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북 공모전 10편
프롤로그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를 해도 사람들은 대부분 사랑을 쫓아간다.
또 그 사랑은 대개가 자신의 인생길을 열심히 쫓다보면 만날수 있다.
그런데 무심코 그 이정표를 놓쳐버렸거나
낯선이에게 빌려주어
지금 당장 사랑을 찾아가지 못한다해도 아쉬워하지는 말자.
분명 지금 이 세상 어딘가에서는
서로를 애틋이 여기고 있을 연인들이
그 사랑의 빛을
모든 사람에게 밝게 비춰주고 있을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빛을 곧장 쫓아가기만 하면 된다.
연인
순희는 대학교 졸업생이다.
그녀는 혼자 산길을 걷고 있다.
전날 엄마와 대판 싸웠다.
이유는 단지 남자친구가 없다는 사소한 일 때문에.
그녀는 이 문제로 시도때도 없이 잔소리를 하는
엄마에게 무진 화가 났다.
자신도 없고 싶어 없는게 아니다.
그냥 없어서 없는걸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그런 엄마는 어디 변변한 남자라도 내게 소개시켜 준적이 있나.
돌멩이를 걷어찼다.
굵은 돌이 데굴데굴 굴러 우거진 숲 속으로 사라진다.
바람이 상쾌하다.
가방에서 지도를 꺼내 할머니 집의 위치를 찾으니
대강 머릿속에 위치가 그려진다.
사실 길 찾기는 순희도 남자 못지않게 잘 하는 편이다.
언젠가 학교에서 적성검사를 받아 봤을때도
공간지각 능력이 최상으로 나왔다.
그녀는 맘속으로 내심 이 능력에 대한 자부심이 컸다.
가방속에서 퍼즐 하나를 꺼낸다.
숲길 한복판에 퍼즐을 들고 선 그녀는
뱀 모양으로 또아리를 틀고있던 퍼즐을 풀어
이번엔 작은 직사각형 모양을 만들었다.
어디보자.
이 숲길의 풍경을 사진으로 담아볼까나.
찰칵.
순희가 주변을 돌아본다.
그런데 이 숲길은 아직 포장도 안된 곳이라 그런지
사람도 하나없고 매우 조용하다.
대학교 내 캠퍼스가 떠올랐다.
순희네 대학교는 조경도 잘 되어있고 조용한 편이다.
하지만 그녀가 공원에 앉아 맘잡고 공부좀 할라치면
항상 그 곁에 커플들이 다가와 벤치에 앉았다.
그녀는 집중력이 좋은 편이였지만,
마음 한켠에 있는 연인들에 대한 부러움으로
매번 부아가 치밀어올랐다.
결국 그 자리를 피하고 만다.
돌멩이 하나를 더 걷어찼다.
참나 말이지.
만나려면 곱게 만날것인지 왜 자꾸 온몸을 더듬고 난리지?
남사스럽게 말이야.
순희가 중얼거린다.
잠시 딴 소리지만
참으로 이 순희라는 이름의 여성
꽃다운 나이에 외로움이 가슴가득 사무친 가엾은 사람이 아닐수 없다.
각설하고.
그녀는 문득 자신이 살이 빠지면 남자친구가 생길까 하는 생각을 한다.
어제 엄마가 한 말 중에서도
제일 귀에 거슬렸던 말이 바로 그것이다.
살 좀 빼.
마침내 순희는 집어먹고 있던 새우깡을 바닥에 집어던진후
방으로 들어가 문을 쾅 닫았다.
하지만 곧 타들어가는 갈증 때문에
다시 엄마의 얼굴과 조우해야 했다.
해가 뉘엿뉘엿 진다.
길이 점점 어두워진다.
어릴적 할머니 집에 자주 놀러오곤 했던 순희는
이 숲 지리에 대해 빠삭한 편이여서 별 걱정이 없다.
살만 빠지면...
친구들을 떠올린다.
실상 살이 빠진다고 해서 남자친구가 생기는게 아니다.
자신의 친구들은 꽤 예쁜편이고 호리호리하지만
대학교 4년내내... 음,
그래 결국엔 생겼다.
두 손으로 빨개진 얼굴을 감싼다.
어째 찝찝하다.
어디 또 근사하게 걷어찰 돌이 없을까
그런데 마침 저 뒤에서 남녀 둘이 걸어온다.
그들은 이제 막 숲길에 들어섰는지 걸음을 우왕좌왕 하고 있다.
순희는 곧 들고있던 퍼즐을 가방에 우겨넣고
깊은 숲속으로 들어섰다.
사위가 어두워진다.
귀뚜라미들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어릴땐 노래소리처럼 듣고 자라던 숲 벌레들의 소리들.
다시금 듣고 있으려니 쌓여있던 스트레스가 풀리는 기분이다.
어쩌면 그녀의 엄마가 일부러 잔소리를 했는지 모르겠다.
왠만해서는 집에 처박혀 움직이지도 않는 그녀를
억지로라도 집에서 내보내기 위해서
듣기 싫은 소리를 잔뜩 늘어놓은 것이다.
순희는 어제 저녁 엄마에게 화낸것을 사과하고 싶어 핸드폰을 꺼냈다.
하지만 문자가 보내지지 않는다.
GPS를 실행해보아도 지도가 잡히지 않는다.
통신권을 이탈한 모양이다.
그녀가 혀를 찼다.
실은 여기서부터는 길찾기 시스템을 통해
할머니 집을 찾아갈 생각이였는데
아무리 순희가 길을 잘 찾는다고 해도
깜깜한 곳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당황한 그녀가 가방에서 쓸만한 물건을 찾는데
그곳에 눈부시는 물체가 있다.
바로 순희의 퍼즐.
구겨진 퍼즐은 어느새 모양이 또 바뀌어
잘 만들어진 절묘한 화살표 모양이 되어있다.
순희가 퍼즐을 꺼내 그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을 본다.
두 갈래 길에서 오른쪽으로 향한 표시.
헛웃음이 난다.
그리고 다시 한번 그 길을 쳐다보니 맞는것도 같다.
어릴적 기억이 떠오른다.
이걸 믿을수 있을까.
그녀가 망설였다.
겨우 이런 퍼즐에게 내 앞길을 맡겨도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때문에 말이다.
혹여 어두운 숲속에서 험한 일이라도 당하면
여기에선 아무에게도 알릴수가 없다.
숨을 죽이고 한참 퍼즐을 내려보던 순희는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그래 까짓거 좋다.
어차피 남자친구가 없는 그녀에게
외로울때마다 항상 곁에 있어준건 퍼즐이였다.
그러니 순희에겐 퍼즐이 남자친구나 다름없다.
엄마가 잔소리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순희가 퍼즐을 치켜 들었다.
그러자 야광물질로 인해 빛나고 있는 화살표 퍼즐이
오른쪽을 가리키며 순희에게 등불이 되어준다.
순희가 계속 퍼즐을 따라갔다.
몇 번의 짐승소리가 들리고
또 여러번 언덕길을 오르내리고 나서야
순희가 어릴때부터 알던 길들이 나왔다.
그리곤 이젠 걱정없겠다는 생각으로 퍼즐을 내린채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데
어디서 사람 울음소리가 났다.
가까이 가보니 아까 내 뒤에서 열심히 숲 길을 따라오고 있던
두 연인중의 여자였다.
그녀는 막 울음을 터뜨리려 하던 참인지
참 애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순희가 그녀에게 사정을 물어봤다.
그러자 그녀는 이렇게 늦은 저녁에
산길을 걸어본게 처음이라
남자친구를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잠깐 쉬어간다고 서로 떨어져 딴짓을 하는 사이에
날이 금새 어두워져 버린 것이다.
순희는 내심 쌤통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쁜 생각이라는건 알지만
개그 프로를 볼때도 티비에 비치는 방청객들과 함께
솔로천국! 커플지옥! 을 우악스럽게 외치던 순희다.
그런데 드디어 커플 둘이 지옥을 맞는 상황을 목격했으니
그녀로서는 기쁘지 않을수가 없다.
하지만 순희는 그런 마음을 감추고
울고있는 그녀를 부축했다.
그리고 갈 길이 어디인지 물어본다.
대답을 들으니 그곳은 순희가 아는곳이다.
그러나 자신이 가는 길과 같지가 않다.
갈림길이 나오고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하던 순희는
문득 자신의 손에 들려있던 화살표를 봤다.
지금까지 가야할길을 잘 인도해주던 등불.
약간 황당하기는 해도 어쩌면 효력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순희가 퍼즐을 내밀었다.
그러면서 이 화살표가 가리키는 대로만 쭉 따라가라고 말했다.
황당하게 순희를 쳐다보던 그녀는
드디어 참고있던 눈물이 터졌는지
있는대로 울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발 같이 가달라며 애원한다.
가엾다.
같이 목적지를 가주고 싶다.
하지만 어쩐일인지
이 화살표가 그녀를 목적지까지 잘 데려다줄거라는 강한 확신이 든다.
또 갈 방향이 같지도 않다.
더군다나 결정적으로 커플이 정말 싫다.
순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얼마 더 가면 목적지가 분명히 나올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그녀를 위로했다.
순희를 원망스럽게 쳐다보던 그녀는
화살표를 손에 꼭 움켜쥐고 마지못해 다시 길을 걸었다.
산 길을 쳐다봤다.
분명 여기서 얼마 안 가면
할머니 집이 나온다.
수천마리의 개똥벌레가 울고
어두운 밤에는 은하수가 하늘 가득 펼쳐지는
풍경 좋은 할머니의 집.
그리고 기분좋은 표정으로 숲 길에 성큼 들어섰는데
어쩐일인지 처음보는 장소가 눈에띈다.
정신이 아득해진다.
서둘러 방금 있었던 곳으로 돌아가니
그 장소 또한 아까본 곳과는 다른 장소다.
손에서 화살표를 떼자마자 이런일이 생기다니.
귀신에게라도 홀린걸까.
그녀가 침착하자라는 말을 되뇌이며
몇 번씩 왔던길을 되집어 돌아가도
모두 생전 처음보는 길들이다.
짐승 울음소리가 들린다.
등골이 섬찟하다.
어떻게 해야되지.
순희는 점점 공황상태가 됐다.
핸드폰도 안 터지고 지도도 이런 상황에선 소용이 없다.
소리를 질러볼까.
사람이 구하러 올지도 몰라.
아니다,
오히려 짐승이 달려올수도 있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순희도 자신의 곁에 남자친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방금전 무서워하던 그녀를 혼자 보내는게 아니였다.
얼마나 혼자인게 두려웠으면 그렇게 펑펑 울었을까.
생각이 짧았다.
뒤늦게 후회가 몰려온 그녀는
펑퍼짐한 돌 위에 걸터앉아
다시한번 걸어온길을 되짚어 보았다.
들어서고, 오른쪽으로 꺽고, 올라가고, 내려가고
왼쪽으로 꺽고, 그 다음엔...
도무지 모르겠다.
산은 직선으로만 이루어져 있는곳이 아니다.
때로는 커브도 있고, 동그란 곡선도 있고, 지그재그 코스도 있다.
모든 것을 완전히 기억할 수는 없다.
공간지각 능력이 그녀의 유일한 자랑거리였는데
그 능력도 이런 어두컴컴한 장소에서는 전혀 쓸모가 없다.
마침내 그녀가 체념한 표정으로 멍하니 앉아있을때
멀리서 초록색 불빛 하나가 반짝거렸다.
매우 희미하지만 분명한 불빛이다.
도깨비불인가.
저기가 어디지
위치로 보아 산 꼭대기인것 같은데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빛이 보이니 의아하다.
하지만 산 정상만 찾아가면 거기서부터는 알음알음 찾아갈수 있다.
순희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천천히 초록 불빛이 비치는 곳을 향해
산길을 걸었다.
간간히 애매한 길들이 나온다.
그럴때면 순희는 임시방편으로 손에다 침을 뱉어 길을 선택했다.
뭐 화살표가 없으면
이렇게라도 해야지 별수 있는가.
물론 곁에 남자친구가 있다면 절대 안할것이다.
어디까지나 있을 경우에 말이지만.
겨우내 불빛이 있는 장소까지 왔다.
그러니 많은 사람들이 보인다.
표지판으로 이곳이 산의 정상이란 것을 금방 알았는데
사람들은 여기에서 간단한 운동도 하고
끼리끼리 모여앉아 대화도 나누고 있었다.
알고보니 순희가 서 있는 곳은
이 지역 사람들이 자주 찾는 산 정상의 작은 공터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처럼 외지에서 찾아온 사람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겨우 찾아왔다는 눈빛을 하고 있었고
얼마후 관리자로 보이는 사람이
공터 가운데에 서 있던 작은 가로등 스위치를 찰칵 올린다.
불빛이 켜진다.
눈이 부셔 제대로 쳐다볼수가 없다.
진작에 켜주지.
순희가 입을 삐죽 내밀고 표시판을 찾아 산 정상을 돌아보는데
구석 벤치에 아까전의 연인이 보였다.
그리고 그들 손에 순희의 퍼즐이 들려있다.
초록빛을 발하는 작은 하트 모양의 퍼즐.
바로 순희가 길을 헤매고 있을때 보았던 불빛이다.
연인은 뭐가 즐거운지 퍼즐 양 끝을 한쪽씩 붙잡고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자 그녀가 순희를 알아보고 벌떡 일어나 몸을 껴안는다.
순희가 준 퍼즐이 없었더라면
자신은 절대 여기를 못 찾아왔을 것이라면서 말이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남자에게까지 고맙다는 말을 듣고나니
그녀는 뿌듯한 기분이 되었다.
그리고 손에 하트모양 퍼즐을 건네받았다.
하지만 무슨 일일까.
어딘지 요상스럽지만
갑자기 가슴속이 꿈틀하는 기분이다.
혹시 그녀의 인생 속에도 사랑이 생기려는 걸까.
마침 멀리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순희를 향해 다가왔다.
그들은 자신들이 산을 오르던 도중 길을 잃었는데
지금 순희가 들고 있던 초록색 불빛을 보고
먼 곳에서 겨우 정상까지 찾아왔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순희는 천만이라고 대답하고
다시 이정표의 지도를 확인후
할머니의 집을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이제 알겠다.
여기서부터 할머니의 집에 찾아가는건
누워서 떡 먹기보다도 쉬운 일이다.
그녀는 다섯갈래의 길 중 할머니의 집으로 가는 산길을 선택해
첫 발을 내딛으며 생각했다.
살이 빠지면 진짜 남자친구가 생길까.
통계적으로 봤을때 아마 그건 사실이다.
그러나 순희 자신은 그놈의 통계라는 것을 셀수없이 비켜살았다.
그러니 이제는 아무리 살을 빼도 그 남자친구라는 동물을 사귀는건
절대 불가능할것만 같다.
하지만
순희가 손에 든 하트 퍼즐을 쳐다봤다.
이 녹색의 하트도 실은 순희가 가지고 있던 화살표가 변해 만들어진 것이다.
화살표가 순희 인생의 이정표라고 본다면
그러니 순희도 그 이정표를 따라 인생을 열심히 살아가다보면
언젠가 화살표가 사랑으로 변모하게 되는 날이 찾아오진 않을까.
흐음.
순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간만에 쬐금 믿음이 가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할머니의 집에 찾아가는 길은 항상 이랬다.
나쁜 컨디션으로 출발했다가도 도착할때쯤 되면 기분이 좋아지는.
할머니가 무슨 요술사라도 되시는걸까.
그녀는 다시 머릿속에 지도를 그려넣고
숲길을 향해 힘차게 발을 내딛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