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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무리 Dec 19. 2015

영화 ‘웩더독(Wag the Dog)’

소쉬르의 기호학으로 바라본

소쉬르의 언어 기호학에 따르면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랑그(langue)’와 ‘파롤(parole)’로 구분된다. 랑그는 한 언어가 갖는 추상적인 체계이며 구성원 모두가 공유하는 사회적 약호이다. 이에 비해 파롤은 개인적인 발화행위이며 체계의 구체적 실현이다. 랑그는 체계이기 때문에 유한하지만 파롤은 개인마다 다르게 사용, 해석되기 때문에 무한하다. 언어에 사용되는 기호는 기표(Signifiant 시니피앙)와 기의(Signifié 시니피에)로 이루어져 있다. 기호의 형식적 측면을 구성하는 물질적인 부분을 기표라 하고, 이것의 개념적 부분을 기의라 한다. 장미라는 단어를 예로 들면, 이 단어에는 특수한 한국어 음소들과 문법적 구조가 표현을 구성하고 있으며, 이 단어의 어휘적, 역사적, 문화적 의미들이 그 내용을 구성한다. 장미라는 낱말 자체의 철자나 소리는 물질적 표현이므로 기표에 해당되며, 이것이 연상시켜주는 가시가 있는 빨간 꽃, 열정, 아름다운 사람 등 사회, 역사, 문화적 개념은 기의에 해당한다. 기표와 기의의 결합은 자의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장미가 장미인 이유는 그 단어가 지칭하는 구체적인 대상과의 직접적인 연관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한 언어의 의미 코드에 따라 결정된 사회적 약속인 것이다.


바르트, Wag the dog, 신화


바르트는 이러한 기호학을 기반으로 현대사회를 읽는 틀을 제공했다. 바르트에 의하면 신화는 형식에 관한 과학인 기호학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이데올로기도 참여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신화를 분석할 때 그 안에 형성되어 있는 기호, 즉 기표, 기의를 통해 형식 안의 이념을 들추어내었다. 기호는 기표와 기의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일차적 의미의 기호라 할 수 있다. 이 기호는 이차적 의미 작용에 의해 하나의 신화로 기능하게 된다. 이에 대한 설명을 위해 뉴욕 월 스트리트 황소동상을 예로 들 수 있다. 세계 금융 중심지인 월 스트리트에는 그곳을 상징하는 황소동상이 있다. 그 동상의 고환을 만지면 돈이 들어오고, 뿔을 만지면 행운이 깃든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많은 동물 중에서 황소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장기간에 걸친 주가 상승을 일컫는 말이 ‘Bull Market’이기 때문이다. 황소가 싸울 때 뿔을 위로 치받듯이, 주가가 상승할 때 그래프가 위로 치솟는 모양이 이와 유사해 붙여진 이름이다. 여기서 황소는 뿔을 가진 동물이라는 1차적 의미를 가진 기호이다. 여기에 긍정적인 상승 의미가 더해져 월 스트리트의 황소는 행운을  가져다주는 하나의 신화적 존재가 된 셈이다. 



영화 ‘Wag the dog’는 시작 부분에 질문을 던진다. “Why does a don wag its tail?” (개는 왜 꼬리를 흔드는 것일까?) 그리고 이에 대한 답변이 나온다. “Because a dog is smarter than its tail. If the tail were smarter, the tail would wag the dog.” (그것은 개가 꼬리보다 똑똑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꼬리가 개를 흔들어댔을 것이다.) ‘Wag the dog’는 ‘꼬리가 개를 흔든다’는 뜻으로 전체의 한 부분이 전체를 흔드는 ‘주객전도’의 상황을 의미한다. 원래대로라면 영화 앞에서 언급했듯이 개가 꼬리를 흔드는 것이 맞다. 꼬리보다 개가 더 똑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꼬리가 개를 흔드는 현상이 발생한다. 대통령의 재선을 위해 일을 하는 브린 일당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거짓을 꾸며내고, 국민은 미디어(TV)에 보이는 것만을 그대로 믿고 따른다. 이러한 상황을 통해 제목에서 말하는 ‘꼬리’는 정부, ‘개’는 국민을 나타내는 것을 알 수 있다. 원래대로라면 개(국민)가 꼬리(브린 일당)를 흔들어야 하지만, 영화 시작에 나왔던 것처럼 이 상황에서는 꼬리가 개보다 더 똑똑하기 때문에 꼬리가 개를 흔들어대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기호로 표현한 것이 바로 제목이라 할 수 있겠다.


제목부터가 기호적인 이 영화의 내용에는 더 많은 기호학적 요소가 담겨있다. 먼저 거짓 전쟁 대상국인 ‘알바니아’가 그것이다. 바르트는 우리가 ‘문화’라고 부르는 것에는 ‘부르주아적 규범’이 들어가 우리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으며, 우리가 믿는 신화는 신화가 아닐 수 있다고 말했다. 영화는 이런 바르트의 우려가 그대로 실현되어 나타나고 있다. 브린은 알바니아라는 나라에 대해 아무런 정보가 없어 미국민들이 잘 알지 못하는 점을 이용하여 알바니아에 ‘테러국가’라는 거짓된 기의를 심는다. 아무도 진실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왠지 테러를 일으킬 것만 같은’ 느낌이 들게 만들어 테러국으로부터 자유를 수호하자고 외친다. 당시 미국인들이 전통적으로 매우 중요시하게 여기던 가치가 바로 자유였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미국이라는 대륙은 영국에서 정치, 종교적으로  핍박받던 청교도인들이 자유를  찾아온 곳이다. 자유는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었고, 이것을 지키기 위해 그들은 굉장히 노력했다. 이후 수많은 이민자들을 미국으로 끌어들여 American Dream을 형성한 것도 바로 ‘자유’였다. 이를 통해 보면 ‘자유’는 미국을 상징하는 하나의 신화가 된 셈이다. 이렇게 신화를 이용한 정부의 거짓말은 국민들이 쉽게 거짓을 믿게 만들었다. 그러다  또다시 불거진 성추행 논란을 덮기 위해 정부는 ‘전쟁 영웅 슈만의 낡은 구두’ 신화를 만드는데, 이것도 전의 전략과 마찬가지다. 정부는 국민의 정서를 이용하여 ‘낡은 구두’에 ‘전쟁 영웅 슈만’이라는 기의를 더했고, 낡은 구두를 보면 그 자체가 가지고 있던 의미가 아닌 그를 떠올리게끔 했다. 이렇게 거짓투성이인 ‘슈만의 낡은 구두 신화’가 만들어졌다. 



다시 영화의 감상으로 돌아와 얘기해보자면, 사실 영화 제목에 담긴 뜻을 알기 전까지는 앞 부분에 나오는 문장과 전체적인 내용의 연관성을 느끼지 못했다. 영화를 다 보고 제목을 검색해보고 난 뒤에서야 영화를 통해 비판하고자 했던 것이 소수로 구성된 정부에 의해 이리저리로 휘둘리는 국민들로 구성된 우리 사회의 구조였음을 알 수 있었다. 그냥 사회의 이면을 재미있게 풍자한 블랙코미디 영화로 볼 수 있지만, 꽤 오래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사회의 모습과  오버랩되는 듯한 느낌이 들어 불편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국민들은 미디어를 쥐락펴락 하는 정부에 의해 그들이 만들어낸 미끼에 홀려 원하던 진실을 보지 못했다. 정치적 사건이 터졌다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파격적인 연예기사가 터진다거나, 바깥에 사람들의 아우성이 가득하지만,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진실을 전해야 하는 뉴스는 정작 감감무소식이었던 일들이 생각났다. 그런 우연적인 사건의 연속에 대한 진실이 밝혀지지 않아서 그런지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한 웃음이 났던 것 같다.


                                                                                                                                       by 영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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