간단히 미술사를 파악하고 그림을 관람하는 것이 그녀에게 비웃음 사지 않을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참고문헌>
Carol Strickland(2010), 『클릭 서양미술사-동국벽화에서 개념미술까지』, 김호경 옮김, 예경 출판사
<참고 동영상>
배움 너머(2012), “[초5 과학] 모나리자의 근육 http://tvcast.naver.com/v/290615”, EBS 동영상
by 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