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희와 콩나물

브런치 북 공모전 9편

by 김민관

재희와 콩나물


‘송재희’

학생 한명이 헐레벌떡 앞문을 연다.

선생님이 안경 너머로 그녀를 쳐다봤다.

지각생 재희.

난 대학교 문학 동아리에 다닌다.

평소 글 쓰는것을 좋아해 들어온것 이지만

사실 문학 동아리 이외에는

특별히 취향에 맞는 동아리가 없어서기도 했다.

그리고 대부분 이 동아리 안에는

나처럼 글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다.

다만 난 남자고

그들은 모두 여자라는 것이 조금 민망할뿐.

아니 이 부분이 내가 가장 곤란한 부분이였던가.

문학을 좋아하는 학생들은

대개 남자보다는

여자가 더 많은것 같다.

중학교때도 고등학교때도 난 거의 문학 클럽활동에 나갔는데

그때도 여자들과 만나 어울리게 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덕분에 나는 여학생들과 이야기를 하는것이 익숙한 편이지만

이 여자애는 뭔가 달랐다.

‘야’

‘응?’

‘너 글좀 쓴다며’

‘누가 그래?’

‘도와주라’

‘뭘’

‘저번에 봤잖아’

불과 일주일 전에 송재희란 이름을 가지고 있는

이 여자아이가 지각을 했다.

그날은 마침 자신이 창작한 글을

모두 앞에서 발표하는 날이였는데

하필 지각을 한 재희는 그 벌로

숨돌릴 시간 없이 바로 발표를 시작해야했다.

그런데 재희가 가방에서 꺼내든 책이 참 어이가 없었다.

‘잭과 콩나무’

선생님이 황당해하자

재희는 곧 자신이 그 책을 가져온 이유를 설명했다.

‘실은 제가 아직 글을 잘 못씁니다.

하지만 저의 어릴적 꿈은 동화작가였고

그래서 가장 좋아하는 동화책을 가져와보았습니다‘

그리고 재희는 선생님이 말릴사이도 없이 그 동화책을 읽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깔깔 웃는다.

나도 함께 웃었지만

그 일로써 재희라는 아이가 머리에서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무슨말인지 모르겠는데’

‘글쓰는 비결 가르쳐줘’

‘그런게 어딨어’

‘없다고?’

‘없지’

‘치사하다 뭘 줘야 도와줄래나’

재희는 그렇게 말하고

계속 내 옆에서 알짱거리며 나를 보고 실실거렸다.

그런 그녀를 보고 있으려니 한가지 떠오르는게 있다.

‘도와줄까’

‘정말? 제발 부탁이야 이거 수행평가에도 들어간데잖아’

‘글쓸때 중요한게 자료수집이거든’

‘그래?’

‘응 그래서 난 예전에 주변 친구들 인터뷰도 하고 그랬어’

‘인터뷰라는게 그 뉴스 기자들이 하는거 말하는거야?’

‘비슷하지 근데 너 권투한다고 했지’

‘응’

‘특이하네’

‘그렇지’

‘그런데 나 권투 선수는 한번도 인터뷰 못해봤어’

‘아하 그럼 나를 인터뷰 하고 싶으시다는 거야?’

‘서로 돕고 살자는 거지’

‘좋아 어려울거 없네 그럼 주말에 시간 비워둬’

재희는 그렇게 말하고 교실을 빠져나갔다.

그녀는 권투 선수다.

또한 부모님이 없는 소녀가장이기도 하다.

난 어느 휴먼 다큐멘터리에서나 나올 법한 인물을

가까운 곳에서 볼 수 있다는게 마냥 신기했다.

주말이 되어 그녀와 만났다.

그런데 그녀가 나오라고 한 곳은

어느 고층빌딩 앞이다.

하늘을 찌를것처럼 높이 솟은 마천루.

‘왜 여기로 불렀어’

‘오늘 알바하는 날이거든’

‘주말에 무슨 알바야’

‘난 전단지 알바해’

‘여기서?’

‘어’

고개가 부러질것처럼 얼굴을 치켜들고 있는 나에게

재희가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고층 아파트에는 정문에 비밀번호 잠금장치가 있다.

그녀가 아파트 앞 자동차 옆에 앉아 숨을 골랐다.

‘뭐하는거야’

‘다른 사람 들어갈 때 같이 들어가는거야 전단지 알바 안해봤어?’

잠시후 한 주민이 다가왔다.

그러자 재희는 잽싸게 나를 끌어

그 사람과 함께 아파트 안으로 들어섰다.

나의 팔이 닫히던 문에 낀다.

내가 비명을 질렀다.

재희는 입을 막고 킥킥대더니 다시 나를 끌고

엘리베이터에 탔다.

엘리베이터 숫자가 올라간다.

‘팔 부러질뻔 했네’

‘엄살은’

‘언제부터 이런일 한거야’

‘1년됐어’

‘돈은 얼마나 주는데?’

‘사만원’

‘이런 일 왜 해?’

‘돈 벌어야지 질문이 웃긴다’

‘권투 선수하면 돈 안 받아?’

‘그걸로는 생활비가 빠듯해

내가 동생만 세명이거든‘

그때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재희는 말을 멈추고 승강기 안에서 천천히 내렸다.

그리고 나에게 전단지를 한움큼 건넨다.

‘이걸 나한테 왜줘’

‘남자가 쫑알쫑알 말 많네 너도 도와야지’

‘야 난 인터뷰 하러 온건데’

‘체험 삶의 현장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녀는 나를 향해 또 실실 웃더니

테이프를 뜯어 들고있던 전단지를

한 장 한 장 문가에 붙여나갔다.

계단을 내려선다.

한참 그렇게 그녀를 따라다니려니

얼마후 다리가 욱씬거렸다.

‘이러다 내 연골 다 닳겠다 여기 너무 높은거 아니야’

‘참아 여기가 돈 제일 많이 주는데야

시간도 없는데 주말동안 바짝 벌어야지‘

그리고 재희는 숨 한번 고르지 않고 계속해서 전단지를 붙여나갔다.

그런데 다른곳과 다르게 유달리 멋있게 생긴 현관문 앞에서

갑자기 또르륵 하는 전자음 소리가 났다.

‘이놈’

재희가 놀라서 바닥에 넘어진다.

현관문 안에서 튀어 나온건 런닝셔츠의 아저씨다.

그는 벼르고 있었던건지 손에 뭔가를 움켜쥐고 있다.

재희가 황급히 일어선다.

그리고 나를 향해 외쳤다.

‘뛰어’

재희가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나도 그녀를 따라서 뛰었다.

뒤에서는 아까 그 아저씨의 고함 소리가 들렸고

누군가와 크게 대화를 하고 있었다.

‘경비 부르나보다’

재희가 그렇게 외치고 어느 한 층에서 갑자기 멈춰섰다.

그리고 아직 멈춰지지 않은 내 몸을 딱 막아서더니

조용히 하라는 손짓을 했다.

숨을 고른다.

잠시동안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윽고 부서지는 듯한 발소리가 크게 실려 들려왔다.

‘뛰어’

재희가 또다시 소리를 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단지를 문 앞에 잽싸게 떨어뜨린다.

테이프를 붙이며 내려가는 대신

문 앞에 전단지라도 떨어뜨려 놓는 것이다.

해서 내가 먼저 두계단 내려가고 나면

그녀는 금새 전단지를 놓고 두계단을 따라왔다.

또 내가 두계단을 미끄러지듯 내려가면

그녀 또한 두계단을 미끄러지듯 따라온다.

재희 손의 전단지가 점점 줄어든다.

그때 승강기 유리안으로 경비아저씨의 모습이 비쳤다.

‘경비다’

재희가 놀란듯 어쩔줄 모르다가

바로 앞 승강기에서 내려서려는 경비 아저씨를 다시 밀어넣고

계단을 또 내려갔다.

나는 그녀의 뒤를 열심히 쫓았다.

매우 어릴적 63빌딩에 가본적이 있다.

하지만 아까 재희와 함께 이 빌딩을 쳐다봤을때는

이 빌딩이 63빌딩보다 컸으면 컸지 작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다리에 힘이 풀린다.

그러나 조금씩 땅이 보였다.

심장이 터질것 같다.

재희는 마지막 전단지를 1층에 밀어넣고 나서야

닫혀있는 마지막 문을 향해 달려갔고

나도 그녀를 따라 빌딩을 나섰다.

그리고 우리는 쉴틈도 없이

멀리 보이는 봉고차를 향해 달려가 문을 열고 그 안에 탔다.

‘후악후악’

차 안에서 그녀가 낄낄거린다.

나는 한참동안 숨을 고르며

봉고차 의자에 그대로 엎어졌다.

‘얜 누구냐’

‘친구에요 학교 동아리 친구’

‘왜 이래?’

‘경비 아저씨가 쫓아와서 미친듯이 도망쳤어요’

재희가 또 웃는다.

난 이런 상황에 그녀의 웃음소리가 얄미웠지만

지금은 뭐라고 말할 기운도 없다.

아저씨가 뭔가를 건넨다.

‘오늘도 수고했다’

‘감사합니다 아저씨 야 내리자’

재희는 엎어져있던 내 팔을 잡아 차에서 내렸고

곧 지하철 역을 찾아가 그 앞에 멈춰섰다.

‘이제 집에 가야겠다 근데 너 인터뷰 할 수 있겠어?’

‘후우’

‘그럼 숨 고르고 있을래 나 슈퍼 갔다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녀는 내가 숨을 고르는 동안

슈퍼에서 한가득 장을 봐왔다.

그녀의 봉투를 들여보았다.

‘콩나물 밖에 없네’

‘오늘 반찬거리야’

‘그래?’

‘남자애가 이렇게 허약해서야

인터뷰는 할수 있는거지?‘

‘몰라몰라’

난 고개를 흔들고

앞서 가는 그녀의 발뒷꿈치만 따라 간신히 전철에 올라탔다.


재희와 콩나물 2


며칠후 발표날이 되었다.

재희는 저번 발표에서 낙제점수를 받았지만

동아리 선생님의 배려로 인해

다시 한번 발표할 기회를 얻게되었다.

그녀는 발표를 시작하기 앞서

서론에 내 도움을 받아

이번 글을 짓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내 얼굴이 빨개진다.

저런 말 하면 도움될게 없을텐데...

아니나 다를까 선생님은 재희에게

남의 도움을 받아 썼다면

또 다시 낙제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했다.

망설이던 재희는 그래도 괜찮다고 했다.

그리고 꼭 이 글을 발표하고 싶다고 말한다.

선생님이 승락했다.

재희가 발표를 시작한다.

‘제목 재희와 콩나물 지은이 송재희

이것은 아주 오래전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한적한 마을에 재희라는 아이가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엄마의 심부름을 받아 시장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어머니는 재희에게 단 500원만 주고서

2000원어치 생선을 사오라는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어린 재희는 엄마의 말을 이해할수 없었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시장에 갔습니다.

그러나 역시 시장에는 500원으로 살 수 있는 생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과자라면 모를까만

과자 하나를 사서 다섯이나 되는 가족을 배불리 먹일수는 없었기에

재희는 고민했습니다.

그때 한 할머니가 콩나물을 팔고 있는것이 재희 눈에 보였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오늘 장사가 다 끝났다며

500원에 남은 콩나물을 모두 주겠으니

이것을 제발 사가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어린 재희는 너무 기뻐 할머니에게 대뜸 500원을 주고

나머지 콩나물을 받아왔습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와 재희가 콩나물을 내밀자

그녀의 어머니는 크게 화를내며

콩나물이 담긴 봉지를 창문 밖으로 세게 던져버렸습니다.

재희는 너무 놀라 심장이 쿵쾅거렸지만

어머니는 오히려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어서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날밤 재희의 어머니가 집을 나갔습니다.

재희는 결국 남은 세명의 동생들과 함께 소녀가장이 되었습니다.

사실 재희의 꿈은 동화작가가 되는것이였답니다.

그러나 지금 글을 쓰는것은 재희에게 있어

너무 사치스러운 일 같아 보였고

여자라고 사람들에게 얕보이면 안된다는 생각에

권투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권투는 재희가 상처를 받고 힘들어할 때마다

나약한 마음을 다잡아주는 멋진 운동이였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재희네 집 앞에 커다란 공사단지가 들어선 것입니다.

기초공사가 너무 커 무슨 건물인가 궁금해했는데

꼬박 5년만에 엄청나게 큰 빌딩이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재희와 그녀의 동생들도 나이가 들었습니다.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던 재희는

어느덧 몸도 마음도 건강한 긍정적인 사람으로 자라났지만

반면 먹는 양이 많아지니 재희네 형편은 점점 궁핍해졌습니다.

정부에서 나오는 보조금과 권투선수 생활로 받는 돈으로는

먹고 살기가 택도 없었지요.

결국 생활이 어려워진 재희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재희네 집 앞에 얼마전 들어선

고층 빌딩의 전단지 작업입니다.

너무 높은 빌딩이라 일일이 부착하는 것이 힘이 들지만

단 한건에 사만원의 일당을 주는 제법 짭잘한 아르바이트였습니다.

사실 이것은 재희 또래의 여자아이들은 꺼려할 법도한 일이지요.

땀도 많이 나고 다칠 위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재희는 이 일을 달갑게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건물은 그의 어머니가 오래전 창문밖으로 내던져버린

바로 그 콩나물이 자라 생겨난 것이여서입니다.

뭐랄까 운명같은 것이지요.

재희는 종교를 믿지 않았지만

다만 어머니와의 유일한 연결고리인

이 운명같은 장소를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일을 끈기있게 하다보면

언젠가는 분명 엄마가 다시 돌아올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것입니다.

재희는 주말마다 전단지 알바를 했습니다.

하지만 이 빌딩은 온갖 난관들이 즐비하지요.

도둑을 막기위해 설치된 비밀번호 유리문부터

곳곳에 숨어있는 런닝셔츠의 괴물 아저씨들.

또 입구에서 재희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경비아저씨 마왕까지 있습니다.

그러나 재희는 용감했습니다.

첫날 꼭대기에 올라 무사히 전단지를 붙인 재희는

자신을 쫓아오는 아저씨 괴물을 유유히 따돌리며

다시 1층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경비아저씨 대마왕도 자신이 타고 온 승강기에 집어던진후

다시 빌딩 앞에 도착해 봉고차 문을 열었습니다.

봉고차 안에는 보물이 있었지요.

재희는 지친 기색도 없이

보물을 원하는 만큼 챙겨 다시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재희가 집에 돌아가기 전에

들리는 곳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지하철역 앞 슈퍼마켓인데

이곳에서 그날 먹을 반찬거리를 삽니다.

재희는 콩나물 반찬을 무려 만원어치나 구입했지요.

이 정도는 되어야 세명의 동생들과 함께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재희는 한편 무척 기뻤습니다.

이 정도 보물을 주말마다 벌어들일수 있다면

언젠가 집을 나간 어머니와

아주 오래전 사라진 아버지가 다시 돌아오시더라도

주말에는 항상 다같이 모여

푸짐한 식사를 할 수 있을것이라 생각해서입니다.

정말 마법같은 일이지요.

엄마가 버린 콩나물이 바로 이런 기적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재희는 역시 우리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재희는 전철에 탑니다.

손에는 항상 콩나물이 들려있습니다. 끝‘

재희가 소설을 마친다.

난 그녀를 바라봤다.

그런데 재희가 고개를 숙이고 있다.

혹 눈물이라도 흘리는 걸까.

나는 언제나 당차보이는 재희가

눈물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녀 역시

여리디 여린 감정을 가지고 있는 문학 소녀였던 모양이다.

발표가 끝나고 선생님은 그녀에게 수행평가 만점을 주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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