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무리 Dec 19. 2015

영화 ‘파이트 클럽(Fight Club)’

그리고 장 보드리야르의 소비의 사회

가내수공업으로 소품종 소량생산이 이루어지던 시절을 지나, 우리 사회는 산업혁명을 거치며 대량생산 체제로 거듭났다. 하지만 인간의 니즈(needs), 즉 욕구는 다양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은 어렵다. 기업은 그들이 만들어낸 제품을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팔기 위해 소비자가 사실은 불필요했던 것을 필요하다고 느끼게끔 만들기 시작했다.  이때 사용된 수단이 바로 광고이다. 광고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제품의 매력에 빠져들게 하고, 생각지도 못한 소비욕구를 만들어 낸다. 광고를 보면서 사람들은 마치 자기 스스로 욕구를 느끼고, 그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제품을 구매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그 욕구는 미디어에 의해 주입된 인위적 소비욕구이다.


보드리야르 '기호 가치'


영화 ‘파이트 클럽’에 대해 말하기 이전에 프랑스 사회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Jean Buadrillard)가 쓴 책 ‘소비의 사회’의 내용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기호와 차이의 논리라고 할 수 있는 소비의 논리를, 그 논리에 얽혀 있는 여러 가지 다른 논리로부터 구별해낼 필요가 있다. 네 가지 논리가 논쟁의 대상이 될 것이다. ①사용가치(use value)라는 기능적 논리, ②교환가치(exchange value), ③상징적 교환(symbolic exchange)의 논리, ④가치(value)/기호(sign)의 논리. 첫 번째는 실제적인 작용의 논리이다. 두 번째는 등가(equivalence)의 논리이다. 세 번째는 양가성(ambivalence)의 논리이다. 네 번째는 차이의 논리이다. 또한 유용성의 논리, 거래의 논리, 증여의 논리, 신분의 논리. 이 가운데 어느 하나에 입각하여 정돈됨에 따라 각각 ‘도구’, ‘상품’,  ‘상징’,  ‘기호’의 지위를 취하게 된다. 그런데 마지막 것만이 소비라는 특수한 영역을 규정짓는다.” (장 보드리야르의 [기호의 정치경제학 비판]. 1973)

보드리야르는 하나의 사물이 가지는 가치를 4가지 종류로 나누었다. 다이아몬드를 예로 들어 설명하면 이 논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보드리야르의 논리에 의하면 다이아몬드는 ‘도구’, ‘상품’, ‘상징’ 또는‘기호’ 일 수도 있다. 다이아몬드는 그것이 가지는 견고함 때문에 어떤 물체를 자르거나 부술 때 사용할 수 있다. 이때 도구로 사용된 다이아몬드는‘사용가치’를 갖는다. 만약 다이아몬드를 1억 원의 가치를 가지는 상품으로 본다면 다이아몬드는 ‘교환가치’를 가지게 되어 컴퓨터 100대와 교환이 가능해진다. 또는 다이아몬드를  결혼반지로  만드는 데 사용한다면, 이때의 다이아몬드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상징’적 가치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상류계층에 속하므로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다이아몬드를 사용한다면, 다이아몬드가 그것의 소비 대상을 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기호’로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보통 경제학에서 말하는 소비는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필요한 상품 또는 용역을 이용하거나 소모하는 행위, 즉 사용가치를 소비하는 행위이다. 하지만 보드리야르는 현대인들이 소비하는 것은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 ‘사회의 계급질서와 상징적 체계’라고 말하며 바로 이 ‘기호’ 측면에서의 소비를 집중적으로 분석하였다. 상품이 ‘기호’라면 상품이 갖는 ‘의미’는 행복, 안락함, 풍부함, 성공, 위세, 권위, 현대성 등 그 상품에 부여된 이미지이다. 그는 인간이 욕구를 특정한 사물에 대한 욕구로 해석하지 않고 차이에 대한 요구로 해석하였다. 인간은 기호를 포섭하는 활동을 통해 사회적 차이화를 시도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상품을 구입하고 사용하면서 자신을 돋보이게 하고 동시에 사회적 지위와 위세를 나타낸다. 소비에 있어서 인간이 주체성을 상실하고 상품에 둘러싸여버린 사회가 바로 보드리야르가 말하는 소비사회이다. 


소비의, 소비의, 소비의 사회


지금부터 영화 ‘파이트 클럽’에서 나타난 소비의 사회에 대해 논해보려 한다. (영화에 대한 내용 서술이 스포일러일 수 있음.) 


파이트 클럽의 주인공도 기업의 광고전략에 걸려들어 제품이 갖는 기호를 쫓는 하나의 ‘기호’ 소비자이다. 자동차 회사 리콜 담당 직원인 주인공은 무기력한 나날을 보낸다. 그런 그가 갖고 있는 유일한 취미는 바로 ‘이케아(IKEA)’ 카탈로그를 보며 가구를 사 모으는 것이다. 반드시 필요한 제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의 소비는 멈추지 않는다. 이러한 그의 행위는 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 그는 욕구불만에 시달리듯 불면증을 앓고 있다. 그의 불면증은 여러 모임에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잠시 해소된다. 그 모임들은 무언가 부족한 사람들이 모인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그 모임 속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삶에 만족감을 느끼는 듯했으나, 이내 자신과 같이 사람들을 속이며 모임에 참가하는 말라를 보며 죄책감을 느끼게 되고, 출장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타일러 더든을 만나게 된다. 타일러 더든은 주인공과는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인물이다. 그는 이성에 억압된 주인공과는 달리 감정적이며, 본능에 충실하다. N극과 S극 같은 그 둘이 함께하게 된 계기가 발생하게 되는데, 바로 주인공의 집이 폭파되면서이다. 


수동적인 욕망과 욕구불만의 삶이 가득했던 그의 집이 폭파된 이후, 주인공은 타일러와 함께 본능에 충실할 수 있는 곳, 바로 파이트 클럽을 만든다. 파이트 클럽을 통해 주인공뿐만 아니라 그처럼 같이 사회 속에서 억압된 욕구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싸운다. 비록 그들의 몸에는 상처가 가득하게 되지만, 싸움을 통해 본능적 욕구가 드러나면서 정신적인 해방감을 얻게 된다. 주입된 욕망들 속에 숨겨진 파괴라는 본능적 욕구를 찾은 주인공은 또 한번 혼란을 겪게 된다. 타일러가 사람들을 모아 집단을 만들고, 그들을 혁명 집단으로 이끌어 사회를 교란시킨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던 주인공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타일러를 저지하려 한다. 그 모습이 CCTV에 찍히게 되는데 그 속에 타일러의 모습은 온데간데 보이지 않는다. 사실 타일러란 존재는 주인공이 만들어낸 그의 본능적 욕구의 허상이었던 것이다. 결국 주인공은 자신에게 총을 겨누어 자신의 파괴적 자아인 타일러를 없앤다. 건물이 폭파하는 것을 말라와 함께 바라보는 주인공의 마지막 모습으로 영화는 끝난다. 


영화를 다시 한 번 떠올려보면 주인공의 이름은 단 한 번도 제대로 언급되지 않는다. 여기저기 모임을 다니면서 주인공이 만들어낸 가명만이 등장한다. 영화는 이러한 장치를 통해 시청자로 하여금 소비의 본질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도록 한 것이다. 광고홍보를 공부하는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지금까지 광고/홍보 전략을 세우던 일이 소비자의 무의식 속 욕구를 만들어내는 일이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며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뚜벅뚜벅 걷겠지만 부단히 생각하며 걷고자 한다.

*참고문헌: 장 보드리야르 [기호의 정치경제학 비판], 1973


                                                                                                                                               by 영2

작가의 이전글 영화 ‘웩더독(Wag the Dog)’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